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진료실 : 고혈압 편 - 당신이 그토록 녹음하고 싶었던 진료실 대화
성지동 지음 / 힐링앤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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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내 입장은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에 가깝지만,

만약 신이란 분이 존재한다면 공평하신 분이겠지,

어느 한사람을 향하여 몰아주기로 편애하는 그런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여지껏 살아왔다. 

그리하여 잘하는 부분이 있으면 못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나의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의 남고 나은 부분으로 채우면서,

그렇게 어울리고 더불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세뇌시켜 왔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모르게 불공평하다고 툴툴거리게 된다.

저자 '성지동'으로 말할 것 같으면 1990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95년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으며,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전임의와 존스 홉킨스 의대 순환기내과 연구전임의를 거쳤다.

심장 질환 예방 및 재활 전문가로 고혈압, 이상지혈증, 심장병 환자들의 운동치료 등이 주요 진료 분야란다.

이것만으로도 우월한 유전자를 '모아 모아서'이고 공평하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백번 양보하여 그럴 수 있다고 치자.

 

1990년대 내과 전공의 시절,

PC 통신 하이텔에 ‘jazzman’이라는 아이디로 올렸던 의료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글들로 화제가 되었고,

2002년 '청년의사' 신문이 주최한 제1회 한미수필문학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자타가 공인하는 글쟁이 의사'라는 대목에 이르면 심사가 뒤틀리다 못해 제대로 배가 아파 주신다.

전공분야 경력이 실력을 증명해 주고 있는 셈인데, 글도 그저그런 정도가 아니라 빼어나다.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같은 凡人은 '공평하신'이란 말 앞에 잔뜩 움추러들고 의기소침해져 의욕을 상실하는 고로,

살면서 이런 사람을 자주 안 만나게 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전 같으면 혼자 끙끙거리며 겉으로 내색 못했겠지만,

이젠 주변에 심경을 얘기하고 위로를 기대할 줄도 알게 되었으니, 나름 성장이고 발전이다.

 

한명은 욕심통이 뒤집어진다고 하면서,

간절히 원한다면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공부를 할것이며,

관심을 다방면으로 두루뭉술하게 넘나들려 하지말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으며,

 

다른 한명은, 유려하지만 힘이 없다는 말과 함께,

힘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책 같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의 저자 성지동은 자신의 주요 진료 분야인 고혈압을 가지고 자타가 공인하는 글쟁이 의사답게 책으로 내 주셨으니,

two thumb up해도 부족하겠지만,

이 책을 한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아주 좋지만 매우 위험한 책' 되시겠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고혈압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의 형태로 만들어진 의도는 좋았다.

꽁트 형식을 취하여 재밌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환자 캐릭터를 만화 그림으로 보여줘서 진료실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거나 권위주의에 무게 잡지도 않고,

환자에 맞는 적절한 진료법과 치료법, 처치법, 투약법 등을 캐치해내고 친절하고 조곤조곤하게 안내하고 있다.

학계의 동정을 꾸준히 반영하고 있었으며,

논문 등의 자료를 이해하기 쉽도록 도표 등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이 책 한권만 제대로 읽는다면, 고혈압에 대한 웬만한 궁금증은 해소할 수 있겠다.

이 책의 꽁트 속에 나오는 재치 만점의 의사는 저자 성지동을 반영한 것이니까 심정적으로는 일치하겠지만,

의사도 그렇고, 간호조무사도 그렇고, 현실세계에선 찾을 수 없을텐데,

좋은 의사에 대한 기대치만 너무 높게 잡아 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로 걸어나온다면 백수가 될 날을 받아놨다고 장담한다.

 

암튼, 우리가 고혈압에 대해서 수없이 들어왔던 '~라 카더라'하는 류의 통신들 중에서,

잘못된 것들을 왜 잘못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사례집의 형태로 알려주는데, 몇가지만 맛보기 형태로 소개해 보면 이렇다.

 

"그런데 왜 혈압약 끊으면 큰일 난다,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된다고 다들 그러죠?"

