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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7일 전쟁 ㅣ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고등학생인 우리집 두 아이는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환절기 날씨에 짜증을 낸다. 아직 동복을 입기엔 이른 날씨. 그렇다고 조끼나 가디건만 걸치고 집을 나서기엔 아침 7시 무렵의 기온이 너무 낮다. 하지만 마음대로 위에 뭐 하나 걸치지도 못 한다. 춥다고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걸쳐 입었다간 교문에서 걸리기 때문이다. 감기 걸리지나 않을까 염려되지만, 학교는 추워도 꾹 참고 썰렁해보이는 춘추복 차림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착하고 모범적'이라고 여긴다. 내 생각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고 바보같은 짓이다. 겨울철 교복위에 입는 파카와 운동화까지도 검정색과 짙은 회색만 허락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정해놓고는 그것마저도 추운 날 마음대로 입지 못하게 하다니!!! 그래서 결국 우리집 두 고딩들은 교복 위에 짚업후드티라도 하나 더 입고 나갔다가 교문 앞에서 벗는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아들녀석이 중학생이 되어 교복도 아직 몸과 따로 놀던 해의 초여름. 친구들과 집에 돌아오던 아들이 아파트 단지 놀이터 의자에 잠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갑자기 경비아저씨가 오시더니 "니들은 놀이터에서 이렇게 놀면 안돼! 니들 정도되면 정신적으로 놀아야지, 정신적으로!! 놀이터에 나와 앉아있으면 돼?"냐고 꾸짖으시며 놀이터에서 아들과 친구들을 쫓아내셨단다. 분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그 얘기를 털어놓는데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갑자기 갈 곳 없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난 이 책 속 아이들이 해방구를 만들어 그 갑갑한 현실로부터 탈출했던 7일이라는 시간에 공감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어쩐지 불안하기도 하다. 해방구라는 요새를 만들어 위선적이고 권위적이고 비리에 익숙한 기성세대를 공격한 아이들의 7일 이후가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까. 그 이후로 학교와 어른들은 좀 바뀌었을까. 세상은 단단해서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을 텐데, 세상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갖게 되는 것은 해방구 안에서 아이들을 도왔던 세가와 할아버지나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던 니시와키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을 응원하는 준코어머니 같은 기성세대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한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위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 욕하지 마라. 아이들이 잘못 된 것은 무조건 다 어른들 탓이다.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아이들이 반듯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건 어른들 욕심이다. 아이들 앞에서 우리 어른들은 모두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한 죄인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먼저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그런 분들이 희망이다.
난 요즘 대학입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큰딸에게 '배움은 학교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센 척을 하고 있다. 너에게 대학이라는 문이 닫히면 다른 가능성의 문이 동시에 열릴 거라고, 어쩌면 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위선을 떨고 있다. 하지만 자주 내 자신에게 묻곤 한다. 꼭, 기필코, 반드시 대학에 보내야 하는 걸까, 하고. 굳이 나같은 서민까지 나서서 보태지 않아도 나날이 부를 쌓아가고 있는 대학들에게 본의 아니게 '기부천사'가 되고 있는 현실이 기가 막히고 배도 아프다. 입시전형료는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7만원에서 10만원 정도. 성적만으로 학생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파악하지 않겠다는 기특한(?) 사고의 전환으로 갖가지 전형이 만들어져서 한 대학에 서너 전형을 지원할 수도 있게 길을 열어주었지만 그 말은 결국 한 대학에 20만원이 넘는 전형료를 기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 입시는 8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의 과정이 되었다. 아이도 지치고 부모인 나도 지친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면 더 힘든 현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살인적인 등록금, 보장할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 힘들게 들어가서 받은 대학졸업장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청년실업의 시대, 88만원의 세대..... 그런 생각을 하면 기운이 빠진다.
내가 나서서 아이들의 해방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1985년에 출간된(공교롭게도 1985년은 내가 고3일 때다) 이 책 속 아이들의 현실과 2011년을 살아가는, 아니 견뎌가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 책을 읽으며 어른들을 향한 가차없는 비판이자 아이들에 대한 응원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디 책 속 아이들의 7일 전쟁 이후가 무탈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런 나에게 책 속에서 아이들은 대견스럽게 말한다.
"져도 좋잖아. 하고 싶은 걸 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저 말은 왜 이렇게 마음 짠하게 들리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