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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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과연 당연한가? 그렇지 않다고 하면 반동 취급을 받는다. 사회 전반적으로 당연하다고 인식되어 자동적으로 몸이 따르는 것들이 많지만 그중 가족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한 사람이 있다. 강릉 원주대의 김지혜 교수다. 그는 전작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선량한 얼굴을 하고 차별인지도 모르는 차별을 일삼는 우리의 초상을 샅샅이 훑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보자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조직해가자고 제안했다.


신간 <가족 각본>는 전작 이후 4년만이다. 그간 우리의 인식은 변한게 있을까. 이번 책에서 작가는 철옹성 같은 우리나라 가족체계의 작동 기제를 낱낱이 해부했다.


p.12


이 책은 성소수자 이슈가 만들어내는 균열을 쫓아 한국의 가족제도를 추적한다.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은밀히 껄끄러운 마음을 품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마음이 기존의 가족제도와 충돌하기 때문이라면, 역으로 말해서 그 충돌의 지점에 가족각본이 있다는 뜻이 된다. 그 불편한 마음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꼬리를 물고 질문하다보면, 그 끝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각본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장에서는 가족각본에서 부여한 며느리의 역할이 무엇이고 왜 하필 여성에게 그 역할을 안겼는지 질문한다. 2장에서는 동성커플은 출산을 할 수 없으니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따라가본다. 3장은 공문서에서 트랜스젠더의 성별을 변경하는 조건으로 불임을 강제하는 공권력에 대해, 4장은 동성커플이 키우는 아이는 불행할 것이라 염려하는 마음을 돌아본다. 5장에서는 성교육이 가족질서를 유지하는 규율로서 작동하였음을 본다. 6장에서는 가족각본을 공식화하고 보호하는 법제도를 살핀다. 마지막 7장은 가족각본을 넘어선 가족과 제도를 상상한다.


위 소개의 주제들을 보고 독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부분에 해당하는 것을 먼저 읽어보면 좋다. 물론 이러한 사안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전체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주장에 동의할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식의 대안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 작가의 주장을 많은 사람들이 공론화했으면 좋겠다.


나는 흔히 말하는 시집살이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혼 후 주욱 생각해왔던 문제의식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며느리에게는 역할만 주어지고 가족 내에서도 각본대로 주어진 역할을 임무 수행하듯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은 격하게 공감했다. 또한 제도권 내에서 출생된 아이만 인정하고 그 외, 동성부부나 트랜스젠더가 출산한 아이는 인정하지 않으며 특히 미혼모가 출산한 아이는 여전히 해외로 팔려나가듯 입양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된 가족각본내의 역할만 충실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출생 문제 해결에 쏟아 붓는 정책은 삽질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런 책을 읽고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들에 더욱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p.210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의 시대는 이토록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아이를 낳으라는 불가능한 요구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면, ‘인구가 줄어서가 아니다. 웬만해서는 사람이 태어나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돌봄의 공동체가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구정책은 가족정책이 아닌데,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사회를 또 반복하며 우리 삶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제 우리, 가족각본을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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