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철학 노트 - 철학이 난감한 이들에게
곽영직 지음 / Mid(엠아이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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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초년 시절 뭣도 모르고 철학을 집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알고는 싶었지만 너무 어려웠고, 의미를 찾기도 힘들었다. 남들은 원전을 본다는데 2차 서적도 보기가 버거웠다. 그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철학은 내게 어렵다. 그전만큼 관심은 없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의 부채나 의무같기도하다. 더구나 최근엔 과학에 보다 관심이 많아 철학은 좀 많이 뒷전이었다.

 그래서인지 과학자의 철학노트란 제목이 확 다가왔다. 과학자의 관점으로 본 서양철학사라면 서양철학을 살펴보는 또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느 정도 그러한 눈을 준것 같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연대순이다. 다른 철학서적 처럼 그리스로마시기-헬레니즘-종교시대-르네상스-절대왕정시기-계몽주의-과학혁명으로 나아가는 순이다. 개별장마다 각 주요 시기의 철학자가 나오는데 독특한 점은 그들의 실제 얼굴은 아닐지언정 일단 알려진 얼굴이 나오고, 삶이 간략히 소개되며 그 후 철학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하나의 철학자마다 철학의 내용을 제법 압축해서 소개한다. 물론 저자의 생각에 따라 철학자들의 분량이 꽤 차이나긴 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렇다 보니 많은 철학자가 소개되고 책의 볼륨도 제법이다.

 나 역시 시대 흐름을 느껴가며 읽었다. 이번 리뷰는 그 와중에 나름 인상적인 사람들 중심으로 써보려고 한다. 가장 처음 나오는 그리스로마시기는 사실상 서양철학의 씨앗을 뿌린 시기다. 물론 그 대개의 내용이 지금의 관점에선 터무니 없지만 이들의 통찰력은 사실 상당한 수준이라고 느껴진다. 이 사람들이 지금의 문명수준으로 세계를 볼 수 있었다면 상당히 엄청났을 것이란 건 분명해 보인다. 뭔가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신, 법칙, 로고스, 숫자 등)등에 대한 생각이 나타났고, 물질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생각도 나타났다.(4원소설이나 원자, 등) 어찌보면. 이후의 철학은 이 생각들이 서로 주도권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는 과정이기에 사실 토대는 이미 완성된 셈이라고 볼수도 있다.

 종교시대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다른 철학책이 주로 아퀴나스나 신학을 위해 철학을 사용하는 부분을 많이 거론한다면 이 책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의 완성과정을 잘 소개한다. 종교시대에 기독교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예수를 어떻게 볼 것인지의 기독론과 어떻게 하면 구원이 가능한지의 구원론 두가지였다.

 예수는 신적인 존재이면서 인간이었기에 문제가 되었다. 양자를 모두 인정하기도 부인할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인데 무수한 많은 이론이 오랜 시간을 걸쳐 결국 익히 알려진 삼위일체론으로 정리되었다. 구원론은 인간이 원죄를 지은 결과 선행능력을 상실하여 결국 신의 은총에 의한 구원만 가능하다는 설과, 자유의지지가 있어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는 설이 있었다.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기독교가 부패하고,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전자에서 후자로 점진적으로 생각이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르네상스 시기 인상적인 사람은 단연 데카르트였다. 그리스로마시기의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보다 체계화 했으며 그로 인해 근대철학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책은 평가한다. 데카르트는 세계를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속하는 정신의 세계와 역학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으로 나누었다. 그는 물질의 속성으로 연장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연장은 물질이 공간을 차지하는 속성이다. 즉,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물질인 것이다. 이런 연장개념은 과학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당시 자연계에 만연한 정령이나, 영혼등의 전통적 사고를 물질에서 제외하는 성과를 낳았으며 이는 자연과학이 발전하는 밑거름이 된다.

