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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비록 현장에서 본 건 아니지만, 대추리 사건 같은 대규모 국가폭력을 목격하고 나면 그 근원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우리나라는?’ 늘 죄의식을 불러일으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하게 만드는 박노자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02>를 집어든 건 그런 이유였다.
‘전근대적인 폭력’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는 것처럼, 전근대는 폭력적인 시기였다. 지금은 사람 하나를 죽이는 데도 최소한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고, 연쇄살인범의 사형마저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하지만, 과거에는 높은 분의 마음 내키는대로 사람을 죽였다. 툭하면 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삼족을 멸한다.”는 말은 얼마나 끔찍한가. 그래서 우리에게 근대화는 곧 문명화를 뜻했고, 근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지금이 그 시절보다 덜 폭력적일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내 생각을 통렬히 비웃는다. 그에 따르면 “전근대는 (폭력의)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 근대와 비교할 바가 못된다.” 예컨대 “국민 개병제라는, 모든 주민들을 국가 폭력의 공범으로 만드는 제도는 어느 전근대적 사회에서도 실시되지 못했다.” 비단 전쟁이란 수단을 거치지 않고도 “(미국의) 경제적 제재로 이라크 어린이 백만명이 굶어 죽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근대가 덜 폭력적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일까.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동류들을 죽이기를 극히 꺼리”지만 “모두와 모두의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떠든 홉스의 주장이나 “약육강식이 인간의 진화를 촉진한다는 사회진화론”이 근대국가의 폭력을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매체에서 제3세계의 유색인종을 야만시하는 것도 “인간의 비폭력적 본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고, “텔레비젼과 비디오, 게임 시장이 폭력물로 채워지도록 허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다. 이 결과 제 1차대전 때는 “미국의 참전 병사 중 15-20%가 본인의 생명에 위험이 가지 않는 상태에서 적군 병사를 쏴 죽일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베트남전이나 최근의 걸프전에서는 이 비율이 95%가 되어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대추리 사건은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근대국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 그토록 근대화를 오매불망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그리 개탄할 일은 아닌 것이다. 후반부를 채우는 외국인 노동자 얘기가 날 많이 부끄럽게 했지만,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근대화 지상주의자’였던 내 마음에 한줄기 위안을 던져준다. 이 땅에서 더 큰 폭력이 일어나도 놀라지 말자. 근대화란 원래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