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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평점 :
이것은 바로!
멸치의,
멸치에 의한,
멸치를 위한 세상이로다~!
어릴 적 엄마가 커다란 국물멸치 잔뜩 사오시면
신문지 쫙쫙 펴고
그 위에 쏴르르 멸치 올리고
엄마가 하시는 걸 보며 따라
그야말로
대가리 떼고 / 똥 빼고 를 무한반복 했었던 기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신문지 위 멸치떼를 보고 있노라면
잠시 꾀가 나서
대가리 떼는 둥 마는 둥
똥 빼는 둥 마는 둥
느릿느릿 꾀를 부리며
평소엔 보지도 않던 신문에 눈길이 가곤 했따.
수없이 많은 멸치를 다듬다가
멸치는 왜 뱃속에 똥이 이리 크게 있는거야!
똥 안빼고 대가리만 떼면 편하겠구만!
엄마한테 대가리만 떼면 안되냐고 묻기도 여러 번.
아마 많은 엄마들이 같은 질문을 받으셨을 듯 하다. ㅎㅎ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멸치를 다듬는 건지
내가 다듬어 지는 건지 모를
길고 지난한 다듬기 시간이 지나면
드디어 그 시간을 보상해줄
구수한 멸치육수를 한껏 우려낸
잔치국수 타임이 시작된다~
육수 우리고,
소면 삶고,
취향껏 채소 썰어 넣으면 끝!
멸치 다듬는 시간은 한~ 참이었는데
후루룩 쩝쩝
잔치국수는 눈 깜짝할 새
목구멍을 스르륵 통과해 사라져 버린다.
뱃속에서 아까 다듬은 멸치들이
유유히 헤엄치며 다니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지금은 이미 다듬어진 멸치들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세상이다.
그림책 읽는 내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너무나 소중했던
어릴 적 엄마와 멸치 다듬던 추억이 떠올랐다.
아마 요즘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읽는다면
엄마한테 함께 멸치 다듬기 하자고
졸라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