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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제가 더 체격이 크고...”
정유정 작가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늘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의 소설만 쓰는 작가가 이렇게 유쾌하다니.
한강 작가가 멘부커상을 받은 게 부럽지 않느냐는 기자의 유치한 질문에도
정작가는 시종 재치있게 입담을 과시한다.
인터뷰에서 받은 충격과는 별개로, <종의 기원>은 좀 아쉬운 작품이었다.
물론 정작가가 굉장히 글을 재미있게 쓰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고,
이 책 역시 책 첫머리부터 가졌던 궁금증이 갈수록 커지며 읽는 나를 빨아들인다.
책장을 넘길수록 드러나는 진실들이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더 커다란 궁금증을 낳는다.
그게 완전히 해소되면서 카타르시스를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소설의 결말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아마도 이건 사이코패스에 대한 저자와 나의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사이코패스는 그렇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고 인간미도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악의 교전>에 나온 그 선생처럼
별다른 이유없이 수십, 수백명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정작가는 이번 책에서 그 사이코패스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너무도 많은 분량을 할애했는데,
그게 궁금증의 해소로 이어지기보단 아쉬움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7년의 밤>을 읽고 정유정 작가에 꽂혔던 나는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와 그 이후 작품인 <28>을 읽고 실망한다.
그리고 다시 <종의 기원>이 아쉬움을 던져준 걸 보면,
<7년의 밤>이 정작가의 대표작으로 계속 남아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 해법은 <종의 기원>이
앞으로 쓸 시리즈의 프리퀄이 되는 것이다.
스포일러긴 하지만 사이코패스를 표방한 유진은 잡히지 않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그 이후 그가 벌이는 잔혹한 범죄극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괜찮을 듯 싶다.
정작가를 포기할 마음이 아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