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수업 -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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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를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약해져 있을 때 우리에게 그 산은 저주의 산으로 나타난다. ‘아, 왜 올라가는 거야’하는 물음을 계속 던지면서 산을 올라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강할 때 그 산은 아름답고 장엄하게 나타난다. 그 누구도 이산을 왜 올라야 하는 지 묻지 않는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이런 책들에 자꾸 손이 간다는 것은 우리가 많이 지쳤다는 것이다. 삶과 세계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의미 있고 기쁨으로 충만한 참된 세계를 꿈꾼다. 그러나 니체는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이 세계뿐이라고 말한다. 세계에게 고통이 사라질 날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기 위해 서로 투쟁하고 갈등하는 것이 세계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있다. 역경을 ‘자신’을 단련시키는 친구로 삼고 타고난 소질에 감사하면서 이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운명애이다.

일체의 필연적인 것을 견디는 것을 넘어서 사랑해야 한다. 나는 건강보다도 병약함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덕을 입었다. 큰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 해방자이다. 우리는 그런 위험한 자기 지배의 단련 속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87쪽, 니체의 말 인용 중에서)

니체는 그대 자신이 되라고 말한다. ‘그대 자신’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소질을 승화시킨 참된 자기이다. 자신을 통제하고 지배하면서 자신을 일정한 방향으로 길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정교하며 대담하고 춤처럼 경쾌하며 대가다운 확신을 갖춘 것으로서 존재하고 있거나 존재해온 모든 것은 ‘그러한 자의적인 법칙들의 폭정’ 덕분에 비로소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해서 ‘방임’보다는 바로 이러한 폭정이야말로 ‘자연’이며 ‘자연적인’ 것이다.(252쪽, 니체의 말 인용 중에서)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는 것을 넘어서 신체를 다스려야 한다. 중요하고 선택된 품행을 엄격하게 견지해야 우리의 정신이 강해지고 힘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 신체를 완전히 자신만의 법칙 아래 둘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본능대로 자유로울 수 있다.

 

역시나 처음은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인생의 지혜를 들려주는 듯 했지만 그럼에도 철학책인지라 끝은 장대하다.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스며든 니체. 그렇게 도취에 있을 때 사물들은 그의 고양된 힘과 완전성을 반영하게 되고 비로소 아름답고 장엄한 산을 오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세계를 자신만의 완전한 것으로 창조하고 파괴함을 반복하는 것이 삶이고 곧 예술이다. 자신만의 힘을 강하게 내뿜는 사람의 이야기는 이를 읽는 사람들의 힘도 고양시킨다. 웃으면서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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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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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남자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연산군이 장녹수의 치마폭 안으로 기어 들어가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알랭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에 대한 강박증 비슷한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잃어버린 배꼽을 찾아서’다. 배꼽은 탯줄이 잘리고 세상에 태어나던 순간의 상처다. 알랭에게 어머니가 부재해서, 어머니가 사랑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연적으로 가슴에 뚫린 구멍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99쪽 중에서)

하지만 인간은 결코 무한히 좋은 기분을 누릴 수 없다. 어머니가 오면, 사과를 건네면 누릴 수 있을 것 같겠지만 환상이다. 언어가 아닌 말로 순수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도 환상이다. 정말 어머니가 배꼽을 눌렸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눌렀다 해도 그 때 그 아이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어머니란 존재와 모성애란 걸 알고 난 후 자신이 어머니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떠났고 우리는 본래 정서적 고아다.

 

무의미의 축제라고 했을 때 우리의 욕망과 결여를 결코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삶이 무의미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아무 의미 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농담이나 거짓말의 축제일지도 모르겠다.

다르델로는 자기 거짓말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웃음 역시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상의 암이 그를 즐겁게 했다.(19~20쪽 중에서)

다르델로는 좀 심하긴 했지만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비추어지고 싶은 나란 가면을 집어쓰고 산다. 나의 본래 얼굴이란 건 없다. 그렇게 바꿔 쓰는 가면들의 모습 그대로 다르델로이다.

 

뜬금없이 거짓말이 방문해 결여와 욕망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저 해석만 있을 뿐이다. 스탈린이 왜 그런 농담을 해대는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사람만큼 세계의 표상이 있다는 것. 그건 필연적으로 혼돈을 만들지요. 이 혼돈에 어떻게 질서를 부여할까요? 답은 분명해요. 모든 사람에게 단 하나의 표상만을 부과하는 것. 그걸 내가 했지요,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최대한. 그리고 내가 장담하는데, 커다란 의지의 지배 아래 놓이면 사람들은 결국 아무거나 다 믿게 되는 법이거든!”(116~117쪽 중에서)

현재의 의미는 미래에 있다. 흐루쇼프의 세계에서 화장실 대반란은 대변동의 시작으로 의미 잡힌다. 칼리닌그라드의 의미는 다른 도시들과의 대조에서 잡힌다.

