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좌뇌한테 속았네! - 동양철학과 선불교를 위한 뇌과학 교과서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 불광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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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게임을 진행하는 첫 번째 방법은, 이 책에서 제시한 모든 것을 잊고 좌뇌가 진짜 자신이라고 계속 믿는 것이다. 당신은 동일시를 유지하며 현대사회라고 부르는 이 극장 같은 세상에서 역할을 계속한다. 이 범주와 해석의 세계에서는, 좋은 날도 있지만 나쁜 날도 있다. 친구도 있지만 적도 있다. 승리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패배도 경험한다. 승리에 열광하다가도 패배에 몸을 떤다. 무시무시한 심각함과 긴급함으로 게임에 임하며, 이는 마치 전혀 장난이 아닌 듯하다.


물론 이 접근법에는 어느 정도 불리함이 존재한다. 삶은 정말 짧다. 죽음과 질병은 강력한 적이다. 그리고 가능한 오래, 최대한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물질적이든 영적이든 가능한 많은 것을 얻을 테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당신도,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배경을 장식하는 엑스트라 역할만 맡게 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스타덤에 오를 가능성은 언제나 있으며, 그것을 위해 많은 이들이 고통을 감내할 것이다. 이 선택에 잘못된 건 없다. 그리고 이 행성에서 현재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가장 인기 있는 선택지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제껏 소개한 개념들에 완전히 무지한 사람들이야말로 이 게임에서 가장 역할 연기를 잘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의 좌뇌는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반대편 극단으로 가면, 우뇌와 관련된 것들을 전심전력으로 추구하는 선택지가 있다. 이른바 깨달음의 길이다. 이는 붓다와 같은 인류의 위대한 영적 전통을 잇는 성자, 스승, 수도승이 지나갔던 길이다. 명상, 마음챙김, 기도, 요가, 연민, 감사, 그리고 만유가 서로 나누어질 수 없음에 대한 깊은 이해. 이 모든 것이 아주 좋은 출발점이다. 궁극적으로 어떻게 "거기에 도달 하는가"는 신비에 가깝고,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겠지만, 앞서 도달했던 자들이 남겨 놓은 많은 힌트와 표지판이 존재한다. 만일 이 길이 당신의 소명이라 느낀다면, 정중히 예를 갖춰 당신에게 절하는 바이다. 그리고 여정에 축복이 함께하길 빈다.


제 3의 선택지는 이른바 중도(middle path)라고 불린다. 앞의 두 가지 길에 한 발씩 걸친다. 이 길을 선택하면 게임이 딱 재미있을 만큼만 심각함을 유지한다. 아이가 축구게임에서 이겼을 때만큼만 신나하고, 승진에서 탈락했을 때만큼만 슬퍼하는, 딱 그정도의 심각성이다. 승리하든 패배하든 그 어느 쪽에서도 너무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 이면에서 당신은 늘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패배 없이 승리는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승리는 궁극적으로 패배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을 당신이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가운데로 난 길에서 당신은 가판대에 놓인 삼류 잡지를 바라보며, 그것이 가십거리 난센스이면서도 동시에 인류의 창조성과 영성의 표현임을 안다. 운전할 때 누군가 당신 앞으로 갑자기 끼어들면 화가 불같이 올라옴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속으로는 이 바보 같은 드라마에 웃음 짓는다. 에고없는 의식을 경험하며 "내가 없으니 어떤 문제도 없음"을 온전히 수용하다가도, 불과 몇 분 뒤 직장 동료가 당신을 못 본척 지나가면 쓰윽 하고 에고가 올라옴을 느낀다.


사실, 이미 당신은 딱 이런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명상하며, 마음챙김 수행을 하며, 자신이 영적으로 단단히 뿌리박고 있음을 느끼다가도, 다음 순간 에고가 접속하면 커피가 떨어진 걸 알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요가를 하며 대단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집에 갈 때 누군가 당신 차에 긁힌 자국을 낸 걸 보고 불같이 화낸다. 이렇듯 마음의 교묘한 작용을 딱히 집착 없이 바라봄은 일종의 현대판 중도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자네, 자뇌한테 속았네!」 p.191~193 중에서


이따금 탁월한 책을 읽게 되면 가슴이 뛸 때가 있다. 가슴 뛰게 하는 책은 많지 않은데,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책이 바로 그런 몇 안되는 책들 중 하나이다. 뇌과학과 선수행을 어설프게 교차시킨 그저 그런 책인줄 알았건만 책 중후반 부에 가서는 그 탁월함에 손이 달달 떨릴 지경이었다. 그가 미국이 아닌 동아시아 불교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그는 틀림없이 뛰어난 선사가 되었을 것이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그가 당장 선원에 가서 머리를 밀고 가사를 입고 법상에 올라 선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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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ocean 2020-03-15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마터면 깨달을 뻔˝ 이란 책은 혹시 안 읽어보셨나요?

2020-03-15 20:05   좋아요 0 | URL
네... 아직 안 읽어보았습니다. 현재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는데.. 조만간에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우야 2020-04-06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신 서평을 읽고 책을 구해 보았는데, 과연 좋은 책이더군요. 숭산 스님과 외국인 제자들 사이에서 오갔던 서한과 법문 생각도 나고, 미국인 선사들이 현대적으로 요약 및 각색하여 설한 가르침 생각도 나더군요. 좋은 서평과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2020-04-09 07: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