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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흩어지고 꿈같은 이야기만 남아 - 금오신화 ㅣ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9
최성수 지음, 한수임 그림 / 나라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금오신화가 '노래는 흩어지고 꿈같은 이야기만 남아'라는 멋드러진 제목을 달고 나타났다. 내게 있어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라는 타이틀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금오신화의 역사적 문학적 의의 따위는 그저 암기사항이었고, "밑줄 좌악~"의 무미건조한 여러가지 암기거리 중의 하나.
그런 금오신화가 이제야 제 모양을 갖추고 빛깔과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마치 흑백으로만 어렴풋이 볼 수 있었던 꽃과 과일의 정물화가 그림 속에서 튀어나와 제 빛깔과 향기를 가진 살아있는 꽃과 과일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금오신화의 다섯편의 이야기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이 모두 각각 "만복사에서 저포놀이를 하다", "이 선비 담을 몰래 엿보다",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놀다.", "남쪽 염라국 이야기", "용궁 잔치에 가다" 로 쉽게 고쳐져있다. 한문소설에 대한 부담감과 거부감을 덜어주려는 배려다.
책의 본문 내용도 한문소설의 묘미를 살리면서도 읽어가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을만큼 매끄럽다. 적지 않은 양으로 들어 있는 각편의 시들은 매월당 김시습의 문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원전에 충실한 번역서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책 속 그림도 금오신화의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한 폭의 동양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다분히 몽환적인 분위기의 그림들이 금오신화의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청소년들이 다소 낯설게 느낄 수도 있는 고어(古語)스러운 낱말들에 대한 친절한 풀이도 정성스러웠고,한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참고자료들도 아이들에게 금오신화의 낯설음을 없애고 호감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전등신화 vs 금오신화"나 김시습의 일생을 소개한 "금오신화 깊이 읽기-세상을 등진 자의 꿈", 그리고 "나도 이야기꾼!"이란 제목의 간단한 논술(?) 문제들에도 정성이 느껴진다.
난 책 말미에 글쓰기나 논술을 겨냥한 문제들이 담겨 있는 것들을 곱지 않게 생각해왔다. 형식적인 문제들, 이야기 내용 점검 수준의 단순한 문제들, 문제를 내는 사람이 제대로 생각이나 하고 낸 문제들인가 싶은 얄팍하고 유치한 문제들이 싫었었다.
그런데 알렉스 쉬어러의 <푸른 하늘 저편>이라는 소설의 줄거리를 인용한 문제라든가 가수 김장훈의 노래 '마이 프로필'을 예시로 제시한 문제들은 내가 봐도 흥미로웠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본문에 나오는 시들이 여러 편인데 시에서는 띄어쓰기가 엉망이라는 점, 그리고 나름 편집의 맛을 살려 시의 한 행마다 줄을 맞추지 않고 엇갈려 인쇄하는 멋을 부렸는데 그게 오히려 읽기에 방해가 된다는 점(띄어쓰기가 엉망이 된 것도 줄을 맞추지 않으려는 편집에서 온 것 같다) 이다. 청소년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한시 부분에 대한 배려가 담긴 편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에게는 흥부전이나 춘향전, 심청전, 토끼전 등과 같은 고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친숙하다는 착각에 어릴 적 전래동화그림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만족해 왔던 것 같다. 아니면 제목은 익숙하지만 그 내용이 생소하거나 아예 모르는 그런 고전들도 있다. 예를 들면 운영전이나 최고운전, 전우치전 등등.. 그런면에서 몇 년 전부터 몇몇 출판사들을 통해 초등학생들과 중,고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고전문학서들이 기획,발간되는 것을 발견하는 건 무척 반갑고 기쁜 일이다.
그래서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기획했다는 나라말의 <국어시간에 고전읽기>시리즈나 창비의 <재미있다! 우리 고전>시리즈, 그리고 한겨레아이들의 <한겨레 옛이야기>시리즈 등은 보면 볼 수록 반갑고 정겨운, 의미있는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