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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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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력을 소상히 들여다본다. 약 30여 년간 매춘부로 살았으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매춘부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 '혁명적 창녀'로 불린 여인. 성노동자 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혁명에 앞장서 사후에는 제네바 왕립묘지에 매장된 '작가, 화자, 창녀'였던 여인. 생전에도, 사후에도 저 밑바닥에서 생존과 존엄 사이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렸던 여인임은 틀림없는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자전적 소설은, 읽기 전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해 오히려 파격의 수위에 대해 단단히 경고를 받은 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정신병동에 감금되어 있던 흑인 애인 빌과 두 아이를 데리고 불법체류하게 된 독일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도, 오래 갈 수도 없었다. 숙식을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조차 어렵고, 빌과의 사이가 벌어지자 그녀가 택한 일은 몸을 파는 일이었고, 이 은밀한 직업은 쫓기고, 추방당하는 일을 반복하는 내내, 그녀의 여생의 대부분을 몸담는 직업이 된다. 빌에서 로버트 벤슨, 로이 블레인, 그리고 로드웰로 바뀌는 흑인 애인들과의 변절과 마리화나에 찌든 연애사는 그녀의 삶을 한층 고단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녀를 지탱시키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하면서.


소설의 방대한 분량은 매춘의 방대한 기록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은 자신과 관계한 이들의 이니셜과 특징들을 나열한 『고급 매춘부의 무도 카드』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첫 소설에서도 그런 면모를 찾아볼 수다. 변태성욕자들의 음험한 욕망, 애정과 폭력이 공존하는 애인들과의 치정, 하룻밤을 위한 위험한 호객행위에서 매음굴의 일원이 되고, 매춘만이 아닌 마리화나 중개에서 직접 밀반입해서 파는 위험천만한 일까지, 일기나 다름없는 은밀한 기록들이 숨 돌릴 겨를도 주지 않고 끝도 없이 펼쳐진다.


매춘부의 자전적 소설은 꼭 이래야 한다는 법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회환과 처절함으로 가득 차야할 것만 같고, 밑바닥 인생의 추레함을 신파적으로 풀어낼 법도 하고, 그네들도 결국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역설하며 끝맺으면 어색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일반론도 무엇도 아니다. 『검정도 색깔이다』의 그녀, 그리젤리디스 레알이 근근이 먹고 살아야했던 생존을 위협받는 시간은 분명 추레했지만, 매춘에 대한 태도는 부끄러운 것도, 저급한 삶의 방식 또한 아니다. 애인과의 관계가 자꾸만 뒤틀리는 것 또한 매춘의 탓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 사랑을 하는, 아무도 포용해주지 않는 남자들의 욕망마저 끌어안아 줄 수 있는 구원자임을 자처한다.


소설 자체보다 저자의 이력이 혁명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본문보다 '혁명적 창녀'라는 설을 널리 퍼지게 한 부록이 훨씬 투쟁적이다. 이 소설을 시초로 자신의 삶, 동료 매춘부들의 인권, 자신들의 몸을 한껏 이용하면서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를 직시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혁명에 앞서 가감 없이 삶을 돌아보는 위선도, 위악도 없는 자세가 한껏 분출되는 격렬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파격이다. 매춘부로서의 삶을 낮추지도, 포장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을 저열한 존재로 치부하는 시선들을 마음껏 조소하는 통렬함이 넘쳐난다. 검정도 색깔이듯, 그네들의 존재가 불편하다고 해서 불쾌하게 취급해야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그 선언은 여전히 문제적 울림을 안고 진행 중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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