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얕은 물은 겉으로 졸졸 흐르고, 깊은 물은 안으로 소리 없이 흐른다.

하지만 깊든 얕든 간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70대 노교수인 라종일과 30대 청춘인 김현진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글인 이 책'가장 사소한 구원'은,

김현진이 쓴 것이라니까 찾아 읽기는 했지만, 사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편지글이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이미 고인이 되어 다른 쪽으로 업적이 회자되는 것도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편지글을 엿보는 것 같아 왠지 께름칙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라종일이 누군지 몰랐던 터라 불거진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편지글의 형태를 띄었고,

내용은 개인적이나 사적인 것도 있지만,

사유나 성찰의 깊이는 엄청난 것이어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70대 노교수가 30대 청춘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 쓰여진 편지글을 우리가 엿볼 수 있는게,

엄청난 영광이고 김현진이 베푼 수혜가 되는 셈이다.

 

한사람의 사상과 종교, 아니 삶을 송두리째로 경험하게 되는 건 '아주 사소한 구원'일수는 없고,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김현진이 나눠준 수혜에 감지덕지해야 한다.

때문에 편지글의 형태를 가장한 대담집 내지는 인터뷰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고,

전기나 자서전이라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겠다.

 

사람만이 사람을 망쳐 놓을 수도 있고,

사람만이 사람에게 구원일 수도 있다지만,

그 구원이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냥 아무나 구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외로움에 사무치고 고독에 몸무림 치더라도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구원이 아니라 쳐다보기도 싫은 원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나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개성이나 취향, 성품에 관한 문제일텐데,

난 그 기준으로 적어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꼽는다.

 

예를 들어, 같은 음식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다면,

아주 사소하지만 사람이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구원은 커녕 애물단지일테고 말이다.

 

김현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88만원 세대이고 알콜리즘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 따위는 전작을 통하여 다 아는 내용이고,

가난하고 솔직함을 당당하게 표현해 내는게 매력인,

어느 정도 아픈 것 가지고는 엄살 떨지 않는, 당찬 청춘이라고 생각했었다.

 

라종일은 누구인지 몰랐던 터라,

70대 중반의 노교수라고 하니, 고루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올드한 사람이 아닐까 지레짐작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둘의 설정이 바뀌었다.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엄살 떨지 않는,

씩씩하고 당찬 청춘인 줄 알았던 김현진의 내부에,

실은 누구보다 부드럽고 유연한 자아가 들어앉아 있었고,

상처받기 쉬운 유약하고 연약한 영혼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종의 위장과 방어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씩씩하고 당찬 겉모습이었던 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야말로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하고 그리하여 길들여짐에 연연해 하는,

바꾸어 말하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고루하고 올드한 영혼이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딸로 태어나 자신을 괴롭힌 수많은 남자들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하는거나,

음악 취향이 편협해서 카펜터스와 비틀즈 그리고 조용필 밖에 듣지않는다고 하는 것들이,

보수적이고 복고적이라는 나의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김현진이 겉으로는 씩씩하고 당찬 청춘인양 하면서,

안으로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을 시대와 부모탓을 해가며 상처에 아파하고 피흘리고 퍼질러 앉아 있을때,

라종일은 격변하는 세월의 변화를 제때에 제대로 읽어내는 안목과 더불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까지, 를 꿰뚫어 통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개혁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구차하고 기나긴 사정을 다 듣고 난 선생님은 세가지를 이야기하셨다. 첫째,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둘째, 나는 네편이다. 셋째,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느냐?(6쪽)

궁지에 몰린 쥐가 도망칠 틈새를 찾아내듯이,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구원에 매달렸다. 그것이 선생님과의 서신 교환이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선생님은 고통을 활자로 옮기라며 단호하게 이야기하셧다.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당신이 그 고통들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소 낫게 될 것이다."(7쪽)

진단이 제대로이니 처방도 적절할 수밖에 없다.

