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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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작가의 <스노볼>을 인상 깊게 읽었고 차기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3년여 만에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 <네가 있는 요일>을 창비의 소설Y클럽 9기 도서 서평단에 선정되어 가제본으로 읽게 되었다. <스노볼>에서 다룬 계급사회가 이번에는 더욱 촘촘하게 그려진다. <네가 있는 요일> 속 세계관은 환경파괴와 식량난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7부제 사회가 시행되는 미래다. 사람들은 일주일 중 정해진 하루만 현실에서 생활할 수 있으며, 나머지 엿새 동안은 가상 현실 낙원에서 지낸다. 물론 이런 불편한 생을 살지 않아도 되는 이들도 있다. 짐작하겠지만 특권 계층은 365라는 이름으로 제 몸 속에서 그대로 살아간다


수요일에만 현실을 살아가는 수인현울림은 같은 몸을 쓰는 화인강지나 때문에 갑자기 죽게 된다. 울림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고 임시로 다른 몸을 쓰면서 한발 한발 그 비밀에 다가간다. 이 지점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적 요소는 독자를 소설 속으로 확 끌어당긴다. 사라진 빌런 강지나의 실체를 어서 알아내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종국에 강지나는 어떤 형벌을 받을지, 울림의 짜릿한 복수에 동참하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장르는 SF. 그러나 막바지로 갈수록 로맨스가 강하다. 전반부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지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현실이 될 것 같아 두렵고 암울하지만 사랑으로 마무리되어 심장이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이다. 물론 지금의 답답한 현실이 더욱 부정적으로 심화되는 상황들도 많다. ‘환경부담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온전한 신체를 가지게 되는 설정은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지금, 돈과 권력을 가진 초고위층이 누리는 세상은 결코 하위 계층에게 허락되지 않는 현실 세계와 다르지 않다.


또한 AI가 인간의 영역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체감되고 있지 않나. 소설의 사회를 읽다보면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미래가 충분히 그려지고 AI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외모와 전혀 구분되지 않는 AI가 주인공인 영화, 스스로를 인간으로 생각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하는 영화는 이미 나와 있으니 그 반대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20대 초반이지만 열일곱 살 때의 일들이 서사의 큰 축이기에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다. 공부 기계처럼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이 소설을 읽으며 미래 사회를 예견해 보거나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볼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른도 재미있게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 소설이다. 학부모라면 자녀를 너무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키우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장면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스노볼>을 읽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라면 아주 만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 마지막에 울림이 지나를 찾고 지나는 벌을 받게 된다. 독자에 따라 그 부분이 살짝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울림의 복수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가혹하게 펼쳐지리라 예상했다면 조금 심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의 최후가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365인 지나가 영원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므로 가혹한 형벌이 맞단 생각이다.


로맨스 부분은 현실에서 치매 환자가 사랑하는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와 유사하게 상정했다. 몸이 다르고 이름이 달라도 혼은 그대로이기에 서로를 알아보고 기억할 것이라는 설정과 이룬의 기억이 하나 둘 사라져 울림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설정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슬프지만은 않다. 울림의 대사가 뻔하기는 하나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겐 사랑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너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날 좋아할 거고, 나는 네가 기억을 잃고 어떤 식으로 변하든 너를 좋아할 거야. 그럼 된 거잖아."


"아침마다 네가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잃은 채로 눈을 뜬다고 해도, 어차피 너는 또 나를 좋아할 거잖아."


"그러면 내가 매일 말해줄게.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위 리뷰는 창비에서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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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향기로운 날들 - K-플라워 시대를 여는 김영미의 화원 성공백서
김영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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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예쁜 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나는 인정하기 어렵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며 엄지척하고 먹는 한우는 하루 이틀이 지나면 똥으로 나온다. 그건 쓰레기 아닌가? 소고기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지만 예쁘다고 하지는 않는다. 꽃을 보면 해사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주위도 아름다워진다. 먹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 유효기간의 차이 정도만 있을 뿐이다.


