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령 1
전형진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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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주령을 내렸던 지도자들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의도대로 민초들이 행복해진 적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밀주를 만들어서 유통하는 조직이 세력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이는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원.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대개 금주령을 배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갱스터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미국과 같은 서양권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번에 읽은 정형진 장편소설 <금주령>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조는 쌀이 부족해 배불리 먹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귀한 쌀로 술빚는 것을 금한다는 정책을 폈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백성들이 먹는 쌀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여전히 배를 곯고 있으니 잘못된 정책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명을 거둔다는 것은 자신의 말에 어폐가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뒷배들과 거래하며 배를 불려오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자신이 내린 말을 거두지도 못하고 오랜 시간 질질 끌게 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표철주를 수장으로 하는 검계 조직만 활성화할 뿐입니다. 이 소설 <금주령>에서 저는 상당히 퀄리티가 좋은 술, 산곡주를 빚는 백선당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초반에 그들부터 만나서 정을 붙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양일엽이라는 사람은 젊은 시절 장길산과 의형제를 맺고 활약했었으나 이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산곡주를 정성껏 주조하고 있었습니다. 상당한 장인 정신을 가진 이로써 재료의 선정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꼼꼼하게 돌보았기에 어디서도 찾기 어려운 품질의 술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의 술을 찾는 사람도 많은 데다 유명세를 치르고 있으니 금주령이 내렸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들처럼 밀주를 빚음직도 한데, 그런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김치태라는 토호와 수령이 아무리 무섭게 몰아붙이더라도 뜻을 굽히지 않은 데다 백선당에서 일해온 사람들이 배를 곯지 않도록 땅을 사들여 소작하게 하는 인품을 지녔습니다.



그의 아들 상규는 아버지의 뜻을 이으며 산곡주를 만들어왔으나 이후 백선당에 위기가 닥치자 산속에서 아내 난지와 함께 살고 있던 천덕에게 의지합니다. 천덕은 사실 장길산의 아들로 어머니와 함께 갓난아기 때부터 백선당에서 살아왔습니다. 양일엽은 상규와 천덕이 호형호제하길 바랐으나 자신들의 신분차를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천덕의 거처에서 생활하던 상규는 아내가 죽은 후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으나 딸 숙영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잡고 산곡주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수련을 거듭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위기가 닥치고 마는데, 천덕에게 숙영을 부탁한 상규는 술의 비법인 천남성을 모두 먹어버립니다.



이는 사약에도 쓰이는 재료라 검계들이 그를 끌고 가던 도중 독이 퍼져서 사망하고 맙니다. 이런 가족의 비극을 안고 숙영은 천덕을 아버지로 난지를 어머니로 삼아 자라납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무술을 수련하여 비밀리에 운영하는 색주가나 술집들에 불을 지르며 검계 조직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검계의 표철주를 처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장붕익이라고 믿으며 책을 읽어나갔는데, 숙종, 경종, 영조 시대를 관통하며 주요 요직을 맡았던 무장입니다. 영조의 특별 지시를 받고 금주령을 감독하고 단속하는 금란방을 이끌어 갑니다. 부하들에게도 자상하고 온화하나 범죄자에게는 가차없는 단호함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그가 더 이상 금주령을 단속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을 때 저는, 좌절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를 따르는 부하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기에 결국 손자인 장기륭은 금란방 관원인 이학송의 도움을 받아서 부모님과 함께 묘적사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이학송으로부터 무술을 배우고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실력을 갖추지만 뇌물이나 배경이 중요하던 시기라 무과에 낙방하고 맙니다. 의기소침해 있는 그에게 누군가 나타나 길을 알려주니 그가 바로 우리에게 사도 세자로 알려져 있는 이선이었습니다.



