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
강소연 지음 / 부엔리브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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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가 제공한 정보에의하면 해외 유출된 우리의 문화재가 7만5000점이라고 밝혔다. 말이 유출이지 대부분 불법 강탈에 의한 반출이다. 식민지 시대에 유럽으로 도출된 문화재를 비록하여 일제 강점기에 도둑질당한 문화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 또한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버린 한국인에의한 해외 밀반출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래저래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들은 고향을 잃고 떠돌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국보급 문화재들이 수난을 겪는 것은 우리의 국력이 약한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와 일본에서 우리의 일부 중요 문화재들 돌려받는다고 한다. 이집트와 아프리카등 자국의 훌륭한 문화재들을 강탈당했던 나라들이 스스로의 유산을 돌려받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한 번 잃어버린 문화 유산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된다.  

해외에 떠돌고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은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과 같은 일이다. 정체성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이 지극히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의 것을 되찾야아겠다는 의식이 생겨날 리가 만무하다. 우리 문화를 되찾는 일은 국민의 응집된 일념을 필요로한다. 정부도 물론 우리 문화를 되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겠지만 어떠한 노력을 어떻게 기울이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정부가 어떤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려 국민의 호응을 얻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선조가 강탈한 것을 후손들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의 의미하며 미래의 화합과 협력을 위한 근간을 이루고 있음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떠들어봐야 다 부질 없는 짖이다. 특히 일본을 일컫는 말이다. 

그건 그렇고... 

저자의 엄청난 노력이 보인다  

저자 강소연은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 20여 점을 조사하고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저자는 해외에서 길을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재를 알리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저자가 이 책에 기울인 열과 성의는 저자의 혼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될 것이다. 저자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저자를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저자는 우리의 문화재를 면밀히,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하여 관찰한다. 다음은 분석이다. 저자가 그토록 열심히 관찰한 우리의 문화재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해낸다. 그 분석 과정에서 엄청난 자료를 참고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책의 참고자료를 저자는 밝히고 있지않다...이점은 상당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만...저자가 참고한 엄청난 자료들은 주로 불교관련 서적들이며, 특별히 어느 저자의 저서들을 참고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정도의 책을 써 내기위해서 그 얼마나 많은 불교 서적들을 읽었어야 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점이 바로 이 책을 써준 저자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일련의 과학적 방법에 의거한 저술

관찰과 분석을 마친 후에는 저자의 추론이 이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이 책을 과학적으라 일컬을 수 있는 증거들이다. 연구를 과학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그 연구가 어떤 대상을 다루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어떤 방법으로 다루고 있느냐이다. 즉, 대상을 다루는 방법이 과학적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일련의 과학적 과정의 의거하고 있다.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 문화를 이렇게 우리들에게 알릴 수 있는 저자와 같은 인재들이 더 많이 나와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의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제대로 자각하고 우리의 것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다. 정체성으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점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제본의 상태이다. '잃어버린 문화 유산을 찾아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료로서 손색이 없는 훌륭한 서적이다. 그런데 제본에 문제가 있다. 책을 80%정도 읽어가는 도중에 책의 '차례'가 써있는 쪽이 그만 떨어져 버렸다. 이 책을 다른 그 어느 책보다 소중하게 다루면서 읽었건만 그렇게 책장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책의 제본에 문제가 있다. 좀더 튼튼하게 제본했어야 한다고 본다. 더더군다나 오래도록 보고 또 볼 그럴 책인데 한 번을 다 읽기도 전에 탈락하는 쪽이 생기다니...못내 아쉽기만하다... 

두번째는 차례의 목차로 보아서 2장에 해당하는 '수월 관음도 '편이다. 수월관음도는 1323년 고려시대에 그려진 불화로 일본의 교토 모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본의 욕심이 이 불화를 불법으로 강탈해간 것이다. 수월 관음도는 관음보살의 온화하고 너그러운 '자비심'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관음의 몸에서 발산하는 부드러운 빛은 '자비의 빛' 이라고 한다. 이 수월관음도는 해외의 미술사학자들도 세계적인 최고의 걸작이라고 감탄하는 우리의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나아가 서구의 학자들은 우리의 이 수월관음도를 '모나리자에 뒤지지 않는다' 고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표현은 사실상 '모나리자를 능가한다는 의미를 내포' 하고 있다. 모나리자를 능가한다고 말하면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점은 외국 학자들이 수월관음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조사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 인터넷으로 이정도의 정보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러하면 외국의 미술사학자들이 우리의 수월관음도에 이토록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좀더 해주었다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이 아쉬움이 독자로서 너무나 안타깝다. 단적인 한가지 예가 바로 칠선묘를 바탕으로 그려낸 투명사라이다. 투명사라를 불화에 그렸던 것은 우리나라에 그런 양식으로 들어왔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투명사라는 당시 고려가 비단으로 짜내던 투명한 직물의 일종이었다. 수월관음도에 투명사라를 입혀드리는 그 미술사적 가치도 세계적이지만 그런 투명사라를 실제로 고려에서는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우리의 불화에서 그림으로 재현해낸 것이 놀라운 일인 것이다.  

나아가 수월 관음도는 165.5 * 101.5cm 짜리 불화이다. 그러나 일제가 이 그림에 손을 대면서 폭이 상당히 좁아진 상태이다. 실제로는 현재의 크기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이었는데 일제의 무개념 인사들이 폭의 일부를 잘라냈을 뿐만 아니라 그림에 손도 댔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한 한가지가 있다. 바로 그림을 그린 비단이 그것이다. 비단의 폭은 101.5이고 원래는 그보다 더 넓었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 당시 중국의 기술로는 이런 폭의 비단을 생산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고려가 자체로 중국의 비단 생산 기술보다 훨씬 진보한 직조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결론에 달한다. 그렇다. 실제로 고려의 비단 직조기술은 중국을 훨씬 능가하였고 종이를 만드는 기술 또한 그러했다. 그리하여 중국의 황실에서는 고려의 비단을 의복으로 지어업었던 것이고, 고려의 종이로 황실과 국가 문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고려가 중국에서 서책을 수입했지만 엄청난 량의 최고급 종이를 중국은 고려에서 수입해갔던 것이다.  

위의 두가지 내용은 수월관음도에서 고려를 알아낼 수 있는 지극히 사소한 내용일 뿐이다. 미술적인 기법에 관해서는 이를 훨씬 더 능가하는 예술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를 서구의 미술사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화의 규모(165.5 * 101.5cm)에서 보듯이 엄청난 대작이다. 모나리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규모가 큰 그림이다. 모나리자는 53*77cm 의 작품이다. 크기만으로 본다면 두배의 차이가 나지만 그 면적으로본다면 두배가 아닌 그림이다. 엄청난 차이가 있는 그림들이다.  

여러가지 미술사적 가치로보건대 서구의 학자들이 언급하고 있는대로 수월관음도는 결코 모나리자에 뒤지는 문화재가 아니다. 오히려 모나리자를 능가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진 우리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얼른 되찾아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사명감은 스스로를 인식하고 깨닫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저자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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