나는 꽃에 대해 무지했고 관심도 없었다. 재작년 화훼기능사 자격증반에서 공부를 하면서부터 꽃을 알게 되었고. 꽃과 함께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꽃 한 다발은 금액에 비해 훨씬 더 큰 충만감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무슨 날이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꽃을 선물하게 되었고, 나를 위해서도 집에 꽃을 꽂아두게 되었다. 아름다운 꽃을 조화롭게 꽂아 한 바구니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큰 만족감을 주었다. 내게 꽃꽂이는 한우를 먹는 것보다, 비싼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먹는 것보다 더 가치롭다. 경제적 효용으로 따져봐도 내겐 꽃의 효용성이 가장 크다.


열혈 간호사, 플로리스트로 다른 세상을 열다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와서 서평단에 신청한 책이 <꽃보다 향기로운 날들>이다. 저자 김영미씨는 사람꽃 농원이라는 화원을 운영하면서 꽃만큼이나 아름답게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는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간호사를 천직으로 생각했으나 남편이 화원을 시작하면서 같이 일하게 되었고, 갑자기 찾아온 암과 치료, 종양의 재발, 그리고 남편의 사망까지. 한 사람이 짧은 삶 속에 이렇게 시련이 연거푸 닥치다니... 견뎌내기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큰 인생길에 지나가는 과정이라 여기게 되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p. 78


나는 행복의 비밀을 깨달았다. 행복의 비밀은 감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깨닫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깨달음은 무언가를 깨닫고서 그 깨달은 것을 삶 속에 녹여내느냐에 달려 있다. 깨닫기 전후의 삶이 같다면, 그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다. 깨달았지만, 체화되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내 것이 아니므로 그저 흘러가는 정보일 뿐이다. 삶에 적용되어 나타났을 때, 개달음은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된다.



기독교인인 그녀는 늘 감사 기도를 하고 기록한다. 감사노트에 빼곡히 채운 글들이 자신을 웃음 짓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아마 그 감사노트 덕분에 이렇게 책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책을 쓰고 싶었다. ‘한국책쓰기강사양성협회를 운영하는 김태광 대표를 만나 그의 모토, “성공해서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써야 성공한다!”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김태광 대표의 도움으로 그녀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이렇게 이 책은 단순히 플로리스트의 꽃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들어있다


4장 마음이 행복해지는 꽃집 에는 화원을 운영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담았고, 꽃 다루는 방법, 꽃도 소개한다. 꽃을 선물 받긴 했는데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팁들이 있어서 아래 첨부한다.




저자는 이 장에서 영화 <어바웃 타임>의 마지막 대사를 인용했다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알려주는 이 영화를 나도 인상 깊게 봤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곤 한다.


이 책에는 꽃 정보가 많지 않다. 그러나 꽃만큼 향기로운 나날을 사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문득 꽃 한 송이 사서 꽂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도 향기로운 사람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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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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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소통에 대한 통찰,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표현 가능한지 성찰, 그리고 인간은 혼자라는 엄연한 사실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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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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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이모는 한 번에 콱 죽어버릴 거라고 늘 말했었다. 몇 년 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 그녀는 지난 6월 유방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양쪽 가슴에 모두 암덩어리가 많이 자라 있고 임파선과 어깨로까지 퍼져있는 상태로 현재는 항암치료 중이다. 그간 연락이 되지 않던 이모와 얼마 전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꽤 밝았다. 종양 크기를 줄이기 위해 항암 약을 복용중이라며 통증도 별로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통화가 끝났다. 그러나 큰이모와 통화해보니 전혀 다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파 죽겠으니까 자꾸 전화하지 말라며 말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니 대체 나와 통화한 사람은 누구인가 싶었다.


