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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바다에 대해 생각하면 어떤 책에서 보았던, 꽤 큰 물고기가 육지로 나오면서 다리와 팔이 생기고, 이윽고 직립보행을 하게 되는 장면이 떠오른다. 마치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빠른 속도로 축약해서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이다. 이와 같이 모든 생명체는 바다로부터 출발했지만, 진화해버린 우리 인간은 이제 바다 속에서는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는 생명과 죽음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러한 바다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문필가인 쥘 미슐레의 <바다(원제 La Mer)>를 읽으면 바다와 그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유려한 문체를 통해 맛볼 수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와 같은 거장들의 글에서 종종 인용되는 그의 문장들은 참 아름답다.  

그는 원래 역사가로서 <프랑스대혁명사>, <로마사> 등의 역사서들과 사회사, 자연사 관련 책들을 쓰며 특히 기존의 종교, 국가 등의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개별적 인권의 절대성을 강조하였다. 그의 자연사 시리즈 중 하나인 <바다>에서는 열정적으로 생물과 바다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그가 이 책을 쓴 때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친구들에게도 외면받는 가운데,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과도한 개발이나 남획을 막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바다나 육지의 동식물들은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인지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보다는 마음껏 잡아들이고 이용하는 분위기였던 듯 하다. 그 때 저자는 바다를 통해 대자연의 거대한 힘과 그 안에 품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을 느끼며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참고 기다리고 고뇌한 끝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바다를 바라보며'는 바닷가, 해변, 백사장, 절벽 등에서 한없이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관찰한 것을 시적인 언어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바다는 말한다. "내일, 너는 떠나겠지? 나는 아니야. 흙이 된 네 뼈는 수백 년이면 흩어져 버리겠지. 하지만 나는 언제나 당당하게 더 넓고 큰 세상과 어울리며 멋지게 살 거야."(p.27)' 그렇다. 바다는 장구한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고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이 바다와 대적해 이길 수 없다. 또한 인상깊은 것은, 해안절벽에서 관찰한 바다의 모습이다. 앙티페에서 본 바다는 몸을 떨며 전율한다. 그리고는 거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어, 그 조수는 영불해협을 통과한다. 마치 직접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다. 아이슬란드의 바다에는 '우르크'라고 하는 일종의 바다 괴물이 살고 있고, 사람들은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캄차카 반도의 차갑고 깊은 암청색의 바다는 개들조차도 무서워하여, 그곳의 개들은 긴긴 밤 내내 파도를 향해 울부짖고 맹렬한 기세로 북해를 향해 짖는다. 또한 바다에서 발생하는 폭풍우 역시 공포의 대상이다. 거센 물결에 배가 침몰하고, 미쳐 날뛰는 파도는 용암과 같이 무서운 기세로 흰 거품을 뿜는다. 그 소리 역시 엄청나다. 이러한 묘사들은 바다에 대한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2부 '바다의 기원'에서는 바다의 풍요로운 생명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미생물, 산호초, 해파리, 섬게, 진주조개, 물고기, 고래 등 다양한 바다 생물에 대해 관찰하고 묘사하는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젖의 바다'다. 바닷물은 민물과 달리 약간 점액질의 느낌으로, 일종의 유기질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 바다의 점액에 대해 저자는 '물방울이 압착된 두 가지 자연의 솜털(식물성과 동물성). 이것이 가장 생명의 가장 나이 지극한 웃어른이다.(p.109)'라고 말한다.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것이다. 그것에서 각종 동식물들이 생겨났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분류할 때 가장 뿌리 부분에 위치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아주 작고 원시적인 생명체가 되어, 끝없는 바다를 떠다니는 상상에 잠시 빠졌다. 그것도 딱히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고래에 대한 부분 역시 눈길을 끌었다. 고래는 그 거대함으로 이미 신비롭고 또 공포스러운 생물이었을 것이다. 고래는 다른 물고기들과 달리 포유류이기 때문에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인다. 새끼에 대한 모성애 역시 각별하기 때문에, 작살을 맞아 죽어가면서도 어미 고래는 새끼를 보호한다. 또한 고래는 아가미가 아닌 분수구멍을 통해 호흡을 하기 때문에 자주 물 위로 올라와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만일 바닷가에 고래가 밀려온다면 자신의 거대한 몸집에 기관들이 짓눌려 살 수 없다. 그래서 '자연의 창조력이 처음으로 시적인 상상을 발휘해 내놓은 놈 같다.(p.219)'라고 저자는 말한다.  

