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네티즌들은 입에 거품을 문다.

예를 들어 황우석이 미국에 특허를 신청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치자.

“황우석이 정말 훌륭한 과학자인데, 못난 이 나라가 그를 끌어내렸다.”

“우리나라가 줄기세포 기술 1위였는데, 이제 후진국 되는구나.”

특허라는 게 신청만 하면 거의 다 받아들여지는, 별 거 아닌 권리인 걸 모를 수 있지만,

줄기세포가 가짜로 밝혀진 지 10년이 다 되도록 황우석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집단무지. 무지몽매. 정신박약 등등 내가 아는 어떤 4자성어를 동원해도 

표현할 길이 없다. 


강양구 기자 등이 기획한 <과학수다> 1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분은 바로 류영준 교수다.

황우석의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걸 제보했던, 그래서 한동안 피신을 당해야 했던 류영준은

현재 강원의대 교수로 재직 중인데,

그가 실명을 밝히면서 자기 목소리를 낸 건 <과학수다>가 처음이란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많은 네티즌들의 착각과는 달리 줄기세포 세계 1위국인 적이 없었다.

바로 이때 (2000년대)가 한국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선두 그룹을 한창 쫓아갈 때였어요. 한 5위권 정도나 될까요?” (157쪽)

그나마도 줄기세포 연구가 나온 지 얼마 안된 새로운 분야였고,

우리나라가 불임클리닉으로부터 난자를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거였단다. 

게다가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비해 판이 큰 것도 아니었고,

2012년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가 노벨상을 받은 테마는 ‘역분화줄기세포’였다. 

즉 줄기세포 중에서 배아줄기세포는 그저 하나의 가능성일 뿐,

네티즌들의 착각처럼 수백조의 가치를 지닌 엄청난 기술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지금 황우석은 러시아에서 매머드를 복제한다고 그의 전매특허인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역시나 “그것 봐라. 황박사는 역시 대단한 분이야” “미국이 수백억을 주면서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애국심 때문에 안갔지” 등등의 댓글을 단다.

애국심 때문에 미국에도 안간 사람이 왜 러시아와 손을 잡았는지 미스테리인데,

황박사가 계속 언플을 하는 것도 국제적으로 사기를 친 사람을 영웅으로 모시는 이런 네티즌들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인 듯하다. 

황박사는 이전에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한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랑이 핵을 호랑이 난자에 넣어야 하는데 황박사는 희한하게도 고양이 난자를 구하러 다녔단다.

선배들이 관악산 고양이까지 잡으러 다녔다고 해요. 고양이가 얼마나 사나워요. 절대 안잡혀요. 또 고양이의 생리상 배란은 발정기 때나 하니 성숙한 난자를 구하기도 어렵죠.” (161쪽)

결국 호랑이 핵을 돼지 난자에 집어넣으면서 “절대 발표 때는 돼지라고 하지 않고 극비라고” 했단다.

그랬다 하더라도 호랑이 핵이 든 돼지 난자는 호랑이 자궁에 넣어 키우는 게 맞지만, 그냥 돼지 자궁에 넣었다! 

여기서 다시 황박사의 특기가 나온다.

호랑이 핵이 든 돼지 자궁에 돼지 수정란도 같이 넣었다. 왜?

초음파 사진이 착상이 되는 걸로 나오면, 그게 호랑이 핵이 든 돼지 난자인지, 돼지 수정란인지 구분할 수 없잖아요.” (162쪽)

돼지 자궁에서 돼지가 자라는 걸 호랑이인 것처럼 속일 생각이었던 것. 

우리는 지금 이런 과학자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오늘, 또 한편의 뉴스가 나왔다.

황우석이 매머드 세포의 재생에 실패해 다른 대학에 재생을 부탁했다.

그런데 재생이 성공하니까 그 소유권은 자기한테 있다면서 그들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것. 