이모의 상황을 알게 된 후 정보라 작가의 신간 <고통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나를 끌어당겼다. 이모의 통증이 어느 정도일지 나는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는 타인의 고통의 수위를 체감할 수 없으니 공감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통증의 정도를 알리기 위해서다. 의사에게든, 가족이나 지인에게든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야 상대가 어느 정도 가늠이 되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소설에서 이렇게 썼다.


p.128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공유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소통 역시 마찬가지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문장을 읽고 놀랐다. 그리고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서는 감탄했다. 소통의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나는 결론지었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라고. 제 몸의 고통을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근원적인 이유는 몸 때문이라고. 인간이 살아있거나 죽었다는 표현은 물리적인 상태의 몸이 있기에 쓸 수 있다. 타인과의 소통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제 몸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러나 고통과 삶의 의미를 찾고 죽을 때까지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것 역시 인간이다.


이에 작가는, '인간은 결국 죽는 존재이나 죽음을 언제나 똑바로 바라보는 채로 하루하루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 고도 했다. 죽음 앞에 서보지 않는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형 선고와 같은 시한부를 통보 받은 이모의 심경은 어땠을까그렇게 생에 미련이 없다는 투로 말해왔고 연명치료도 받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 쳤던 이모는 큰이모에게 열심히 치료받을 거라고 했단다. 치료 잘 받아서 꼭 나을 거라고. 왜 한 입으로 두 말하냐고 할 수 없다. 아무리 죽음에 의연했더라도 자신 앞에 죽음이 성큼 다가오면 두려울 것이 분명하고 갑자기 생에 의지가 불타오를 수 있다.


작가는 소설에서 이라는 인물의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고통을 없애려는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고통은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며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어딘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서 커다란 위안을 얻었다고. 이모는 지금 암으로 인한 이 고통이 그간 살아오며 겪어온 숱한 어려운 일들에 다름 아니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평생을 워커홀릭으로 살아왔고 아들 둘을 위해 돈을 모으고 또 모았다. 어지간한 통증은 통증으로 치지도 않았고 자신은 몹시도 건강한 사람이라고 큰소리 쳤었다. 지금 암으로 인한 고통 역시 충분히 견뎌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다. 언니에게 고통을 호소하기는 했으니 말이다.


항암 치료 결과가 좋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모는 후회할까, 덤덤하게 받아들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이모는 웬만해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고, 나는 이모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엄살을 잘 부리지 않는 편이다. 남들에게, 심지어 가족에게도 내 심정을 시시콜콜 표현하지도 않는다. 만약 내가 이모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 내 고통을 누구에게 호소할 리는 없을 것 같다. 고통은 오롯이 내 몫일 것이므로...


소설 <고통에 관하여>를 통해 작가는, 고통이 없는 삶은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고통이 없는 진통제를 개발해 낸 제약회사, 고통을 통한 초월을 주장하는 종교 단체, 이와 관련되어 있는 인물들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고통 없는 삶이 행복할 것 같냐고. 그런데 한국 사회는 왜 이렇게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내모는 거냐고. 고통에 중독되어 고통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한 번 보라고.


내 생활을 돌아본다. 하루 동안 해내야 할 일들에 헉헉거리며 24시간이 모자라 잠을 줄여 책을 읽고 신간을 훑어본다. 한동안 자제했는데 또 다시 출판사의 서평단 공지가 뜨는 족족 신청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중독은 쾌락을 좇는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하는 이 짓들은 쾌락 때문인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쾌감을 즐기는 것인가. 느긋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심리인가. 내게 가하는 고통에 관하여 생각해 본다.


이렇게 끝내려니 서평으론 많이 부족한 것 같아 덧붙인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외자(漢字)로 지어 한자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의미가 인물이 지닌 특성을 골고루 드러내도록 했다. 독자 입장에선 다소 낯설고 그 인물이 단박에 그려지지 않을 수 있다. 작가의 의도인 듯하다. 이 소설의 장르는 SF. 비현실적이어도 개의치 않고 읽을 수 있다. 여성 동성 간 결혼과 그 커플의 체세포와 난자로 인공 수정하여 임신에 성공하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수 있으나 근미래에 다가올 일임을 예상할 수 있다.


