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픽션 걷는사람 소설집 11
최지애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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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픽션 앞에 ‘달콤한’을 놓았다.

픽션이니까 당연히 달콤할겠지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최지애 작가는 노린 걸까?

독자의 뒷통수를 때리고 싶었던 거?

메~롱!

당신들이 상상하던 달콤함은 여기 없다구!

책을 덮으며 나는 물었다.

그럼 우린 어디서 맛볼 수 있나요, 달콤함을...

킬링 타임용 영화를 주로 보는 관객은 말한다. 세상이 갑갑한데 영화마저 그런 걸 봐야하냐며, 두 시간 동안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낄낄거리고 싶다고, 때려부수는 걸 보며 스트레스 풀고 싶다고!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멸종 위기 인간이 되어가는 ‘독자’라는 사람들은 어떨까?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요 사이엔 친구도 거의 못 만나고 가족과 직장 동료 몇몇 뿐이다. 소설을 펼치면 평소 전혀 만날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 한국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 나와 연령대가 아주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읽으면 부럽다가 애잔했다가 울다 웃게 된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결국 소설 읽기는 나를 만나는 일이다.

최지애 작가의 단편집 <달콤한 픽션>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은 달콤하지 않았다. 돈에 치이고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세상에서 소외된다. 그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으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돈 많이 벌어 효자가 되고 싶었다. 실천하지는 못했으나 제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싶었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달콤한 픽션> 속 미주는 외친다. "자고로 모든 결말은 해피엔딩이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낭만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우리도 그렇게 되길 바라기에 달콤한 픽션과 달리 현실은 반대이기에 웃프다. 소설 속 부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내 옆에, 우리 주위에 있을 것이다. 길을 걷다 스쳐지나가는 사람 중에, 은행 ATM기기 앞에 줄 서 있는 사람이,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해피엔딩을 바라며 살아간다. 지금이 비록 남루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각 소설의 끝을 열어두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삶은 사는 것이고 계속 되어하니까.

단편 하나하나 인상 깊었고 그 주인공들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어떤 이의 삶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끝까지 읽어내었다. 이 리뷰에서 여덟 편 전체를 언급할 수는 없어서 <선인장 화분 죽이기>와 <까마귀 소년>를 소개한다.

<선인장 화분 죽이기>의 주인공은 60대 여성으로 외손주를 돌보고 있다. 딸 내외는 주말부부인데 딸은 늘 늦게 퇴근한다. 남편은 젊었을 때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갔다가 딸의 결혼식 때 슬그머니 돌아왔다. 주인공은 딸을 결혼시킨 다음 이혼하려고 했으나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집에 눌러앉았다. 그녀는 남편이 오전 산책을 하고 뒤뚱거리며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선인장 화분을 집어 든다. 남편이 지나갈 때 베란다 밖으로 화분을 던지면 머리 위에 정통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장면은 어찌 보면 섬뜩하지만 한편으론 그녀의 심정이 십분 이해되었다. 그러나 제목처럼 선인장 화분을 죽이지는 못한다.

남편과 이혼하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를 하고 싶은 그녀는 문화센터 일본어 회화 강의를 하는 센세를 흠모하고 있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헤어보톡스로 머리밑이 휑하지 않도록 치장한다. 손자에겐 할머니로 불려도, 아줌마와 할머니 어디 쯤인 60대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다. 그러나 자신 외에 한 명 더 있는 학생 김상과 센세가 마치 부부처럼 나란히 백화점으로 식당가를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이 장면 이후 그녀의 심경은 서술되지 않았다.

그리고 손자를 데리고 전시장에서 시간을 보낸 후 지친 몸으로 아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양손 가득 마트 봉지를 들고 오는 딸과 밤 산책을 하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그녀가 우두커니 서있는 채로 소설은 끝이 났다. 그녀는 망가진 몸을 이끌고 밤 산책을 다니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었지만 “한 번도 꽃 피우지 못한 멜로칵투스 화분이 끝내 제자리에 놓여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서술이 그녀의 성정을 대변한다. 혼자 가정을 지켰고 무책임한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끝내 그 가정을 스스로 파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손자의 출생의 비밀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기에,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까마귀 소년>의 주인공은 야시마 타로의 그림책 <까마귀 소년> 속 이소베 선생님 같은 어른이 제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집에서 돌보며 닭갈빗집에서 철판 닦는 일을 한다. 주인공은 까마귀 소년이 되고 싶다. 가출팸에서 생활하던 열일곱 은주를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았다. 엄마와 은주는 그에게 가족이었고 어떻게든 그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는 까마귀 소년이 되고 싶다.