공동연구의 개념조차 모르는 네티즌들은 역시나 황박사를 옹호하기 바쁜데,

이런 광경이 반복되는 걸 보고 있자니 그저 씁쓸하다.

“여러 사람을 잠깐 속일 수 있다.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여기에 한 구절을 더 붙여야 한다.

“단, 한국에서는 여러 사람을 겁나게 오래 속여먹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아무리 무지한 자들도 댓글로 자기 의견을 표출할 수 있고,

심지어 투표까지 할 수 있다!

그 결과 황우석은 십년째 영웅으로 군림하고 있고, 이 글과는 관계 없지만,

그분께서 현재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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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07-1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금 과학수다1을 읽었는데 황우석 교수 이야기는 정말 한숨이 나더라고요.. 제보자 영화를 보면서도 분개했지만 이 책의 줄기세포 부분은 진짜 흥미로웠어요. 이젠 안타깝다 못해 불쌍해지기까지 합니다. 한참 황우석박사 잘 나갈때 공연장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서 싸인받고 사진찍고 했던 기억도 있는데 집안의 가보가 될 줄 알았던 싸인은 벌써 폐기처분 되었고요. 그나저나 과학수다가 재미없을 줄 알고 1권만 구입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해버린 바람에 그 유명한 서민교수님과 정준호 박사님의 수다를 못들은게 한이라서 지금 장바구니에 담고 오는 길입니다요~^^

마태우스 2015-07-16 00:54   좋아요 0 | URL
앗 오로라님, 저 세권 있는데 제가 2권 보내드릴게요 빨랑 장바구니에서 지우시고요, 주소랑 전번 주세용. 저 세권 받았거든요. 참참참, 황우석 사인 받았다고요. 흠흠. 저도 한때 황빠였다니깐요. 조작 사실이 들통나고 나서 얼마나 민망했던지.

살리미 2015-07-1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런 영광이!! 정말 그래도 되나요? 전 알라딘에서 서민 교수님 서재 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책까지 주신다니 너무 행복해지면 어쩌죠? 갑자기 너무 떨려요^^ 책 안읽는 우리 애들에게 일단 자랑부터 해야겠어요^^

마태우스 2015-07-16 01:05   좋아요 0 | URL
아유 저같은 놈한테 떨다뇨. 아내한테 늘 말하는 건데요, 전 그냥 벌레예요^^ 기생충학자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긴 한데, 아무튼 너무 미안해 마시고 주소 주세용. 안그래도 책 세권이나 받아가지고 어찌해야 하나 이러고 있었답니다.

2015-07-16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6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7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9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7-28 0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속았던 일인입니다. 사기와 조작도 오래 하다보면 이골이 나서 계속 그걸로 먹고살게 되는 예를 황우석씨나 리명박씨, 박근혜씨가 보여주고 있네요.ㅎ 자주는 못 구하지만, 어쨌든 책 주문할 때 잊지 않도록 저도 넣어갑니다. 저 드디어 기생충 열전을 이번에 구했습니다. ㅎㅎ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레이야 2015-07-28 06:16   좋아요 0 | URL
ㅎㅎ 트란님‥ 리명박‥아침부터 큰웃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마태우스님 의 기생충열전을 이미 갖고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마태우스 2015-07-28 09: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트란님,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어야 할텐데 갑자기 걱정이 되네요.ㅠㅠ 저는 정직하게 살아야 할텐데요...ㅠㅠ

마태우스 2015-07-28 09:13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도 사셨군요 부끄럽습니다ㅠㅠ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5-07-28 09:18   좋아요 1 | URL
츠카야마 아키히로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한국어로 읽으면 월산명박이라고 하네요.ㅎㅎ

둥지네 2015-08-0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도 믿고싶은 것만 믿으시는 분? ㅋ ㅋ ㅋ

마태우스 2015-08-22 23:27   좋아요 1 | URL
황빠님이 오셨네요. 제가 원래 황빠와는 대화를 안하는데, 그래도 어려운 발걸음 하셨으니 답글 달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