“스탈린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기를 즐겼고, 같은 사람 몇에게 늘 똑같은 스물네 마리 자고새 이야기를 해 댔던 진짜 이유, 그건 아직 말하지 않았어.”

“그 이유가 뭔데?”

“칼리닌”(36쪽 중에서)

지금은 칼리닌의 세계이다. 그는 소소하고 구체적이며 개인적이고 불가해한 고통으로 번뇌한다. 소변과 맞서 투쟁한다는 것. 이보다 더 비속하고 더 인간적인 영웅은 없다.

 

라캉은 속지 않는 자는 헤맨다고 말한다. 참으로 무의미한 세계지만 그 진실을 흘낏흘낏 외면한다. 스탈린은 이 멍청이 자고새들을 위해 자신의 힘을 다 낭비해버렸다며 와르르 무너진다. 그렇다 해도 오줌싸개 칼리닌과 숨바꼭질 하는 사냥꾼 스탈린은 너무한다. 막 갖다 붙여서 뭐하지만 웹툰 송곳에 나오는 악한 강자로부터 선한 약자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라는 말이 뭉클하다.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기 한번 못 펴보고 이대로 쭈글이로만 남을지 모르겠지만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최대한 해보고 싶다. 삶에 본래 아무의미도 없으니까 살아가는 순간순간들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두들 비웃지만 나는 다르델로가 되고 싶다, 아직은.

배꼽을 말하는 작가는 치열하게 살아온 삶 이후에 다가오는 또 다른 깨달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어림해본다. 혹은 모든 희망과 열정이 식어버린 이 시대를 보듬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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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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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브레닌은 세상에 없다. 인간의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고 흔히 말하듯 영리한 인간은 매순간이 순간뿐이라는 것을 안다. 시간의 화살은 결국 죽음에 꽂히게 되어있다. 그렇게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경영한다. 하지만 이것은 획득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미래는 와서도 안 된다. 순간 삶의 의미는 허물어져버린다. 우린 또 다른 목표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런 굴레 속에서 인간은 단 한순간도 행복할 수 없다.

 

저자는 토끼를 사냥하는 브레닌을 보면서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극도로 집중하여 자신의 모든 걸 다한다. 브레닌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까지도 오래간만에 저자와 단둘이 조깅하는 게 신이나 눈을 반짝이며 예전처럼 멋진 자세로 달렸다. 저자는 속임이 없고 우직하고 순간에 충실한 브레닌과 함께하며 때로는 질투하고 그를 닮고 싶어 한다.

 

이 책은 그렇게 늑대를 지극히 사랑한 한 남자의 삶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이다. 책표지 상단에 적힌 괴짜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동거일기란 문구가 손을 멈칫하게 했다. 늑대 이야기를 빙자해 철학 이론들을 늘어놓을 거 같았다. 그런데 아니다. 물론 남자의 전공이 철학이기에 그의 고민이 전개되는데 철학자들이 동원되기는 한다.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아마 저자가 늑대 브레닌을 키우면서 무수히 들었을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전개되고 있다. 사람들은 늑대가 늑대답게 살아야 가장 행복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저자는 샤르트르가 주창했던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가 브레닌에게도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자연이 부여한 기질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겠지만 이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즉 본질이 실존을 제한할 수 있어도 결정할 수 없다. 이것은 늑대에게나 인간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저자의 똑떨어지는 답변이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브레닌을 사랑했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저자는 브레닌이 떠한 뒤에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로인해 저자가 변하게 된 방식으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직선의 시간 위에서 삶을 펼쳐낼 수밖에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벼랑 끝에 서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이 순간만 존재하는 순간들이 있어야한다.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고 그래야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다. 누군가를 다시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끝이 다가올 수밖에 없음을 모르는 것처럼 마치 마냥 처음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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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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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피로사회』살피고 들어간다. 성과사회가 도래했다. 'Yes. We can!'이 성과사회의 도식이다. 해냈느냐 해내지 못했느냐에 따라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가 만들어진다. 성과사회를 사는 주민들은 성과주체이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그런데 이 기업가, 성과를 내라고 압박을 해대니 착취가 따로 없다. 매일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른다. 우울증 환자는 이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그 어느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다그치는 사회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파괴적인 자책과 자학이 찾아온다.