어느 날 은주가 사라진 뒤 뉴스에 나왔다.

식물인간 엄마가 방치된 집에서 동거해 임신까지 한 십대, 생활고는 성매매로

십대 소년이 지키고 싶었던 가정은 저리도 쉽사리 한 줄 요약되었다. 아이가 생겼지만 수술할 거라는 은주의 문자를 받은 소년은 까마귀 소년이 되기로 했다.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은 아파트 옥상 난간에서 까마귀 울음 소리를 내는 소년의 모습으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까아아악 까아악.

이제 그것은 죽음을 애도하는 레퀴엠

소년은 이소베 선생님을 떠올리며 간절하게 입을 벌렸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바라며 날개를 힘껏 휘저었다.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보살펴야 할 사람이 생긴 소년은 열심히 살았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학교를 다닌 이유는 이소베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그곳에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은주가 떠나고 아기마저 지울거라는 말을 듣고는 엄마에게 안녕을 고했다. 십대 소년의 어깨에 놓인 짐이 너무나 무거웠던 것이다.

까마귀가 되어 비행하려고 한 소년은 정말이지 땅꼬마(책 까마귀 소년의 주인공)가 되고 싶었다. 이름 없고 존재조차 미미했던 땅꼬마는 이소베 선생님의 관심으로 까마귀 소년으로 불리게 되었다. 소년에게 이소베 선생님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옥상으로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레퀴엠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기에 소년은 뛰어내렸을 것이다.

첫 소설 <선인장 화분 죽이기>의 주인공은 화분을 죽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죽음을 택했다. 60년 넘게 산 여성은 힘들긴 해도 돌봄이 익숙하다. 허나 남자 고등학생에겐 아니다. 사회적 돌봄의 손길이 필요했던 소년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으나 잊기 위해 까마귀 소리를 내보았다. 그리고 까마귀 소리를 누군가 듣길 바랐다.

소년은 진짜 옥상에서 뛰어내렸을까. 나는 아니길 바랐다. 더 이상 현실을 버텨내기 어려울지라도 살아있길... 어쩌면 소년의 까마귀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결말이었으면 했다. 철판을 닦느라 엉망이 되어버린 손에 바르라고 촉촉한 핸드크림을 하나 사 주고 싶다.

두 소설을 소개하다보니 이 소설집이 너무 어둡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사족을 붙인다. 그저 달콤한 맛을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겠다. 우리네 삶이 늘 달콤한 것도 또 쓰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해피엔딩을 꿈꾸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고개를 들었을 때 당신 눈에 비치는 낯 모르는 사람을 따스한 연민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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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안티카페 튼튼한 나무 52
신은영 지음, 임나운 그림 / 씨드북(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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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왜?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답으로 자주 듣는 말은 “그냥요.”이다. 이유가 없을 수가 있냐? 그래도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하면 눈동자를 데굴거리다가 겨우 대답을 하는가 하면 이유 없다고 하는 아이들도 꽤 있다. 한편 싫은데 이유가 어딨냐면서 싫은 걸 싫다고 하는 게 뭐가 잘못됐냐며 혐오와 증오의 글을 써대는 아이가 있다.신은영 작가의 신작 동화 <링 안티카페>의 주인공 안나의 언니이다. 아이돌 COZ의 안티카페에 들어가서 적극 활동하는 언니의 그런 행동에 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그랬던 안나에게 언니처럼 싫어하는 사람이 생겨버렸다. 전학생 이반지가 그 대상이다. 반지는 전학 온 첫날부터 반 아이들에게 호감을 샀다. 외모도 말투도 행동도 안나 자신에 비해 다 멋져보였다. 그런데 안나가 노리고 있던 봉사상 후보로 반지가 거론되고, 자신이 고백하려했던 필립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보니 심사가 뒤틀렸다. 결정적으로 화장실에서 반지가 예전 학교 친구들과 통화하는 걸 듣고 오해를 하게 된다. 근거도 생겼다. 반지는 친구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면서 실은 뒷담화하는 이중적인 아이라는 것! 그래서 안나가 개설한 카페의 이름은 ‘링 안티카페’. 반지 안티카페라고 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 반지를 링으로 바꾼 것이다. 