나처럼 고통에 치우쳐 생각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한다면 통증과 고통에 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정희진 선생이 자신의 오디오 매거진(정희진의 공부)에서 어떤 단어 하나로 이야기 나누어 보기를 추천한 게 기억난다. 통증과 고통으로 무궁무진하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다굉장한 소통의 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100% 아니겠지만.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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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픽션 걷는사람 소설집 11
최지애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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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픽션 앞에 ‘달콤한’을 놓았다.

픽션이니까 당연히 달콤할겠지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최지애 작가는 노린 걸까?

독자의 뒷통수를 때리고 싶었던 거?

메~롱!

당신들이 상상하던 달콤함은 여기 없다구!

책을 덮으며 나는 물었다.

그럼 우린 어디서 맛볼 수 있나요, 달콤함을...

킬링 타임용 영화를 주로 보는 관객은 말한다. 세상이 갑갑한데 영화마저 그런 걸 봐야하냐며, 두 시간 동안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낄낄거리고 싶다고, 때려부수는 걸 보며 스트레스 풀고 싶다고!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멸종 위기 인간이 되어가는 ‘독자’라는 사람들은 어떨까?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요 사이엔 친구도 거의 못 만나고 가족과 직장 동료 몇몇 뿐이다. 소설을 펼치면 평소 전혀 만날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 한국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 나와 연령대가 아주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읽으면 부럽다가 애잔했다가 울다 웃게 된다.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결국 소설 읽기는 나를 만나는 일이다.

최지애 작가의 단편집 <달콤한 픽션>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은 달콤하지 않았다. 돈에 치이고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세상에서 소외된다. 그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으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돈 많이 벌어 효자가 되고 싶었다. 실천하지는 못했으나 제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싶었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달콤한 픽션> 속 미주는 외친다. "자고로 모든 결말은 해피엔딩이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낭만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우리도 그렇게 되길 바라기에 달콤한 픽션과 달리 현실은 반대이기에 웃프다. 소설 속 부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내 옆에, 우리 주위에 있을 것이다. 길을 걷다 스쳐지나가는 사람 중에, 은행 ATM기기 앞에 줄 서 있는 사람이,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해피엔딩을 바라며 살아간다. 지금이 비록 남루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각 소설의 끝을 열어두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삶은 사는 것이고 계속 되어하니까.

단편 하나하나 인상 깊었고 그 주인공들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어떤 이의 삶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끝까지 읽어내었다. 이 리뷰에서 여덟 편 전체를 언급할 수는 없어서 <선인장 화분 죽이기>와 <까마귀 소년>를 소개한다.

<선인장 화분 죽이기>의 주인공은 60대 여성으로 외손주를 돌보고 있다. 딸 내외는 주말부부인데 딸은 늘 늦게 퇴근한다. 남편은 젊었을 때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갔다가 딸의 결혼식 때 슬그머니 돌아왔다. 주인공은 딸을 결혼시킨 다음 이혼하려고 했으나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집에 눌러앉았다. 그녀는 남편이 오전 산책을 하고 뒤뚱거리며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선인장 화분을 집어 든다. 남편이 지나갈 때 베란다 밖으로 화분을 던지면 머리 위에 정통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장면은 어찌 보면 섬뜩하지만 한편으론 그녀의 심정이 십분 이해되었다. 그러나 제목처럼 선인장 화분을 죽이지는 못한다.

남편과 이혼하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를 하고 싶은 그녀는 문화센터 일본어 회화 강의를 하는 센세를 흠모하고 있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헤어보톡스로 머리밑이 휑하지 않도록 치장한다. 손자에겐 할머니로 불려도, 아줌마와 할머니 어디 쯤인 60대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다. 그러나 자신 외에 한 명 더 있는 학생 김상과 센세가 마치 부부처럼 나란히 백화점으로 식당가를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이 장면 이후 그녀의 심경은 서술되지 않았다.

