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기계
김홍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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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교수님의 파편적 상념들을 읽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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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음의 불편함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란 옮김 / 현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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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의 지독한 악취. 번뜩이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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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 배신 - 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대항서사
제임스 C. 스콧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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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정착 농경 생활이 인민의 생존보다는 국가(정확히는 ‘지배계급‘)가 인민을 효율적으로 통솔-관리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서술. 국가 바깥의 유목민, 부락민들 같은 이른바 야만인들은 체계적 지배 통제에서 벗어나 의외로 여유있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지나친 낙관적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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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압력 - 불멸의 인물 탐구
샤리쥔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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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쓴 매력적인 산문. 책값을 하는 글. 중국 고전 인물들을 작가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으로 서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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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 지성의 언어로 풀어낸 깨달음 선언
김영식 지음 / 어의운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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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에게 인간은 '말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언어라는 상징적 차원에 들어섬으로써, 존재를 상실함으로써 인간이 된다. 욕망은 이러한 존재 상실로부터 생겨난다. 그것은 영원히 상실된 대상을 되찾고자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미끄러진다.


--------서동욱, 진태원 엮음, 스피노자의 귀환ㅡ스피노자와 라깡(김은주 저), p.143 중에서


인간은 언어를 부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언어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말이다. 근대의 서양철학자들은 '언어'에 주목했고, 선불교 또한 '언어'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책 또한 '언어(생각)'에 주목했다. 언어가 지각을 물들인다고 한다. 갓난아기 시절 언어 이전의 세계는 망각에 의해 불태워지고, 생각하는 인간은 이제 생각의 세계, 언어의 세계, 상징의 세계를 살아간다. 언어와 상징으로 대변되는 생각의 세계는 나와 나 아닌 것들, 주관과 객관,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이는 필연적으로 욕망과 삶과 죽음의 부조리라는 실존적 괴로움을 파생시킨다.


선불교는 생각의 허상성을 통찰하는 문답을 통해 언어의 바깥을 목격함으로써 해결 방법을 찾았고, 이러한 해결법은 선종의 가장 거대한 종파인 임제종에서 간화선 수행법으로 이어지게 된다. 본 저 <시골농부의 깨달음 수업>에서는 생각의 흐름을 단절시킴으로써 생각의 공백, 생각의 바탕을 눈치채게끔 한다. 이것은 대혜종고 시대 초기 간화선의 수행과 몹시 닮아있다. 간화선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는데, 하나는 생각의 흐름을 단절시킴으로써 생각의 바탕(실상계)을 눈치채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상계와 실상계가 이원적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주류 영성가들이 애매한 어조로 불이일원론을 이야기할 때, 저자는 단호하게 이원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계가 여기 있고, 실상계가 저기 있다라는 식의 단순한 이원론이 아닌, 현상계가 실상계를 딛고서 현전하지만 그것이 곧 현상계=실상계는 아니라는 엄밀한 접근이다. 저자는 선불교 조동종의 개조인 동산 양개 화상의 과수게 중 일부 '그것은 나이지만, 나는 그것이 아니라네' 부분을 인용하며 현상계와 실상계의 이원론적 체계를 설명하는데, 이것은 사실 선종에서 돈오돈수를 이야기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할 때 주로 불교적 텍스트(그 중에서도 선불교)를 인용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한편으론 선불교의 맥락(본래면목, 현실의 절대적 긍정)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은 깨달음(본래면목)과 깨달은 사람(본래면목을 통찰한 '나')가 본질적으로 다른 체계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깨달음 그 자체는 탐진치의 영향을 받지 않음을 선언한다. 그러나 저자는 '깨달은 사람'으로서의 지향성에 대해선 그것이 반드시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가져야 할 것을 당부하는데, 이는 깨달음 자체는 실상계의 영역이지만 깨달은 사람은 현상계의 영역이므로, 깨달은 사람이 깨달음을 이야기하겠다면 반드시 현상계에서의 효용적인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어떠한 윤리적 지침에 관한 주장이다. 이것은 저자의 신념과 당위에 관한 문제이므로, 필자는 조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것은 깨달음에 대한 통찰이 깨달은 사람에게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ex 깨달음은 생각, 감정 등을 제어할 수 있는가? 욕망이 통제 혹은 소멸될 수 있는가?)에 관한 임상적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본 저서는 불가에 몸담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혜종고 당시의 초기 간화선을 완벽히 현대화한 가장 효율적인 '불교적 깨달음'에 관한 서적이다. 텍스트가 풍부하고 이전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수행과 지성이 결합된 불교수행/철학서이다. 불교를 알지 못하더라도 읽는데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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