이 동화는 요즘 아이들의 학교 폭력이 온라인상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을 보여준다. 단톡방에서의 은따는 간간이 소재로 다루어져 왔는데 이번 <링 안티카페>의 소재는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사이버 폭력의 심각성이다. 어떤 사람을 볼 때 특별히 싫고 좋음이 없다가도 자신 마음의 변화에 따라 너무나 싫어지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 안나가 언니의 행동을 비난했으면서도 같은 짓을 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에 하나 더, 반지를 향한 질투심도 한몫했다. 


아무리 근거가 타당하다 해도 익명으로 타인을 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픈된 게시판이라면 더욱 더. 타당하다는 그 근거가 욕하는 사람 자신의 잣대이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으리라는 착각을 하곤 한다. 오해나 착각에 빠져서 한 생각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말이다. 자신의 경험을 과신하면 더욱 속단하는데 늘 경계할 일이다. 어른도 그러하지만 아이들은 분위기나 소문에 더 잘 휩쓸린다. 안나의 친구들도 링 안티카페를 알고 난 후 반지를 몰아붙이는데, 필립과 반지만 쏙 빼고 단톡방을 만들기에 이른다. 질투와 시기심에 눈이 멀어 반지를 흉보는 데 열을 올리던 안나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어쩔 줄을 모른다. 


비난의 말을 거리낌 없이 던진 이들은 그것이 흉기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게다가 연예인이라면 악성 댓글 정도는 훈장 정도로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연예인도 한 인간이다. 연예인이건 일반인이건 비수처럼 찔러대는 말을 들으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도 타인을 그렇게 괴롭힐 권리는 없는 것이다. 유치원생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에 온라인 에티켓 교육은 필수다.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게 배설하지 않도록, 아무 생각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행동하지 않도록! 


동화에서는 반지가 직접 글을 올려 친구들의 오해를 풀고 안나와도 화해한다. 이런 마무리는 어린이 독자에게 알려준다. 풀기 어려운 문제처럼 보여도 해법은 의외로 쉽다고. 피해자도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반지를 통해 보여준다. 자신도 잘못한 게 있다고 인정하는 용기 있는 태도를 보며 어린이 독자들은 배울 수 있다. 억울하게 당해도 자신있게 말하고 행동하면 쉽게 풀릴 수 있다고. 안나는 교실에서 반지에게 사과하며 둘은 활짝 웃었고 지켜보던 친구들의 얼굴도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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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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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과연 당연한가? 그렇지 않다고 하면 반동 취급을 받는다. 사회 전반적으로 당연하다고 인식되어 자동적으로 몸이 따르는 것들이 많지만 그중 가족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한 사람이 있다. 강릉 원주대의 김지혜 교수다. 그는 전작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선량한 얼굴을 하고 차별인지도 모르는 차별을 일삼는 우리의 초상을 샅샅이 훑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보자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조직해가자고 제안했다.


신간 <가족 각본>는 전작 이후 4년만이다. 그간 우리의 인식은 변한게 있을까. 이번 책에서 작가는 철옹성 같은 우리나라 가족체계의 작동 기제를 낱낱이 해부했다.


