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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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이었다.

그녀는 환자가 하도 말을 못 알아듣자,

"보청기를 하셔야 겠네요?"

했더니,

"보이차를 왜 해? 나 보이차 안 해도 돼. 사주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아무 영양가 없는 보이차는 먹으래, 췟."

하고 역정을 내시는 거다.

 

그보다 며칠전엔 다른 환자가 와서,

"내가 부애가 치밀어서 죽는 줄 알았어."

하며 윗옷 단추를 열고 부채질 하는 시늉을 한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왜여?"

하고 겸연쩍은 미소라고 짓는데, 그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영낙없는 울상이다.

"내가 허리 아픈데 먹는 약을 달랬지, 언제 무릎 아픈데 먹는 약 달랬어?"

"네에~ㅇ? @@"

"내가 이래뵈도 눈썰미가 있어서 다 알어. 무릎 아플때 먹는 약이랑 똑 같더구만..., 으흠~!"

그녀는 계지(桂枝)와 계피(桂皮)와 유계(柳桂)와 계심(桂心)의 용처가 다르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대증치료를 하는 양약이 무릎용 진통제와 허리용 진통제가 따로 있는줄은 몰랐다, 끙~--;

 

어젠가는 허리가 아파 돌아가시겠다는 환자가가 와서,

"내가 허리 하나만은 성한 것이 자신 있었는데, 왜 이렇게 안 낫는거요? 혹시 상한 약을 지어준거 아니요?"

"네에? 며칠이나 치료를 받으셨다구요~. 8~9년을 하루같이 다니며 치료받으시는 분들도 많아요."

라고 했더니,

"그게 미친넘이지 성한 사람이우? 왜 성한 나를 미친넘이랑 비교를 하는거야, 내 참~(,.)"

이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본위로,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건강과 관련하여선 정도가 더 심하다.

그래도 섣불리 이들을 갖고 잘ㆍ 잘못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잘ㆍ잘못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에 따라 이리저리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해서,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어?'하는 일들이 번번이 '사람이니까 저러지, 누가 또 저럴 수 있겠어?'하는 일들로 바뀌어 버려, 제대로된 가치관을 정립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 책 처음의 시작이기도 하고, '로드 스튜어트'가 부른 노래 가사이기도 한,

'내가 사는 이유는 오직 당신 곁에 눕기 위해서이나, 이렇듯 달빛 비치는 길 위를 헤매기만 한답니다.' 하는 '문 라이트 마일'처럼, 당신 곁에 눕고 싶지만 달빛 비치는 길 위를 헤매기만 하는게 현실일지라도,

어떤 의미로든 '사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행복할지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문라이트 마일'은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상처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기 나름이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여러가지인데,

본인의 의지로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 예를 들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의 지극 정성으로 극복하는 사람도 있고,

영영 극복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렇기 때문에...우리는 사람을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상처를 끌어안고, 피 흘리면서도 꿋꿋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는것만으로 기절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ㆍ악이나 잘ㆍ잘못의 판단 기준 같은 건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행동을 했다고 하면,

그 결과가 '당신 곁에 눕고 싶었으나, 헛다리짚어 달빛 비치는 길 위를 헤매는 그런 것일지라도...

그게 삶의 이유가 될 수 있고,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데니스 루헤인을 좋아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이다.

너무 인간적이어서,

인간적인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실수를 끌어안고 뭉개고 앉아 있는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치고 나아지려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생각이나 가치관이 유연한 것인데...

이건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듯,

천안삼거리에 걸린 능수버들처럼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축 늘어진거랑은 다른거다.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이어야만 가능한 태도이다.

 

이 책이 '켄지와 제나로'시리즈의 마지막 편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다시 이들 환상 콤비 플레이어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우면서도,

이들의 앞날을 내다볼때 바른 선택인 듯하여 기꺼이 보내줄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암튼, 난 '켄지와 제나로'의 사람을, 일을, 그리하여 삶을 향한 이같은 호ㆍ불호가 맘에 드는 것이고,

이것이 이들에게, 또 데니스 루헤인에게, 내가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끔직하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다행히 그가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44쪽)

 

솔직히 총을 들고 다니는 건 양배추 먹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다.(45쪽)

 

아이의 얼굴 가득 엄마와 똑같은 미소가 번졌다. 너무나 따뜻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미소.(96쪽)

 

내가 아는 한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친구들 사이의 전제는, 누군가 마이크를 싫어한다면 정작 우리가 싫어하는 건 그가 아니라 말한 당사자가 된다.(228쪽)

 

93번 도로 남쪽으로 달리는 도안, 문득 나를 초조하게 만든 일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커다란 벽돌처럼 내 심장을 짓누르고 처절한 스트레스로 나를 괴롭혔던 일들. 깨어져 회복이 불가능한 일들, 잃어버렸기에 되돌릴 수 없는 일들 사랑한다. 나는 내 짐들을 사랑한다.ㆍㆍㆍㆍㆍㆍ

아버지는 자신의 짐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어느 것도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상처 많은 여인을 사랑하는 상처 많은 남자다.

