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공화국, 누가 우리 아이의 재능을 죽이는가
안드레아스 잘허 지음, 송경은 옮김 / 서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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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과거의 박물관이 아니라 미래의 실험실이어야 한다”

최근 일제고사 성적 조작서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일제고사를 부활씨켜 경쟁을 통한 효율을 꾀하려 했던 현 교육당국은 성적을 평가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하며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응했다. 반면 일제고사는 학교별, 개인별 줄세우기 경쟁을 심화시키는 좋지 않은 평가시스템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제2의, 제 3의 수많은 성적조작이 생길것이며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재의 학교시스템과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여러방면에서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고 키우지 못하는 학교와 학교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에 대한 준비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저자의 비판과 대안을 요약해보면...

첫째 현재의 학교교육은 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발견하고 키우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두 번째 현재의 교육행정과 교사에 대한 사회적인식은 교사로 최고의 능력을 지닌 인재를 뽑지 않는다.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과 교사는 당연히 최고의 인재가 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교사의 자질이 의심되는 상상수의 사람들이 교육개혁을 방해한다

셋째 학교는 가르치는 교사를 중심으로 행정이 짜여져 있어야 함에도 현재의 학교는 행정을 위한 위계질서와 효율적인 업무위주의 관료주의의 폐해에 예외가 아니다

넷째 부모의 역할에 대한 문제가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는 순간부터 부모은 아이의 교육에대한 거의 전부를 학교에 위임한다. 하지만 학교는 아이들의 교육을 학교에서만 할 수 없다고 변명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재능과 관심사를 가장 잘 파악하고 발견하여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가정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또한 부모의 역할에 포함된다.




우리의 아이가 더 뛰어난 아이가 되기를 모든 부모들을 바란다. 하지만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하고, 알아주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재능과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중지능이론은 눈여겨볼만한다. 학교에서의 평가에서 고득점을 올리는 것이 아이가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영재론(?)에서 볼 때 나는 일제고사를 반대한다. 일률적인 성적지상주의를 위해서 아이들과 부모들은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 부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재능을 발견하는 학교, 그 학교를 지원하는 교육시스템, 그 교육시스템을 운용하고 가르칠 교사들을 최고의 인재로 뽑고, 더하여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관점의 변화와 책임의식이 더해져야 한다. 한사람이 만명의 사람을 먹여살린다는 모 기업의 천재/인재론에 동의하지 않지만 제대로 교육받은 한사람, 한사람이더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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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면허증
코르넬리아 니취 지음, 한윤진 옮김 / 사피엔스21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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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다른 어떤 투자보다도 교육에 대한 투자를 우선해야 된다고 말을 한다. 교육이 아이의 재능을 키우고, 그 재능이 사회와 국가에서 제대로 발휘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제도와 정책들에 대해 이래저래 말이 많다. 지금도 일제고사 때문에 아이들 줄세우기식 정책이니 평준화가 학교교육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왔다느니 하는 공방이 한창이다. 이 책은 그러한 논쟁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아니 벗어나 있다기 보다는 교육의 기초, 아이의 인성을 만든는 1차적인 곳이 가정이라는 점을 감안해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맞이하는 딜레마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모범답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수한 상황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이 운전을 잘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능과 교통법규를 알아가는 것이듯이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꼭 해야할 것들과 피해야 할 방법적인 측면들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부모들에게는 꼭 갖춰야할 소양이 아닌가

마지막 표가 참 인상적이다. 교육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이고 총론적인 이야기만 많이 하는데 이럴땐 이렇게, 저럴땐 저렇게 하는 식의 사례별 행동방침이 꽤 만족스러웠다.했으면 안되는 행동들을 위주로 꼼꼼이 읽었고, 더 좋은 사례를 만들어 가는 노력또한 우리의 몫이란는것을 꼭 이방법만 있을것 같지는 않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례도 많이 발견했다.

네비게이션, 네비게이션이 언제나 맞고, 빠른길만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기본적인 길을 가르쳐주고 초행길의 든든한 안내자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도 집에 두고 여러번 꺼내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책인것 같다.

