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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나의 눈길을 끈 것은 100만부 이상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보다 책의 제목과 이건희 회장의 추천서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그건 이건희가 세계적인 기업 삼성을 이끌고 나가는 수장이고, 그의 기업경영 철학인 상생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 것과는 상관없이 단지 이건희 회장과 '같은' 종교를 신앙하는 입장에서 그가 극찬하는 책이 나에게는 어떤 느낌을 줄 수 있을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책을 읽기 전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이 책이 종교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쓰여 진 건지, 아니면 저자의 개인적인 철학을 기술한건지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두 번째는 이츠키 히로유키는 어떤 의미에서 타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가 궁금했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힘(타력) 덕분이라고 말하면서 심지어 인간의 본성중 하나인 자유의지나 우리가 부조리하다고 여기는 현실들, 시장의 원리조차도 타력에 의해 작동된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이 세계는 타력으로 건설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 때면 '내 소관이 아니다' 란 신념으로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짤려서 아사를 하든, 길가다가 강간을 당하든, 조울증에 걸리든, 자살충동을 느끼든 모두 타력의 힘이 작용한 결과고, 그럴 때 마다 그냥 모든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여라는 의미라고 볼수있다.
그는 어떤 근거로 이런 얘길 하는 걸까. 긍정철학도 정도가 있어서 이정도면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저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은 상호간의 도움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의미에서의 '타력' 이란 단어를 쓴 것 같진 않다. 어떻게 개인의 감정이나 의지조차 타력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마치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의 주장과 같은 종류는 아닐까.
그렇다면 중요한게 빠진 거다. 그가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가지려면 타력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설명을 꼭 해주어야 하는데 아마도 내가 이 책을 단순한 자기계발서 이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작 이런 원리를 깊이 있게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증명할 수는 없지만 30p에 저자의 표현처럼 ‘ 우주에 힘차게 흐르는 끝없는 생명의 에너지’ 혹은 ‘구석구석 비추는 진리의 빛’ 이 있다는데 일단 동의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겪는 만사가 타력에너지에 의해서 작동한다는 데는 동의 할 수 없다.
오히려 어떤 사람의 인생과 그 부분부분을 만드는 것은 자력과 타력이 병진된 상태에서이며, 또 타력이 작동하는 데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는데 한 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이 세계가 어떤 이치로 작동되고, 거기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굴러가기 위해서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53p - 저는 지금 인간이 갖고 있는 전체성 같은 것을 다시 한번 발견해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타력’ 이지만, 내가 뽑은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전체성’ 이다.
혹시 이 전체성이야 말로 세상의 이치이며, 그 이치에 조화롭게 순응하기위해 깨달아야하는 성질이 아닐까.
234p ‘인간은 좀처럼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다’ 라는 신란의 사상에서도,
58p ‘병을 달래고 그것을 내포하면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각‘ 도 전체성에서 나온 생각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이런거다. 우주에 힘차게 흐르는 끝없는 생명의 에너지속에 산다는 것은 그 에너지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의미고, 우리자체도 그 에너지로 이루어 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때문에 그런 전체성을 생각한다면 한사람에 대해 선하다 악하다 / 병들었다 건강하다/ 좋다 나쁘다/ 는 가치판단을 내릴수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전체라는 건 말 그대로 다 포함한다는 말이고, 사람사람을 각자 하나의 전체들로 본다면 모두 갖추어진 상태란 결론이 나게 된다.
때문에 만일 저 사람이 악해 보인다면 그건 저 사람이 가진 전체성에서 일 부분만 보고 단정짓는 것 밖에 아닌거다.
그 전체성과 전체성 속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 그리고 그 일시적인 것들은 변화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볼 줄 안다면, 내 자신을 볼때 든 타인과의 관계에서든 어떤 일을 당해서든 그 에너지와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을까.
이 책을 덮을 무렵 줄스 에반스의 ‘철학을 권하다’ 를 읽기 시작했다.
초반부에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투스는 ‘사람은 사물에 의해서가 아닌 사물을 보는 견해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다’는 문구를 읽으며 이 책 타력의 주제역시 그런것이며, 전체성회복이야 말로 사물을 보는 견해에 대한 저자의 인생철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