그리고 손자를 데리고 전시장에서 시간을 보낸 후 지친 몸으로 아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온다. 양손 가득 마트 봉지를 들고 오는 딸과 밤 산책을 하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그녀가 우두커니 서있는 채로 소설은 끝이 났다. 그녀는 망가진 몸을 이끌고 밤 산책을 다니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었지만 “한 번도 꽃 피우지 못한 멜로칵투스 화분이 끝내 제자리에 놓여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서술이 그녀의 성정을 대변한다. 혼자 가정을 지켰고 무책임한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끝내 그 가정을 스스로 파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손자의 출생의 비밀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기에,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까마귀 소년>의 주인공은 야시마 타로의 그림책 <까마귀 소년> 속 이소베 선생님 같은 어른이 제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집에서 돌보며 닭갈빗집에서 철판 닦는 일을 한다. 주인공은 까마귀 소년이 되고 싶다. 가출팸에서 생활하던 열일곱 은주를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았다. 엄마와 은주는 그에게 가족이었고 어떻게든 그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는 까마귀 소년이 되고 싶다.

어느 날 은주가 사라진 뒤 뉴스에 나왔다.

식물인간 엄마가 방치된 집에서 동거해 임신까지 한 십대, 생활고는 성매매로

십대 소년이 지키고 싶었던 가정은 저리도 쉽사리 한 줄 요약되었다. 아이가 생겼지만 수술할 거라는 은주의 문자를 받은 소년은 까마귀 소년이 되기로 했다.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은 아파트 옥상 난간에서 까마귀 울음 소리를 내는 소년의 모습으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까아아악 까아악.

이제 그것은 죽음을 애도하는 레퀴엠

소년은 이소베 선생님을 떠올리며 간절하게 입을 벌렸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바라며 날개를 힘껏 휘저었다.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보살펴야 할 사람이 생긴 소년은 열심히 살았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학교를 다닌 이유는 이소베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그곳에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은주가 떠나고 아기마저 지울거라는 말을 듣고는 엄마에게 안녕을 고했다. 십대 소년의 어깨에 놓인 짐이 너무나 무거웠던 것이다.

까마귀가 되어 비행하려고 한 소년은 정말이지 땅꼬마(책 까마귀 소년의 주인공)가 되고 싶었다. 이름 없고 존재조차 미미했던 땅꼬마는 이소베 선생님의 관심으로 까마귀 소년으로 불리게 되었다. 소년에게 이소베 선생님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옥상으로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레퀴엠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기에 소년은 뛰어내렸을 것이다.

첫 소설 <선인장 화분 죽이기>의 주인공은 화분을 죽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죽음을 택했다. 60년 넘게 산 여성은 힘들긴 해도 돌봄이 익숙하다. 허나 남자 고등학생에겐 아니다. 사회적 돌봄의 손길이 필요했던 소년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으나 잊기 위해 까마귀 소리를 내보았다. 그리고 까마귀 소리를 누군가 듣길 바랐다.

소년은 진짜 옥상에서 뛰어내렸을까. 나는 아니길 바랐다. 더 이상 현실을 버텨내기 어려울지라도 살아있길... 어쩌면 소년의 까마귀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결말이었으면 했다. 철판을 닦느라 엉망이 되어버린 손에 바르라고 촉촉한 핸드크림을 하나 사 주고 싶다.

두 소설을 소개하다보니 이 소설집이 너무 어둡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사족을 붙인다. 그저 달콤한 맛을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겠다. 우리네 삶이 늘 달콤한 것도 또 쓰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해피엔딩을 꿈꾸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고개를 들었을 때 당신 눈에 비치는 낯 모르는 사람을 따스한 연민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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