p.12


이 책은 성소수자 이슈가 만들어내는 균열을 쫓아 한국의 가족제도를 추적한다.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은밀히 껄끄러운 마음을 품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마음이 기존의 가족제도와 충돌하기 때문이라면, 역으로 말해서 그 충돌의 지점에 가족각본이 있다는 뜻이 된다. 그 불편한 마음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꼬리를 물고 질문하다보면, 그 끝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각본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장에서는 가족각본에서 부여한 며느리의 역할이 무엇이고 왜 하필 여성에게 그 역할을 안겼는지 질문한다. 2장에서는 동성커플은 출산을 할 수 없으니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따라가본다. 3장은 공문서에서 트랜스젠더의 성별을 변경하는 조건으로 불임을 강제하는 공권력에 대해, 4장은 동성커플이 키우는 아이는 불행할 것이라 염려하는 마음을 돌아본다. 5장에서는 성교육이 가족질서를 유지하는 규율로서 작동하였음을 본다. 6장에서는 가족각본을 공식화하고 보호하는 법제도를 살핀다. 마지막 7장은 가족각본을 넘어선 가족과 제도를 상상한다.


위 소개의 주제들을 보고 독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부분에 해당하는 것을 먼저 읽어보면 좋다. 물론 이러한 사안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전체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주장에 동의할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식의 대안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 작가의 주장을 많은 사람들이 공론화했으면 좋겠다.


나는 흔히 말하는 시집살이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혼 후 주욱 생각해왔던 문제의식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며느리에게는 역할만 주어지고 가족 내에서도 각본대로 주어진 역할을 임무 수행하듯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은 격하게 공감했다. 또한 제도권 내에서 출생된 아이만 인정하고 그 외, 동성부부나 트랜스젠더가 출산한 아이는 인정하지 않으며 특히 미혼모가 출산한 아이는 여전히 해외로 팔려나가듯 입양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된 가족각본내의 역할만 충실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출생 문제 해결에 쏟아 붓는 정책은 삽질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런 책을 읽고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에 더욱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p.210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의 시대는 이토록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아이를 낳으라는 불가능한 요구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면, ‘인구가 줄어서가 아니다. 웬만해서는 사람이 태어나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돌봄의 공동체가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구정책은 가족정책이 아닌데,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회를 또 반복하며 우리 삶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제 우리, 가족각본을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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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이 바다에 닿으면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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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고양이 루키가 내 주위를 맴돈다. 오전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일까. 내 옆에서 냥냥거리다가 무릎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내 무릎이 그리 편하지 않아서 그런지 금방 내려가 버린다. 루키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특별히 대답하진 않았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늘 이렇다. 고양이들이 냥냥거릴 때마다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항상 궁금했다. 동물의 감정을 읽는다는 사람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믿기 어려웠다. 눈물까지 흘리니 더욱 그랬다. 사기꾼 같았다. 그럼에도 동물의 언어를 인간이 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그들의 감정을 읽는다면 정말 육식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승민 작가의 신작 소설 <발끝이 바다에 닿으면>에는 고래가 내는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커뮤니케이터라는 기계가 나온다. 완성체는 아니고 주인공 성원이 아내 승희의 연구를 이어 계속하는 와중에 고래 ‘이드’를 만나 커뮤니케이터로 번역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나처럼 반려동물과 소통하고 싶어서 기계를 만들고 실험한다는 내용은 아니다. 이번 소설은 심오했다. 작가의 데뷔작이 아주 강렬한 장르물이었기에 이 소설도 미스터리하고 하드코어한 작품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순전히 내 오해였다. 신간 소개를 대충 읽었던 것이다. 내 맘대로 미스터리한 내용일 거라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분량의 3분의 1이 지나도록 등장인물 소개만 이어지는 게 아닌가. 다시 작품 소개를 읽어보았고 명백한 내 오독임을 확인했다. 이번 소설은 SF장르다.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는데 각기 다른 일을 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되다가 소설의 절반 즈음에 이르러서야 접점이 생기고 비로소 몰입을 돕는다. 소설 중반 이후부터 돌마가 무사히 히말라야를 넘고 이드와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쫀쫀한 구성이 펼쳐진다.