 

보통 편협하다거나 독선적이라는 말을 할때,

시야가 좁고 낮아서 어느 한부분 밖에 바라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눈 흐리고 귀 어두워져 갖게 되는,

주변과 타협을 안하게 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옳다고 주장하는 에고(ego)와 동의어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나이 먹는다는 것은,

연륜에다가 경제력이 주는 여유로움을 옵션으로 장작하게 되어,

오히려 그 어느 쪽보다 유연하고 부드럽고 너그러워지는 것이라는걸,

70대 중반의 노교수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제각각의 불우했던 경험이나, 상처나 고통 따위를 지니고 살아간다.

유독, 어느 누구만, 특별하게 불우하거나, 깊은 상처나 큰 고통 따위로 몸부림 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이들면서 느끼는건,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상처나 고통도 개인 한사람 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상이나 사회상을 반영하는 집단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이나 상처, 고통으로 범위를 좁히더라도, 적어도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암튼, 나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은, 피해와 상처는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적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상처입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 어디엔가 가해자를 발생시키는 일이다.

자신이 상처입은 피해자라는 사실만으로, 누군가 맘 아파하고 상처 입은 사람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렇게 나약하게 '아파요, 아파요~'하면서 엄살을 부릴 순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걸 70대 중반의 노신사는,

현진의 예리한 비판 의식은 그리고 그것을 섬뜩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글재주는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ㆍㆍㆍㆍㆍㆍ그런 능력은 현진이 허공에서 혼자 얻은 것입니까? 내가 높이 평가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하는 현재의 현진을 이루고 있는 어떤 자질은 선천적으로나 혹은 후천적으로라도 부모님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입니까? 부모님은 현재 현진이 처한 어려움의 원인이고 상처만 주었을 뿐입니까?(176쪽)

라고 끄집어내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이쯤에서 끝냈다면,

그냥 70대 중반의 노신사 정도로 치부해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여기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얘기하고, 그 근원으로 효를 끄집어낸다.

효는 부모님께 잘해드리는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

다시말해, 효의 근본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관한 큰 긍정이라고 얘기하는데,

이쯤되면 내공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처 입었다면 그것은 상대방만 탓할 수는 없다고...툭 한마디 던진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언젠가, 신선이 되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썼었단다.

우리 민간신앙에서 신선은 매우 매력적인, 사람으로서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인 존재입니다. 신선은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함께 있습니다. 자연의 한 과정으로 산다기보다는 존재한다고 해야겠지요. 그 대가는 사람들에 대한 일체의 공감, 일체의 동정이나 연민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결국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48쪽)

어찌 되었건, 그가 들려주는 사사로운 얘기들이 하나하나 내게 손내밀어주는 사소한 구원인것 같아서,

위안이 되고 힘을 얻게 되는 그런 좋은 책이었다.

(물론 정치를 할 요량으로 쓰여진 인터뷰집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끙~(,.))

 

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나는 김현진에게 하고싶은 말인데, 사랑과 관련하여...

나이 70대 중반의 노교수라도 남성은 남성이라는 것이고,

그걸 라교수는,

언어의 그리고 사고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고대 희랍 사람들처럼 사랑이라는 말을 특별한 경우에만 국한해 사용하고, 다른 경우에는 다른 낱말을 사용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호감가는 이성(혹은 동성)을 봤을때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어떤 말을 쓰면 좋겠습니까?ㆍㆍㆍㆍㆍㆍ(99쪽)

라고 내심을 얘기하고 있다.

김현진이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내용이 편지글만 발췌한것 같다.

그 사이에 따로 오고간 전화통화나 문자 메시지 따위가 있는 듯 한데 생략되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내용을 맘대로 미루어 짐작하고 상상하게 되는 경우도 었었다.

 

또 하나는 라종일 교수를 향한 것인데,

리영희 교수님이랑 관련하여,

나는 아직도 교수님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두루뭉술 넘어가 버린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색깔을 달리하는 경우, 이렇게 대충 넘어가 버리게 되면,

또 다른 모호함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니까 말이다.

 

김현진의 지명도 때문에 택한 책이지만,

이 책을 읽고 느끼고 깨닫고 배우는 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라종일에게서가 더 많았는데,

간단히 요약하라면 이쯤이 되겠다.

 

얕은 물은 겉으로 졸졸 흐르고, 깊은 물은 안으로 소리 없이 흐른다.

하지만 깊든 얕든 간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