 

별안간 구조조정을 들이댄다고 해도 비정규직이란 이유만으로 동일한 임금을 받지 못해도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도 나는 오늘도 안녕하다. 미리 대비해두지 않은 개인의 탓도 있다. 이 잣대는 나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하는 이 살벌한 서바이벌 시스템에서 20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자기계발에 전투적으로 매달리는 것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자기계발 담론에 따르면 지금의 룰에 충실한 것이 개인에게 가장 합리적이다. 사회를 바꾸는 건 힘들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자신의 귀하디귀한 시간을 쏟는다는 건 치명적이다. 그런데 이러면 안 되잖아요.

 

성과사회는 푸코의 규율사회 이후의 사회이다. 규율사회는 부정의 사회이다. ‘~하면 안 돼’가 규율사회의 도식이다. 이 사회는 학교와 병영, 공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은 사회의 무의식적 열망에 의한 것이다. 사회는 총생산성의 최대를 추구한다. 규율주체는 그동안 일을 잘 해왔지만 일정한 지점에 이르자 생산성에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성과주체는 보다 빠르고 적극적이다. 두 주체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성과주체는 규율단계를 완전히 마스터하고 졸업한 것이다.『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도 비슷한 언급을 한다. 아직 덜 아파봐서 청춘인 것이고 천 번은 더 맞아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 힐링 도서들의 말들은 기업 오너들에게만 좋은 이야기이다.

『피로사회』의 저자가 말하는 성과사회는 노동을 강요하고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가 사라진 사회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런 기구들도 운영되는 사회이다. 성과주체를 강제하는 건 그 스스로 뿐이라고 하지만『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 언급된 것처럼 기성세대는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고 말하며 사회구조의 모순을 지적하는 이들을 열심히 노력해보지 않고 환경 탓이나 하는 투덜이로 취급한다.

 

이 책들이 20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는 그래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봐야하지 않겠냐며 힐링계발서들의 모순을 지적하고 우리의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모두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들을 읽은 독자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최소한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내 탓이 아니라고 세상은 나를 냉소해도 나는 나를 다독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는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차별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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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할 땐 스피노자 땐 시리즈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이지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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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람을 거슬러 걸어가려 했던 걸까. 그것은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모두들 그 방향으로 걸어가니까 나도 시선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다음날은 힘들어 다시 커피를 물처럼 마셔댔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니 나를 다그친다. 바람을 타고 간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바람의 다른 이름은 욕망이다.

 

욕망은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욕망이 있기에 삶이 있다. 욕망은 우리 앞에 나타나는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결핍된 것을 욕망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시선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욕망하고 우리자신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흔히 우리는 이런 스스로의 욕망을 포기하고 다른 이가 기뻐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자한다. 그리하여 타인의 잣대를 나에게 스스로 들이댄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거기에 더해 우리의 욕망이 약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것을 타인들도 추구해야만 안정을 느낀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세계가 동일한 것이기를 바란다.

 

스피노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공신화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보인다. 우리는 그들의 의지를 찬양하지만 그들은 사실 자신의 욕망에 고무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저항할 수 없는 욕망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에너지이다.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데 바람이 불어와 우리를 앞으로 밀어낸다. 그 엄청난 속도는 다리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반대로 맞은편에서 바람이 불어와 밀려났다 해도 바람에 저항하고자 했던 의지가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람에 맞설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야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 이정표도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이것이 나란 존재이고 모든 것은 필연이다.

 

아주 어린 아이는 자신에 대한 어떠한 개념도 가지지 않는다. 무엇이 자신을 즐겁게 하고 힘들게 하는 지 전혀 알지 못한다. 직접 만져보고 먹어보고 만나보는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적합한 기억들을 쌓아나간다. 우리의 행위는 이 모든 경험들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필연적이며 언제나 나를 표현한 것일 수밖에 없다.

 

가끔 우리는 그 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후회하고 지금 짊어지고 있는 선택의 의무를 버거워한다. 하지만 모든 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행복해지는 법은 아는 것이다.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알고 자신을 그렇게 구성하는 세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면 스스로 행복하고 보다 의연하게 삶을 운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세계의 필연법칙에 눈을 뜨게 되면 우리는 영원성과 만나게 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한다. 어렵다. 스피노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이 모든 게 운명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더 진취적이고 지금 당장 좀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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