"사람들이 혈압약을 평생 복용한다는 것에 워낙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고혈압이란 게 별다른 증상도 없어서 불편한 점도 없고 하니 그냥 약을 중단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지속적으로 충실히 복용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고 그런 얘기가 나온 거죠. 하지만 안전벨트에 비유했듯이 잠깐 걸렀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고혈압 약이 무슨 중독성이 있어 계속 먹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혈압강하제는요, 그냥 혈압을 낮춰 주는 약이에요. 드시면 혈압이 낮아지고, 중단하면 혈압이 높아집니다. 그뿐이에요. 쓸데없는 의미를 가져다 붙일 필요는 없어요. 혈압 조절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서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다 낮다고 하는 것은 하루 이틀 만에 결정되는 것이 절대 아니고요, 장기적인 문제입니다."(35쪽)

 

위상황과 아래 상황은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는 다른 콩트이지만 내처 읽고 말을 고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뭥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혈압강하제는 '그냥 혈압을 낮추려고' 쓰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은 뇌졸중이나 심부전 등의 심혈관계 합병증을 낮추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합병증의 발병 위험은 혈압의 평균 수준이 높으면 옾을수록 커지고요, 혈압강하제로 혈압 조절을 잘할수록 낮아집니다.ㆍㆍㆍㆍㆍㆍ약은 '좋다'혹은 '나쁘다' 이렇게 단순하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이고요, 일단 '정말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약을 써서 얻을 수 있는 부작용 등의 손해와 저울질해 봐야만 하죠."(59쪽)

두 상황은 혈압강하제를 한번 먹으면 평생 먹는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상반된 논리를 펴고 있다.

 

그리고 아래 돌출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다소 강한 발언도 소신껏 하는데,

이 글 처음에서 얘기했지만, 콩트이고 상상속의 의사이니까 가능한 설정이다.

"혈압강하제라는 약들은 애당초 거의 대개 평생 먹게 된다는 걸 감안하고 만들어진 약들입니다. 먹는 사람마다 부작용이 나고 먹기 힘들다면 혈압약으로 사용할 수가 없지요.ㆍㆍㆍㆍㆍㆍ콩팥이 나빠질수도 있다, 혈관이 늘어진다, 혈액이 끈끈해져서 막힌다, 혈관이 좁아져서 피를 내보내려고 혈압이 높아진 건데 억지로 낮추면 오히려 안 좋다, 성기능이 떨어져서 남자구실 못한다는 등 수도 없이 많지요."ㆍㆍㆍㆍㆍㆍ"이게 다 사실이고 약을 먹을 때 항상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런 약을 팔라고 허가해 준 보건 당국은 도대체 뭘까요? 그걸 국민들에게 처방하는 의사는 또 뭐고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저 다양한 혈압강하제에 대한 편견을 일일이 다 반반할 순 없는데요, 세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첫째, 옛날, 그러니까 1950년대 이전쯤에는 혈압강하제 중 정말 먹을 만한 약이 별로 없고 부작용 많고 쓰기 어려운 약들뿐이어서, 혈압 때문에 거의 다 죽게 생긴 환자들, 소위 악성고혈압 환자에게나 약물치료를 할까, 약을 쓰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혈압강하제에 대한 편견은 따져 보면 이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이 당시엔 편견이 아니라 상당 부분 사실이었지만요. 둘째, 현재는 대단히 많은 종류의 혈압강하제들이 개발되어 있어서 1950년 이전에 개발된 약이 현재에 쓰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ㆍㆍㆍㆍㆍㆍ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압강하제에 대해 음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데요, 평생 약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워낙 일반적이다 보니 약은 나쁘다, 대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약 안 쓰고 조절할 수도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분들이 일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아요."(60~61쪽)

 

싱겁고 짜게 먹는 것과 관련,

다른 반찬은 싱겁고 짠 것이 맛으로 드러나지만,

국물은 별로 짜게 먹는다는 자각 없이 소금 섭취를 많이 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은 잘 집어 설명해준 예이다.

 

뇌졸중 전조 증상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뒷머리로 뭐가 치밀어 오른다, 골이 띵하다, 또는 머리가 아프다는 등의 증상은 혈압이 오르는 것과 실제로는 별 상관이 없고요, 뇌졸중과도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뇌졸중의 증상은 뭔가요?"

