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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은둔자 - 완벽하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
마이클 핀클 지음, 손성화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평점 :
27년. 타인과 고립되어 도둑질로 연명한 남자의 이야기
극단적으로 외부와 자신을 차단해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을 위한 책
숲 속의 은둔자. 마이클 핀클. 살림출판사.
책의 선택권이 없는 게 서포터스 활동의 장점이다. 평소라면 읽지 않을 책을 읽는 재미는 의외로 쏠쏠하다. 다양한 책을 읽고 싶지만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경쟁률이 높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시도했으면 한다. 즐거운 경험이 될지도.
20대 초반의 청년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메인주에 괴담이 시작되었다. 분명히 문을 잠그고 나갔는데, 돌아오니 문은 열려 있고, 식량, 책, 배터리 등이 사라지고 없다. 가끔은 침낭까지도 사라진다.
어떻게든 흔적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지만, 흔적은 쉽게 보이지 않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가면 갈수록 지쳐간다. 이웃 주민을 의심하고, 문이라는 문은 전부 못으로 박아버리고. 비싼 방범 도구를 사들이고.
도둑질 자체는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내 집에, 계속 침입하는 누군가가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미칠 것 같지 않을까. 가장 평온해야 할 곳이 지옥이 된 상황까지 관대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터.
우연히 범인이 잡혔다. 알고 보니 27년 동안 메인주에 있는 숲에서 혼자 살아온 은둔자라고. 이 황당한 이야기가 미국 전역을 퍼져 나가고, 이 소식을 들은 저자는, 이 남자를 만나러 간다.
진실이 아닌 허위를 말한 대가로 추락해버린 저널리스트인 저자로서는, 이 남자가 특히 끌렸던 모양이다. 아마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본인도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사람이 부담스럽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에 전부 부응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은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지는 않는다. 혼자를 좋아하긴 하지만 27년 동안 혼자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것 너무 외롭잖아.
하지만 이 사람은 했다. 인가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면서도, 인간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 채. 혼자 중얼거리는 것조차 하지 않은 채. 철저한 고독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이 고독한 남자의 몇 안 되는 위안거리 중 하나는, 책이었다고 한다. 책은 보이는 대로 훔쳐갔다고.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가져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책이 가장 좋았던 모양이다. 일단은 잡히는대로 읽긴 했지만, 통속적인 책만 있어서 별로였다나. 아니 멋대로 훔쳐가면서 너무 따지는 것 아냐. 속으로 투덜거렸다.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단순한 여가 선용을 위한 독서는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에서 꼭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독서 방식도 나쁘지는 않았다. 훔쳤다는 것만 빼고.
사실 ‘숲 속의 은둔자’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읽는 책은 아니다. 교훈을 얻으려면 얻을 수야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특이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구나. 이 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책. 어쩌면 이 남자의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이야기라는 점만 뺀다면.
27년 간의 고독.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고, 다시 인간과 마주치게 된 그는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 나와 다른 사람에게 흥미가 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이, 좀 더 넓어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