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Bism: The Future of Quantum Physics>는 <양자역학의 미래, 큐비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구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제목 자체는 괜찮은데 책 설명이 과장광고의 혐의가 짙다. 앞면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큐비즘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라고 쓰여 있다. 책의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00년이나 지속된 양자이론의 역설과 수수께끼를 해결한 큐비즘! 빅데이터가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까지 접수하다!”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본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 큐비즘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까? 큐비즘은 양자역학의 의미 해석에 관한 이론-주장-이다. 양자역학 계산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큐비즘이 새로운 기술을 가져다줄까?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을 따지자면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출판계가 어렵다고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내용을 호도해서 책을 사게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실용적 내용은 0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이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처음에 살펴보면서 번역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오역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역본도 오역 논란이 있다고 들었다. 문학작품은 더욱 번역이 어려울지 모르겠다. 스타일도 중요할 것 같고...  하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적어도 지식을 잘못 전달하거나 이해가 불가능하게 번역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문장이 길면 자르고, 심지어는 말을 넣어서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옆에서 훈수만 두는 입장이 가장 쉬울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지적질’이라도 해서 좀 더 나아지길 바라면 안 될까. (잘난척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눈에 띄는 몇 부분을 다음에 적어 놓는다. 불편하신 분은 여기서 그만 읽으시면 좋겠다.)


머리말에 있는 내용이다.

 

Quantum mechanics has colored my view of the world—QBism has transformed it. (원서 6페이지)


여기서 “it”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당연히 “my view of the world”이다. 하지만 번역서는 이렇게 옮겼다:


양자역학은 내 세계관에 물을 들였고, 큐비즘은 그러한 양자역학을 변화시켰다. (번역서 13페이지)


과장광고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번역했는지, 도대체 의도를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런 의도 없이 역자가 그냥 이렇게 이해했는지도...


무지개 색은 로이 G. 비브가 말한 것처럼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무한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색으로 되어 있다. (번역서 18페이지)


로이 G. 비브는 Roy G. Biv이다. red, orange, yellow, green, blue, indigo, violet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실제 있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라고 무지개 색을 외우지만 영어는 머리글자를 따서 이렇게 외우는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The rainbow does not consist of the colors red, orange, yellow, green, blue, indigo, and violet recalled by the mnemonic Roy G. Biv but of infinite, uncountable number of hues. (원서 12~13페이지)


“mnemonic”(기억법)이란 단어가 있는데 왜 이걸 이렇게 번역했을까...


“8장 가장 간단한 파동함수”의 일부분이다:


  예외적 점인 양극에서는 중첩도 없고 위상도 없다.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양자 조화 진동자와 실제 원자의 에너지 준위들이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불연속적이고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 셀 수 있는 수로 제한된다. 양극은 실제 세계의 이미지를 고정한다. 이걸 모두 합쳐서 비트로 표현한다. (번역서 84페이지)


잘 이해가 되시는지? 원문은 이렇다:


  The exceptional points, the poles, which are not superpositions and don’t have a phase, reflect the discreteness of quantum mechanics. Just as the energy levels of quantum harmonic oscillators and of real atoms are discrete and countable, rather than continuous, many other measurements, including the sense of an electron’s spin, are restricted to a countable number of values—two for a qubit. The poles anchor the image in the real world. Taken together, they are represented by a bit. (원서 93페이지)


문장이 길면 끊어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렇게 번역하면 어떨지?


  양쪽 극은 예외적 지점이다. 이 지점들은 중첩된 것이 아니며 위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지점들은 양자역학의 불연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양자조화진동자나 실제 원자들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하며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 스핀의 방향을 포함한 많은 측정의 결과는 셀 수 있는 개수로 제한된다. 큐비트의 경우는 이것이 2이다. 이 양쪽 극은 실제 세상의 표상이다. 이 둘을 포괄하여 1개의 비트로 나타낼 수 있다.


“양극”은 전자의 스핀 파동함수를 나타낸 구의 북극과 남극을 말한다. “양극”이라고 붙여 쓰니 “양극, 음극”의 양극과 혼동될 우려가 있다. “양 극” 또는 “양쪽 극”이라고 쓰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양자 조화 진동자와 실제 원자의 에너지 준위들이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불연속적이고 셀 수 있는 것처럼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 셀 수 있는 수로 제한된다.” 원문이 한 문장이라고 한 문장으로 번역했는데 너무 길다. 여기서 “전자의 스핀을 포함한 다른 많은 측정은 한 큐비트당 2개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양극은 실제 세계의 이미지를 고정한다.”라는 문장은 그냥 직역일 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역자가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이렇게 옮겨 놓으면 무성의할 뿐이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될 때, 나의 지식 부족을 탓하곤 했다. 원서와 비교해보면 종종 번역의 잘못됨으로 인해 이해가 어려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특히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수를 붙여서라도 부족한 번역으로 인한 지식의 미전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수하시는 분들은 기왕이면 원서를 읽어서 번역본과 비교하시길... 번역본에서 말이 되더라도 오역한 경우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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