아빠가 된 후 내 삶의 중요한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좋은 아빠 되기“가 그것이다. 좋은 아빠가 되기위해선 아이들을 애정으로 바라보는 것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기본적인 마음과 방식을 갖추는 것이 기본임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후반부의 운동과 미술, 음악에 대한 자세한 부록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가족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마치 탁구와 같다 서로 배려하고 기쁨을 주려는 노력이 오가야 하며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려면 아이의 삶에 체계가 잡혀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얻게 될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구분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이 먼저 확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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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추파춥스 키드
최옥정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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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츄파추스키드

 

참 가슴이 아픈 소설이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를 떠났었다. 아무말도 없이... 그리고 가끔은 이메일을 보내고, 가끔은 고향의 빛바랜 간판이 있는 커피숖에서 마주치는 그녀는 어떻게 이별을 극복했을까? 아니 어떻게 감정을 극복했을까? 가슴한켠이 아려온다.

 

면접을 보고 나온 나는 어느 낯선 남자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그 길까지 뛰자는 제안을 엉겁결에 받아들이게 된다. 사랑에 빠질 예감인가? 여권만료가 다가오면 나라를 옮겨다녀야하는 미국국적자의 남자다. 외로움을 이방사회의 친구들과의 어울림속에서 극복하려 했던 그는 편의점에서 추파춥스사탕을 훔치곤했다. 하지만 다시 버림받은 그는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슬픔과 우울함을 동시에 가지고 산다. 그 슬픔은 누군가 자기속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강한 저항의 몸부림을 일상적으로 표현해낸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나를 떠난다. 그를 찾아오는 나를 연신피하면서 이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인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지만 난 이별을 받아들인다. 아니 그 감정을 받아들인다. 이제는 웃음지을 수 있지만 여전히 그의 이별을 고하는 방식과 판단에 동의할 수는 없다. 그렇게 그와 나는 헤어졌고 나는 나의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언젠가 그녀는 나를 아무말없이 떠났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했다. 꿈속에서도, 어떨땐 길을 가다가도 그녀의 환영을 볼 만큼 간절한 만남을 원했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누군가를 말없이 떠난 벌을 받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떠난 그녀가 받아들인 방식으로 나도 그 감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추파춥스 사탕을 훔치는 이 남자는 자작나무가 되고 싶어했다,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듬직한 자작나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작나무의 남방한계선은 여전히 존재했다. 존재할 수 있을지언정 어느곳에나 있지못하는 나무의 한계...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감정의 상태가 되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긍정또한 수없이 해보았을 것이다/ 이 소설속에서 나는 다시 지나간 나의 슬픔에 대한 위로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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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 조엘박의 한국교회 개혁시리즈 2
조엘 박 지음 / 박스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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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기가 참 어려운 주제 가운데 하나가 종교에 관한 것이다. 특히 한사람이 비신자이고 한사람은 열정적인

신자일때 더욱 그렇다. 나같은 사람은 주변에 종교인이 참 많은데 종교를 가지지 않아서 섣불리 말하기가 정말 힘들다

특히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면 신성모독에 가까운 시선을 감내하기가 힘들어서 그 사람과의 관계조차 서먹해진다.

난 작가의 고뇌를 10분의 1도 이해못하지만 고뇌가 많았을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종교를 가진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일부 극성스럽과 잘못행동하는 종교인때문에 다수의 양심적이고 선량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훌륭한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이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일부의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교회내의 시스템, 관행들을

고치려는 노력을 과연 해보았나를 묻고 싶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동안 잘못된 교회의 관행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 용기있게 말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 헌금의 문제, 목회자의 문제, 부흥회, 그리고 교인의 숫자를 말하는 경쟁적이 숫자놀음에대해서 사심없이 비판하고 있다. 이 부분은 종교인이 아닌 내가 들어도 상상이 가는 잘못된 관행이다. 실질적으로 교회가 부흥하려면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고집과 보수성이 유지된다면  한국교회는 여전히 개혁의 불모지로 남을것이다. 조엘박 목사의 용기있는 비판을 받아들여 한국교회가 진정한,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교회로, 종교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쉽게 말하기 힘든 부분을 제대로 말하고 있다.