"뇌졸중의 '전조증상'이란 것이 있기는 하지요. 뇌졸중 자체의 증상과 또같은 증상이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건데, 반신마비, 한쪽 눈이 잘 안보이는 증상,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증상 등이 일시적으로 생기는 겁니다. 대개는 혈전으로 인하여 뇌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가 뚫린 경우이지요. 정확히는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의 전조증상이라고 보면 되는데, 반면 뇌출혈은 혈관이 터지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는 '전조증상'이란게 없습니다. 그냥 확 생기는 거지요. 그리고 뇌경색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조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전체 뇌경색 중 일부만이 이런 전조 증상을 보이지요. 그리고 이 전조 증상을 의학 용어로 '일과성 뇌허혈'이라고 부르는데, 실질적으로는 뇌졸중이 발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하여 치료합니다. 말은 전조 증상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뇌졸중이 온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럼 뇌졸중은 어떻게 미리 아나요?"

"기본적으로는 언제 어떻게 생길지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84~85쪽)

 

또 심리적인 불안감을 가진 경우 혈압 상승을 일으키기 쉽고,

불안해서 혈압이 높아지고,

높은 혈압을 보고 더 불안해지고,

그리하여 혈압은 더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경우,

공황장애라는 극적인 상황으로 발현하는 경우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한가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귀밑샘(이하선)이 커져 있는 것 같은데요, 원래는 간경화일 때 커지는 경우가 있지만, 간경화까지는 아니라도 술을 아주 많이 드시는 분들이 그런 경우가 적지 않더군요.(52쪽)

라는 부분의 내용과 관련하여,

이렇게 얘기하고 끝내버리면 '~카더라 통신'과 다를게 없다.

근거를 대어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체에 관한 얘기인데,

그림 속 인물들은 각 상황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내지는 증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다시말해, 그림 속의 인물도, 글 속의 인물과 마찬가지로 가공의 인물인데,

그림은 책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글은 현실로 걸어나올 수 있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내가 그림을 향하여 너무 야박한 건가?

생략할 수는 있어도, 다르면 틀리게 되고,

그러면 큰 틀에서 개연성과 핍진성이 떨어지고,

신뢰감을 잃게 된다.

 

다시 얘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내 상황을 돌이켜보니...내가 그동안 치열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나오는데,

그건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겠다.

 

하지만 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하면서까지 치열하고 절실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처럼 아무 계획도 없이 잡다하게,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그때 그때의 느낌들을 이렇게 붙들어 기록해 두는 걸로,

지금 이순간을 사는 걸로 만족한다.

 

며칠 전 2008년에 썼던 독서 일기를 볼일이 있었다.

나와 글을 함께 읽은 친구의 평은, '예전이랑 비교하여 많이 나아졌다'로 일치를 보았다.

그걸로 됐다.

내가 남들과 비교하면 어느 한분야'' 특출나지 못하여 그 분을 향하여 공평하지 못하다고 툴툴거리고 싶다가도,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내가 노력한 만큼은 나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공평하신~'이랄 수밖에 없다.

비교는,

남과 나를 비교하는게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거다.

그 정도면 족하다.

완전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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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6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04-29 00:41   좋아요 0 | URL
제가 말이랑 글은 이렇게 해도,
실은 욕심통이 뒤집어진다고...저도 님과 별다를게 없는,
제 자신을 들들볶는 류의 욕심 똥덩어리랍니다여.

제가 맨날 환자들한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돈은 없으면 훔칠 수라도 있지만, 건강은 그나마 훔쳐가질 수조차 없다.
우리, 욕심통을 뒤집어 쓰는 한이 있더라도,
건강은 챙기자구요~ㅅ!

2015-04-26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04-29 00:44   좋아요 1 | URL
에리하신걸요~, 사간과 신사&탑건 트레일러라고 되어있더라구요.
이 둘이 환상의 듀엣이래요~^^

이 댓글의 덧글에도 남겼지만,
저도 말만 그렇게 할뿐이지,늘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고 나아가려구요~^^

알케 2015-04-28 17:18   좋아요 0 | URL
`12년째 매일 아침 일어나자 마자 혈압약을 먹고 있는 본태성 고혈압 환자`로서 꼭 읽어봐야겠군요

양철나무꾼 2015-04-29 00:46   좋아요 0 | URL
강추합니다.
근데 이 책 읽고나시면 `그동안 난 속았었다~--;`하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