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전부 제각각이다.라는 안나 카레니나의 시작을 알리는 이 문장이 아마 이 소설을 관통하는 맹점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불면으로 인해 안나 카레니나를 새벽에 읽는다. 하지만 이내 잡생각에 독서가 되지 않는다.


하루키의 단편 소설 ‘잠’은 여성이 주인공 1인칭으로 나오는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은 ‘하나레이 베이’와 신장돌이 움직이는 소설과 남편을 찾아달라는 단편 소설이 떠오른다.


주인공은 불면으로 인해 그간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생을 생각하고 과거를 떠올린다. 책벌레였던 자신은 도대체 읽은 책을 한 권도 기억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왜 이토록 급격히 변해버린 걸까. 뭔가에 씐 것처럼 마구 책을 읽어대던 나는 어디에 가버린 것일까. 그 세월 기이할 만큼 강했던 그 열정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러나 다시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니 깊게 빠져들어 단숨에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가 모스크바의 철도역에서 만나는 순간까지 단숨에 읽어 버린다. 학창 시절에 읽었을 때는 몰랐지만 다시 읽은 안나 카레니나는 신기한 소설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무려 116쪽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주인공은 학창 시절에 불면에 시달렸던 때를 떠올린다. 그 두텁고 답답한 구름 같은 것에 휩싸인 갑갑함. 지금은 그때처럼 참아낼 수 없을뿐더러 아내이자 엄마로 책임이 있다. 잠들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책임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은 안나 카레니나의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해가 밝아올 때까지 단숨에 소설을 읽었다.  새벽이 되자 의식과 육체는 어딘가에서 어긋나 버려 고장 난 것 같았다. 주인공은 굉장한 공복으로 싱크대 앞에 서서 샌드위치를 두 개나 만들어 먹고 커피도 두 잔이나 마셨다.


이후 어떻게 될까. 소설 '잠'은 3장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이후에도 불면의 여러 날을 보내면서 기이하고 알 수 없는 기분과 경험을 하게 된다. 하루키는 이 소설을 슬럼프를 겪고 난 후 적은 소설이라고 했다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루키는 언제나 소설이 안 써지는 날이 없고 슬럼프 같은 것에 빠지는 일도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소설에도 유전자에 대해서 나오는 부분이 있다. 주인공은 불면으로 잠이 오지 않아 침대를 빠져나오고, 소리를 내도 남편은 죽은 듯이 잠을 잔다. 다시 방에 들어와서 봐도 몸 한 번 뒤척이지 않고 잔다. 주인공의 아들 역시 아빠처럼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다.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한 침대에 들어도 잠은 혼자 드는 것이다. 모두가 잠들 때 혼자서 불면에 시달리면 고립이라는 불안을 싹트고 고독해지는 시간을 맞이한다.


하루키의 단편소설은 재미있다. 읽고 나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이제 잠들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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