3부 '바다의 정복'은 인간이 바다를 탐험하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다른 인간과 동물을 지배하고 학살한 역사에 관한 부분이다. 그들은 작살을 사용해 고래를 잡기 시작하고, 망망대해인 태평양을 발견하며 북극해와 남극해에도 진출한다. 그러다 발견한 신대륙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을 몰살시키고 그린란드의 에스키모들을 쫓아냈으며 해양 생물들을 잔혹하게 학대하고 죽이기도 한다. 같은 인간인 인디언이나 에스키모, 아프리카인에게도 잔혹했는데 동물을 그보다 낫게 대했을 리가 없다. 고래와 바다코끼리, 해표 등을 대규모로 학살해서 바다는 피로 물들었다. 그때로부터 약 15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불법적으로 고래를 잡거나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포획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그러한 정복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온다. 앞으로는 자연을 정복하려 들기보다 그들과 공존하는 일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저자는 '바다의 권리'를 역설한다. '모든 순수한 생명은 행복의 순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 각자가 아무리 열등한 자리에 있어도 자신의 좁은 한계를 넘어, 자신을 뛰어넘어, 어두운 욕망을 넘어, 영원히 지속될 무한 속으로 침투하는 순간을.(p.300)'  저자의 바다에 대한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다. 

4부 '바다의 르네상스'에서는 해수욕이 인간에게 주는 효과와 해변에서의 생활의 장점, 바다가 주는 감흥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나 부인들을 바닷가에 한 달 정도 머무르게 하면서 해수욕을 하게 한다면 건강을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요오드가 풍부한 해초 역시 건강에 좋고, 해변의 안식처인 작은 집에서의 생활은 진지하고 매력적이다. 그러고 보니 몇십년 전만 해도 잘 낫지 않는 병에 걸리면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전지요양을 했다고 한다. 또한 질병과 이른 사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것보다, 지친 사람들에게 바다를 통한 치유와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편이 낫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확실히 온천에는 치료 효과가 있어서 온천수 성분의 화장품이나 '탕치(湯治) 요법'이라는 것이 있지만 바다에도 그런 효과가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사실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바다는 이미 보는 것만으로도 우울함을 사라지게 하고 상쾌한 기분을 가져다준다.  

이 책을 읽으며 미슐레의 생생한 묘사와 아름다운 문체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풍문으로만 접해오던 아름다운 문장들을 실제로 읽은 감회가 남다르다. 또한 바다와 생물들에 대한 그의 순수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책을 읽는 내내 프랑스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바다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책을 읽으며 더욱 커졌다. 여유로이 며칠 정도 바닷가에서 지내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음미하며 파도의 합창을 듣고 싶다. 갑갑한 생활에 질린 내게, 이 책은 간접적으로나마 바다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지금까지 미슐레의 책들이 거의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시작으로 자연사 시리즈인 <새>, <곤충>, <산> 역시 앞으로 번역 출간된다고 한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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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21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 이 책 읽는데 힘들었답니다. 바다에 대한 묘사 부분 내용에서 참 좋은거 같은데,,
갑자기 바다 문명사 내용이 언급된 후에는 진도가 안 나가서 애먹었습니다.^^;;
막상 글로 쓸려니 딱히 쓸 것도 없었고요. 그런데 교고쿠도님은 책 속 내용을
잘 정리하셨네요.^^

교고쿠도 2010-12-22 00:46   좋아요 0 | URL
앗, 사실 저도...읽으면서 문체가 아름답긴 한데 쉽게 읽히진 않는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진도가 중간부터는 잘 안나가더라구요.
역시 아름다운 문체와 읽기 쉬운 글이 양립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왜 도덕인가>를 다 읽었지만 글 쓰기가 영 쉽지 않아서(제가 추천한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미뤄지고 있네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