이 책으로 작가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빌드업을 제법 길게 한 후에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승민 작가의 스타일이라 여길 것이고, 줄거리와 작품 소개를 자세히 읽은 독자라면 나처럼 오해하지 않고 천천히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성원은 과학자이며 울성이라는 동해안의 어느 가상도시에서 일본학자 유코, 미국학자 퍼시와 함께 고래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위해 모였다. 가상도시 울성은 마치 김정한의 소설 사하촌처럼 대대로 위정자들의 놀음터로 이용만 당한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울분에 차있다. 늘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화르르 타오를 것 같은 상태다. 그러한 인물로 그려지는 사람이 뱃사람 석기이고 해풍호로 조업을 하고 있다. 울성 앞바다에서 고래를 두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대치중인 두 그룹이 해풍호와 유자호다.

또 다른 그룹으로는 목숨을 걸고 전 세계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다니는 현지다. 그는 히말라야를 넘는 티베트 사람들을 찍으려고 가이드 쿠날과 함께 인도에서 티베트로 이동 중이다. 선배 성원과 종종 통화를 하는데 티베트에 가기 전에 통화를 했기 때문에 성원은 고래 이드가 발화한 티베트어의 단어 의미를 현지에게 물어봤고 현지는 이드가 언급한 소녀 돌마를 기적처럼 만나게 된다. 울성에서 직선거리 2500km에 살고 있는 돌마는 이드와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서평을 쓰면서 줄거리를 길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 소설은 등장인물 소개부터 길다. 어떤 인물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하지 않은 채 줄거리만 간단 소개하기엔 힘들어서 이렇게 길어져버렸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욕심을 좀 부린 것 같다. 종을 넘어서는 소통과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짧은 생을 가열차게 살았던 승희가 뿜어낸 언어에 대한 사고를 성원이 이드와 대화를 하며 깨닫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에 성원은 임사체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승희를 만나 그녀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부분이 가장 SF적이다.

한편 중국의 티베트 탄압과 인권문제(우리나라 현대사 포함)를 현지와 티베트 소녀 돌마를 통해 펼쳐낸다. 다루기 민감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다큐 영상을 찍는 현지의 눈을 통해 그곳의 혹독한 자연과 정치적으로 억눌려있는 첨예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동물의 언어를 번역해낼 수 있는 인공지능의 개발도 물론이겠으나 티베트 문제는 심층 조사가 힘들었을 것 같다. 울성이라는 가상도시는 장생포구가 있는 울산이 연상되는데 석기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인간 부류는 지금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의 주제는 독자마다 다르게 찾을 수 있다. 등장인물 분류를 셋으로 했듯 각 부류의 인물들이 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독자가 책을 읽는 시점에 신경 쓰고 있는 사안이 무엇이냐에 따라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는 성원과 승희의 관계와 대화에 집중해서 읽었다. 승희의 몸은 없지만 성원은 그녀의 언어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가 연구하는 것이 그녀가 하던 것에서 이어졌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12살, 처음 봤을 때부터 승희는 반짝반짝 빛났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도 여전했고 “다 덤비라고 해”라며 거침이 없었으며 자신의 연구에 자부심이 있었다.

아래 인용은 모두 승희의 말이다.

p.269

승희는 언어가 모든 생명을 연결하는 도구라고 했다. 육천 개로 쪼개진 언어의 기원은 하나일 거라고. 생명체에 내재된 언어 창조 체계를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 꿈을 위한 커뮤니케이터였다.

p.337

언어는 창조야. 언어는 사고의 기준이야. 스스로를 정화하는 주문이면서 상대를 조종하고 상처 입히는 무기이기도 해. 의미의 집합이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체계야. 언어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도구야. 기억해 인간은 언어야. 살아있는 모든 건 언어야. 우리는 전체의 부분이고 언어는 세계의 파편이야. 우리는 언어야.

p.347

난 혼자가 아니야. 많은 사람과 함께 지내. 여기서도 웃고, 여기서도 농담을 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해 하지만 네 몸은 아직 바다에 있어. 돌아가.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 옳은 일을 해. 지지마. 하지만 즐겨. 웃고 울어. 감정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있는 힘껏, 살아. 나는 나를 부르는 곳에 있어.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나는 있어. 네가 부르면 내가 있을 거야. 발끝이 바다에 닿으면 나는 널 만날 거야.