이렇게 <금주령>은 사도세자의 등장으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마치 모든 스토리를 풀어낸 것 같지만 이 내용은 이 책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탁월한 상상력과 사건 전개, 스토리텔링에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가슴팍 한가운데가 웅장해짐을 느낍니다. 세상을 흉흉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런 시대에 맞서 싸우는 영웅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짜임새 있게 흘러가며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이 돋보이는 이 소설 <금주령>은 이미 드라마화가 결정되어 있습니다. 심각함을 담보로 하는 사극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금주령>이라는 이야기가 다를 것 같습니다. 소설을 그대로 시나리오화해서 진행해도 좋겠다고 여겨질 만큼 진행이 좋습니다.



1,2 권을 합해 1000여 페이지에 달하지만 전혀 버겁다는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오른손은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고 눈으로는 활자를 쫓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됩니다. 드라마로 만나는 것도 좋지만 소설을 통해 상상력의 확장을 직접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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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괴 1 -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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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걸 상상하기만 해도 피로감을 느끼는 저는, 산이란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라는 신조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동산이나 오름을 오르는 동안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로 상쾌함을 얻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싫어서 말이죠. 지금이야 길이 잘 닦여있으니 굳이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목적지까지 가는데 문제가 없지만, 아주 오래전 옛날에는 별 수없이 그 길을 가야만 했을 겁니다.

우리나라 전설에서는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는 건 예사고 가끔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를 만났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전해져내려옵니다. 도깨비를 보기도 하고 멀리서 흔들리는 도깨비불을 만나 혼비백산했다는 스토리도 있죠. 산은 짐승과 기이한 것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곳임에 분명했습니다.

<산괴>는 일본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보다는 여우나 너구리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옛날이야기처럼 펼쳐지는 게 아니라 다큐처럼 서술됩니다. 저자는 산 주변에 사는 주민, 약초꾼, 사냥꾼들에게 직접 들은 실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무시무시한 것이 확! 덮쳐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두운 숲속에서 몰래 우리를 훔쳐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안깁니다. 도시괴담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차라리 멧돼지를 만났다거나 커다란 여우와 마주쳤다, 그래서 무서웠다!라는 전개라면 어이구, 큰일 날 뻔했구먼. 하고 넘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무언가가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배낭을 잡아당기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하는 건 가슴 안쪽에서부터 솟아나는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나뭇가지에 걸렸던게지하며 넘기고 나서도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습니다. 저는 두려움의 정체를 확인해야 안심하는 편이라, 이렇게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치는 게 싫습니다.

<산괴>는 산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닥쳐오는 괴이한 일을 다룹니다. 책의 초반에는 오호라,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거로군. 하는 기분으로 읽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기이함을 느꼈습니다 저 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지, 방문객은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그 끝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 신비하고 두렵습니다. 어쩌면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일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멀리서 어른어른 보였던 도깨비불이 실은 행인의 등불이었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기에 자신이 겪었던 기이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것일 테죠.

이 책은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취재원이 다큐 제작을 위해 사람들을 찾아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제목인 <산괴>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퇴치하거나 친구가 되는 스토리는 아닐지라도 그저 신기하거나 두려운 상황으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산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생명을 느끼는 것도, 죽음을 느끼는 것도 역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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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장군 살인사건 - 을지문덕 탐정록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명섭 지음 / 들녘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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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공주와 온달의 이야기는 어릴 때 듣거나 읽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권선징악형 스토리에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그래서 울면 된다고 안된다고?'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 번 울면 울음을 그칠 줄 몰랐던 평강공주는, 자꾸만 그렇게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는 왕과 왕비의 말을 듣고 뚝 그치곤 했죠. 그러나 혼기가 차자 왕은 혼처를 알아보려 했고 평강은 정색을 하면서 온달과 혼인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결국 집을 나가 온달을 찾아가고 결혼하였죠. 눈먼 시어머니를 봉양하면서 한편으로는 온달에게 각종 교육을 시켜서 장군을 만듭니다. 뭐 그런 스토리였죠.