ㆍㆍㆍㆍㆍㆍ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콜롬비아 로에 접어들었을 때쯤 하루가 자두 빛 하늘 속으로 빠르게 접혀들었다. 가벼운 눈발도 주저하듯 계속 흩날렸다.ㆍㆍㆍㆍㆍㆍ사실 그 모든 것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으나 그건 아니었다.(388~389쪽)

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하나도 없다.

복잡하지도 않고, 군더더기도 없다.

단순명료하다.

 

아무래도 역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자는 '켄지와 제나로'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를 알고,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반영한다.

많은 번역자들이 언급했던 우리말을 벼리는 재주이다.

다시 말해 책상머리에서  사전만 펼치고 앉았지는 않는다.

사전도 안 펴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거기 실려 있는 말은 화석화된 개념이지 저잣거리의 말이 아니다.

그는 살아있는 표현, '이 땅의 켄지와 제나로' 들이 사용하는 '잘 익은 말'들로 갈무리해 낸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켄지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나로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있다.

지금까지 가브리엘라에게는 흡연의 증거를 들키지 않았으나 세월은 흐르고 아이도 자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악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만큼, 대개의 경우 나는 악습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을 견딜 수가 없다. 그들은 자기보존을 위한 자아도취적 본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혼동한다. 더욱이 소속 공동체의 삶을 빨아내기도 한다. 앤지도 내가 금연을 원한다는 사실을 앍고 있다. 그녀도 금연을 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담배를 끊지 못했다. (117쪽)

아무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지만, 성숙한 사람(그의 표현대로라면, 상처 많은 여인을 사랑하는 상처 많은 남자)만이 제대로 된 사랑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다.

다시말해, 혼자 있는 것이 외롭고 쓸쓸해서 자신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처럼,

자신의 가시로 상대방의 가시를 부딪혀 부러뜨리지 않고,

상대의 가시에 제 살이 찔릴 줄 알면서도 옆으로 비껴 서로를 끌어안는 그런 사랑 말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데니스 루헤인의 그것을 그냥 재미나 흥미를 위한 장르소설이나 하드보일드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구절들 때문이다.

항상 눈높이를 낮추어 독자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부드럽고 넉넉한 어조로 얘기하지는 않는다.

비판도 할 줄 알고, 불의를 향하여 목소리를 높일 줄도 안다.

"이 화려한 도시의 이면을 봐요. 그럼 수많은 균열과 만납니다. 두 자리 수에 이르는 실업률에 고용주의 착취. 사회보장?(웃음) 개뿔도 없어요. 보험? 우리 선조들이 당연히 여겼던 노동에 대한 보상, 사회 안전망, 공정임금은 물론,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금시계도 모두 사라져버린 거요."(106쪽)

 

"ㆍㆍㆍㆍㆍㆍ이봐요, 브라이언, 거론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166쪽)

 

"의사가 사람 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결국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매상 문제입니다. 재화와 용역을 예로 들어 최저가에 얼마나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환자들을 처방하고, 내쫒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비싼 치료로 유혹하고ㆍㆍㆍㆍㆍㆍ."(184쪽)

나중에 이런 말을 한 자의 진의가 밝혀지지만,

암튼 미국이란 나라는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의료보험 제도 하나만 놓고봤을때도 암울하고 꿀꿀한 것만은 사실이다.

얼마전 오바마 정부는 건강개혁법안과 관련하여 미 연방 정부가 셧다운하는 그런 사태로까지 치달았었으니까 말이다.

 

세상은 변하여, 내가 사는 이유는 오직 당신 곁에 눕는다' 는 희망을 위해서이나,

'이렇듯 달빛 비치는 길 위를 헤매기만' 하는게 현실일지라도,

아직은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따사로운 햇볕은 아닐지라도, 서늘한 달빛일지라도...길을 밝혀주고 안내해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모쪼록 켄지와 제나로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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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11-21 18:08   좋아요 0 | URL
책 안읽은지 백만년입니다. 아마 문라이트가 제가 근래 마지막으로 본 책일 듯 ㅎ 전 이 커플 이야기로 한 오십권만 더 나왔으면 합니다. 현장에서 글 남겨요. ㅋ 찬 날씨 강건하시길

양철나무꾼 2013-11-21 18:16   좋아요 0 | URL
우와~^^
알케님이다, 부비 부비~, 와락~( )

날씨가 엄청(맘 가난한 사람 얼어죽게) 추워요.
현장이면 작년 어느땐가처럼...맥심 커피 두개를 머그컵에다 타서 드심서 언 몸을 녹일 수도 없으실테고,
옷을 꽁꽁 동여매 입으시고,
팔을 쭉 길게 늘여 팔짱을 껴서 스스로 감싸 안는 수밖에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