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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한 시간 ㅣ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30
박주연 지음, 조미자 그림 / 한솔수북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원전사고 이후 전기라는 에너지에 대한 생각이 문득문득 일상 속을 파고들곤 한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면서도 정작 난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조차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생각, 원자력 발전의 어마어마한 힘을 좋다고 넙죽넙죽 잘 받아 쓰고는 이제 와서 원자력발전의 치명적 위험에 겁을 먹고는 덜컥 몸을 사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 어쩌면 원자력 발전소는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생긴 건지도 모른다는 자괴감까지. 그래서 그나마 요즘은 전등 끄는 일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하고, 진공청소기 보다 정전기청소포를 더 자주 꺼내 쓰기도 한다. 지구와 환경에 미안한 나의 작고 소심한 표현이다.
여기, 지구에 대한 작고 소심한 애정 표현 방법이 하나 더 있다. 2007년 3월 31일 저녁 7시 30분에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된 '지구촌 불끄기 운동'. 일년에 딱 한 시간 동안만 사람들이 어둠 속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아마도 지구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휴식이 될 수 있을 방법이다. 1년 365일은 8,760시간, 그 중에 딱 한 시간이니 생색내기에도 민망할만큼 아주 적은 시간이다. 지구가 44억 6700만 살에 이를 때까지 자연과 인간의 터전이 되어준 것을 생각하면, 게다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혹사당한 생각을 하면 쉴 수 있는 시간을 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도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쉬는데 지구는 일년에 달랑 한 시간이라니 좀 너무하다. 하지만 작고 소심한 운동이니까 남녀노소 모두 참여할 수도 있는 것일 게다.
그 한 시간 동안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 때문에 새들이 길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고, 더 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빛날 것이고, 사람들은 오랜만에 어둠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맛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둘러 앉은 이 그림책 속 사람들의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처럼 말이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지구촌 불끄기 운동'이 지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란 사실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은 <'지구를 위한' 한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한 시간>이라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지구환경의 파괴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지구를 위해 한 시간은 커녕 단 일분도 배려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지구촌 불끄기 운동'같은 이벤트(?)가 생기고 이런 그림책이 출간되는 걸 보면, 지구와 인간이 하나라는 인식에 가까이 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증거인 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일곱 살 딸아이는 이 책을 읽어줬더니 우리도 불끄기 운동을 하자고 조른다. 물론, 적극 참여해야지. 그 시간이 주말 저녁이고, TV에서 현빈과 강동원과 조니뎁과 세상의 인기미남들이 몽땅 등장하는 초호화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한다고 해도, 좀 심하게 갈등을 겪긴 하겠지만 그래도 참여해야지. 그딴 건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거나 재방송을 봐도 되니까. 이래뵈도 나는 어릴 적 등화관제 훈련에도 참여했던 어른이니까.
내용도 좋고 펜과 색연필을 사용한 그림도 참 좋다. 글과 그림에서 사람들의 착한 마음들이 스며나온다고나 할까. 조미자 님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책의 그림은 참 마음에 든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 그림 속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느끼는 걸 같이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아마 우리집 막내도 그런 기분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그 따뜻한 그림들을 사진으로 담아서 함께 올리고 싶었는데 디카가 고장이다. 아쉽다.
이 책에 소개된 '지구촌 불끄기 운동'과는 별개로 우리집에서는 우리만의 '불끄기 운동'이 조만간 벌어질 것 같다. '불끄기 운동'에 불붙은 막내의 욕구를 해결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