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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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언제 처음으로 읽었더라. 그 언젠가 이 책을 읽고 정이현에게 반해 그녀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볼 때 그녀의 이름을 말하곤 했었다. ‘안녕, 내 모든 것’, ‘작가의 글쓰기’, ‘사랑의 기초’, ‘오늘의 거짓말’, ‘’너는 모른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까지 그녀의 글들을 읽어댔다. 하지만 아쉽게도 달콤한 나의 도시만큼 그녀를 설명하기 좋은 책은 보지 못했다. 단편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도 꽤 매력 있었지만 그녀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아무래도 달콤한 나의 도시인 듯 하다.

처음으로 읽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태오의 마음에 공감했다. 세 번째 읽을 땐 연하의 남자를 만날 때였고 태오를 바라보는 은수의 마음에 공감하며 쓰린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쨌든 남들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의 나이이고 몇몇 연애의 과정에서 왜 그 사람은 내가 갖는 만큼의 마음을 주지 않는 거냐며 떼를 써보기도 하고 떨리지 않는 가슴에게 이 사람이 맞는 거냐고 묻기도 하며 대한민국의 오은수로, 재인으로, 유희가 되어 뼈아프게 읽었다.

그녀의 글에 줄을 치다가 책 한권에 통으로 밑줄을 긋고 싶어져 그만 두었다. 대한민국의 여자로 살아가는 일은 어쨌거나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글에 공감을 하는 거겠지.

태오같은 사람을 만나는 동안은 속으로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보살핌을 받고 사랑을 받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구나. 정말 고맙다, 하고 느끼는 와중에 그의 마음을 외면해보기도 하고 그 치기어린 마음을 우스워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덜 아팠으면, 덜 아팠으면 하고 웃기지도 않을 동정을 품었던 듯 하다. 한편으론 어린 마음에 날 사랑하는게 아닐까라는 조바심을 느끼면서 왜 그 사람은 그리도 어린 걸까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내가 그 나이였더라면 좀 더 마음을 내던져 사랑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나이로 돌아간대도 난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마음을 내던져 사랑할 용기조차 품지 못했다. 그러니 태오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어린 사랑에 대한 동정심과 고마움인 동시에 부러움이었을 것이다. 너는 벌써부터 그렇게 마음을 주는 법을 아는 구나, 라는.

우리는 무엇이 두려워 마음을 내던져 사랑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젠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 마음을 내던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행여나 내던져진 그 마음이 내 삶을 곤궁하게 만들까봐. 혹은 내던진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골인하지 못하고 튕겨진 채 산산이 조각나 버릴까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사랑에는 모든 걸 내걸고 사랑하고 싶다. 모두가 나중을 생각하느라 지금 불행한 것 아닐까. 그리하여 결혼을 하지 못해 불행하고 결혼을 해서 불안하고 이혼하지 못해 불행하고 이혼해서 불행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다짐을 하고도 또 고민하고 멈춰 설 나를 안다. 그래도 비슷한 순간이 내게 왔을 때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이 책이 내게 주었으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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