승희의 무덤앞에서 성원은 장인과 만난다. 그녀의 기일이었다. 성원은 승희를 만났던 일을 장인에게 들려준다. 사내 둘은 국밥을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며 꺼이꺼이 울 수밖에 없었다.

p.371

사람의 마음에도 해일이 일고 지진이 난다. 태풍이 불고 땅이 뒤집어진다. 성원은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살았다. 연구만 생각하느라, 사람이 아닌 것들만 생각하느라 사람을 잊고 지냈다. 이제 겨우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는데 승희는 세상에 없고 장인은 울고 있었다. 뭘 어찌할지 몰라 성원은 그저 무릎 위에 얌전히 손을 올렸다. 한 교수가 썩은 것들을 게워 낼 때까지, 문드러진 상처에 새 살이 돋을 때까지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지켜만 봤다.

그 바다에서 성원은 승희와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또 다른 사람, 장인에게 일련의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그들은 비로소 승희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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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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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정치를 잇는 가장 중요한 지도”라는 출판사 책 소개 문구는 <여전히 미쳐있는>을 소개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다. 그 지도 위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195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페미니즘과 정치, 글쓰기를 인물 위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언급되었는데 나는 ‘실비아 플라스’와 ‘토니 모리슨’을 알게 됐다.


실비아 플라스는 1932년생인데 31세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7세 때 아버지가 사망했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4세에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했는데 결혼생활은 힘들었다. 남편은 오랫동안 시인으로 활동했으나 아내 사후의 행동들은 자식들과 매스컴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녀의 짧았던 삶이 어떠했는지 궁금했고 그녀의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고 싶어졌다.


토니 모리슨은 1931년에 태어나 2019년에 사망했다. 1993년에 흑인 여성 미국인 중에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평생 소설과 아동문학 비평에 이르는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70년 데뷔작 <가장 푸른 눈>과 오프라 윈프리 주연으로 영화화된 소설 <빌러비드>를 읽어보고 싶다.


1장 20세기 중반의 성별 분화
p.73~74
신문의 구인 광고는 성별을 특정했고, 여성이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자리는 지위가 낮고 저임금에 서비스업이 많았다. 비서, 접수원, 전화 교환원, 판매원이 그 예다. 운이 조금 더 좋은 여성은 교사나 간호사 같은 '핑크 칼라' 직종에 종사했다. 금융기관에서도 독신, 이혼, 과부 여성은 금융 신용을 확보할 수없었다. 우리가 지금 '재생산 자유'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하지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위 주기 피임법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었지만 큰 효과는 볼 수 없는 방법인지라 적잖은 아기들이 태어났고, 뒷골목의 불법 낙태 시술로 적잖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5장 가부장제에 저항하다

p.239

1970년대에 가장 폭넓게 읽힌 소설 중 하나는 미국의 전통적 여성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그 여성성의 모순은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서술자를 광기로 (그리고 자살 시도로) 몰아간다. 실비아 플라스의 『벨자』는 원래 1963년 런던에서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자살하기 채 한 달도 안남은 시점이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어머니도 영국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이 작품이 발표되도록 허락하는 것을 주저했으며, 미국에서의 출간에 대해서는 한층 더 불안해했다. 이 소설은 마침내 1971년 미국에서 출간되면서 엇갈린 평가를 받거나 열혈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이들 열혈 독자 다수는 이 작품의 플롯이 플라스 자신의 애틋한 개인사를 따르고 있고 그녀의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詩 - 그 시절에 



사람들은 말하리라, 그 시절에, 우리는 놓쳐버렸다고
우리와 당신들이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나라는 존재로 축소되었다는 걸 깨달았지
그리고 모든 것이 바보 같고, 아이러니하고, 끔찍하게 변했어
우리는 개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어
그래, 그랬어, 그게 유일한 삶이었지
우리가 증언할 수 있던 삶

하지만 역사의 거대한 검은 새들은 날카롭게 울며 곤두박질쳤어
우리 개개인의 날씨 속으로
그 새들은 어딘가 다른 곳으로 머리를 향했지만 부리와 날개 끝은 돌진했어
해안가를 따라, 안개 조각구름들을 뚫고
우리가 나라고 말하면서, 서 있는 그 곳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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