난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주일예배등에 참석하는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교회참석을 강요받는 그들에게 일상의 삶의 의미는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그리고 헌금관행(실제로 장로가 되기위해 내는 돈이 얼마이상이다 라는 내용은 여러번 들은적도 있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교회가 참 종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기는 요원해지는 것 같다.

제대로 읽고, 교회다니는 사람, 그리고 다녔던 사람,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진지한 토론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다.

 

평신도를 제대로 교회의 주인으로 세우고, 목회자는 목회활동과 직업활동을 통하여, 교회의 헌금은 목회자의 활동비가 아니라 진정한 헌금으로 다양하게 쓰여야 하는등 다양한 개혁대안을 내놓고 있다. 올초부터 소망교회, 고소영등 이명박대통령과 관련하여, 종교편향이니 뭐니해서 문제가 많았다. 비단 교회다니는 정치인의 문제는 아닐듯 싶다.

그동안 교회가 만들어온 잘못된 교회의 관행과 인식과, 행태가 문제의 정점에서 사람으로 대변된다고 본다. 

 
한국교회가 제대로 개혁되길 바라며, 재밌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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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2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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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도 언젠가 한번은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친 책들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객관적으로 사람들이 평가해놓은 것과, 내가 높게 평가한 부분들,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평가를 포함하여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비판적으로 읽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적종언을 10여년전 그의 저자에서 말했다. 민주적 자본주의의 승리를 단언했다. 그리고 얼핏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는 민주적 자본주의의 승리를 위협하는 현실을 직시하며, 민주적 자본주의의 초석인 텍스트에 대한 본질적인 결산을 보고자했다. 그리고 근본주의자들의 민주적 가치 훼손을 두려워했다.  물론 일리가 있지만, 나는 단테, 보카치오,흄,칸트, 루소, 마르크스,밀, 보봐르 헤겔등이 모두  민주적 자본주의의 승리에 일조하는 혹은 변증적으로 뒷받침하는 (현실적 증거든지 , 반면교사든지)증거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고전이라고 평가하는 위대한 사상가, 철학가, 문학가들의 텍스트를 정리하고 결산해보는 의미있는 작업의 작가의 노고를 훌륭히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작업의 성과는 다시금 고전에 대한, 위대한 책들에 대한 "곱씹어 읽기" 기회를 주었다. 비판적으로 읽다보니 오히려 자세히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준것 같아 더 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원전 텍스트에 대한 독서의욕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에 위대한 사상가는 어떠한 의미일까가 더욱 소중했다.

위대한 사상가들과 철학가, 문호임에는 분명하지만 읽지 않은 그들은 저자와 책제목의 단편적인 지식으로 남아 있는 원전일 뿐이었다. 어떤책들은 대학시절 두번이상 읽은 책도 있다. 하지만 어떤 책들은 한번 읽지 않고 저자만 알고 있는 책들도 있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들을 단순하게 비교해보니 나의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편견과 독서편식이 여과없이 드러났다. 참..말하기 좋아하고 듣고,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부족을 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강의형식의로 내용을 전달하고, 회고적 필체는 나의 대학시절을 어쩔 수 없이 회상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갈등과 열정이 넘쳤던, 그리고 지식과 세상을 분석하는 잣대에 온 힘을 기울여온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세월의 흔적없이 송두리째 몰려와서 어떤 문장에서는, 어떤 작가의 어떤 고전에서는 빈약한 독서와 의욕만 앞서는 불성실한 나의 젊은 날에 치를 떨기도 했다.

 

나의 위대한 스승은 누구인가? 그리고 위대한 책은>?...

비판적으로 읽었고, 내가 읽은 독서에 대한 결산을 조금씩 해나가면서 밀, 마르크스, 셰익스피어,울프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떠올린다. 세상은 바뀌어 갈것이고 나도 변화할 것이고, 그변화의 방식의 하나에는 수없이 읽고 읽어갈 텍스트에 대한 목마름과 환멸을 동시에 가져가야 할 것 같아서 여전히 그들은 나에게 위대한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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