 데카르트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개념에서 착안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시켰는데, 증명할 필요가 없는 의심을 여지없는 제1원리를 찾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제1원리가 생성된다. 문제는 제1원리에서 다른 원리로 이행되는 과정이었는데 데카르트는 다소 어이없게도 선한 신이 있어 나를 속여 존재하지 않는 다른 것을 인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르네상스시기를 거쳐 도래한 계몽주의는 절대왕정과 로마카톨릭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계몽주의의 성향은 당시 각 유럽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었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대혁명의 계기가 되었고, 영국은 이신론과 자유주의에 영향을 독일에서는 국가건설을 위한 문명화의 일환으로 이용되었다.

 영국에서는 이시기 경험론이 발달하여 과학적 사고가 발달하는데 이바지 하였고, 새로운 윤리사상으로 공리주의가 등장하였다. 책은 공리주의를 일컬어 역사상 처음으로 신이나 종교에 의지하지 않은 새로운 윤리기준으로 평가한다. 공리주의를 우습게 보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이것은 근대시민 사회의 윤리기준으로 자리잡았고, 고전경제학과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초이자 현대복지국가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리주의의 시작은 벤담으로 그는 인생의 목적은 결국 쾌락이고 이를 행복과 동일시 하였으며 이것을 도덕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공리주의가 이토록 강력한 것은 이런 벤담의 통찰력이 인간 본성의 한부분을 제대로 관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독일에서는 칸트가 가장 인상적이다. 이성의 시기에 칸트는 이성을 비판하는 세가지 서적을 만드러냈다.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이다. 칸트는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각각 한계가 있다고 파악하고 이들을 종합하려고 시도하였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합리론은 인간의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경험론은 귀납적으로 얻어진 상대적 진리만을 인정하여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으로의 길을 막았음을 각각 비판한다.

 해결책으로 칸트는 인간이 지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부에서 얻어진 감각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하는 선천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양자가 조화되게 된것이며 지식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일수 있게 된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칸트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에는 결국 우리의 주관적 기능이 있어 물질 자체인 물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인간지성으로 사물의 현상을 분류하고 정리할수는 있으나 그 현상 너머의 본질파악을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한계지은 것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려 욕망의 지배를 받으나 내적인 도덕법칙으로 인해 갈등상황에 놓인다고 말한다. 때문에 칸트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현상이 아니라 물자체에서 찾아야하며 결국 이를 통해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의 능력 한계로 버린 형이상학적 세계를 다시금 인간에게 이끌어온다.

 판단력 비판은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조합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현실적 과학세계를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물자체의 초월세계를 다룬 것이라면 판단력 비판은 이들을 종합한다.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 칸트는 인과율에 따르는 도덕이 자연과 조화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즉 ,물질 세계인 자연에서 도덕의 목적과 일치하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계몽주의와 논리철학자 및 실존주의 철학의 현대철학 부분을 다룬후 과학철학 쪽으로 넘어가며 마무리된다. 사실 결론 부분에서의 언급이 없고, 전체적인 흐름을 말하는 종합이 없었기에 전체적으로 과학을 향한 혹은 과학자로서 서양철학을 바라보는 눈이 생각보다 약한 점은 이 책의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책을 보면서 느낀점은 서양철학에서 절대적 법칙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절대주의적 사고와 감각경험을 추구하고 상대적이면서도 과학에 있어서는 법칙을 찾으려는 상대주의가 대비된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특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에게는 종으로서 공통되는 생물학적 특성과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는 부분들이 있으면서도, 개체로서 살아가면서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부여된 자율적 지능과, 개체마다 주어지는 상대적 환경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에게 부여된 이런 절대성과 상대성으로 인해 세계 역시 결국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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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3-13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이 현대라고는 하지만, 고대, 근대의 특성, 잔재(?)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해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이어져온 엘리트주의, 대중을 일깨워야 한다는 계몽주의, 인공 지능이 나오자 어떻게든 인간 이성을 우월시하려는 자세,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종교와 미신 등등등. 이 혼재가 당연한 건가 싶기도 하고요...

닷슈 2018-03-13 21:10   좋아요 1 | URL
저도 철학을 잘 모르지만 조금이나마 알수록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많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