어린 시절에는 그렇구나 재미있다! 하면서 읽었지만 커서 생각하니 그럴 리가? 그렇기에 이 책 <온달장군 살인사건>을 더욱 재미있게 읽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후기에서 작가 정명섭은 말타기와 활쏘기가 몇 달 연마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며 온달은 원래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집안의 자제가 아니었나 상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고 보면 왕실과 연이 닿을 정도의 귀족이나 지방 호족 정도는 되었어야 하는 게 맞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명섭은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하여 온달의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다만, 그의 일대기를 시간순으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삶을 짚어나갑니다. 그는 평강의 남편으로서 부마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았던 걸까 하는 의문으로 접근합니다. 평강공주는 그를 남편으로 맞아서 정말로 사랑하였는지, 행복했는지 살펴봅니다.



정명섭은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탐정으로 을지문덕을 택했습니다. 그는 무예에 능하며 지략에도 출중한 인물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오던 장군 온달의 죽음을 파헤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스스로 얻은 정보와 가병으로부터 얻은 내용을 토대로 하여 그의 죽음 이면에 숨겨져있는 진실을 하나씩 짜 맞추어나갑니다. 



고구려 영양왕 1년, 신라로부터 아리수 남쪽 영토를 되찾기 위해 출전한 고구려는 지쳐 있었습니다. 총공세 아니면 퇴각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상황이었죠. 장군들과 군사를 감시하기 위한 참군인 을지문덕은 온달 장군과 총사령관 고승의 갈등을 보며 불안해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온달은 신라 원군 정찰을 위해서 학고재로 갔다가 신라군의 공격으로 전사하고 맙니다.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온달 장군을 잃은 고구려 군은 결국 퇴각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온달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평강이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옵니다. 썩어가는 시신과 마주하고 얻어낸 결과는 화살이 고구려 군의 것이라는 겁니다. 을지문덕은 전장에서는 아군을 쏘게 되는 피치 못한 일도 있다고 설명하지만 분명 음모가 도시라고 있을 거라고 고집합니다.



설상가상 도성으로 돌아오자 온달의 어머니 오 씨 부인이 찾아와 아들은 살해당한 거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며느리이자 공주인 평강이 의심스럽다고, 아니 확신한다며 고집하니 을지문덕은 상관의 허락하에 진상을 밝혀내기로 합니다. 주변인들을 탐문하고 수소문하다 보니 온달의 과거와 현재가 보이는 것과는 달랐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애절함과 마주하게 됩니다.



<온달장군 살인사건>은 어디까지 작가의 상상력에 기인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그러한 것처럼 오롯이 독자를 고구려로 데려다 놓습니다. 정명섭은 많은 역사 소설을 쓰면서 매번 독자가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은연중에 장치하기 때문에 역사적 내용이나 직책이나 기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저이지만 불편함 없이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스토리에 더욱 집중하고 을지문덕이 어떻게 사건을 풀어나가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바로 다음 편인 <무덤 속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작가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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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 지하철 앤솔로지
전건우 외 지음 / 들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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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는 책은커녕 글자를 1분 정도만 보아도 심한 멀미가 나기 때문에 되도록 창밖을 보거나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듣습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라면 세 시간 동안 책을 보아도 허리가 불편할지언정 멀미는 나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옆자리 사람이 여러 번 바뀌기도 하고 같은 사람과 계속 함께 가기도 합니다. 적당한 온도와 적절한 소음이 있는 데다 혼자 있다는 외로움도 떨칠 수 있기에 독서하기에 참 좋은 환경이 아닌가 합니다. 전자책을 보는 것도 좋고 얼마 전처럼 종이책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은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하는 시선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자신 있게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라는 지하철 앤솔러지를 읽고 있어요! 무척 재미있으니 기회가 되면, 서점에서 만나면 한 번 읽어보세요!!"라고 알려주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립니다.



낯선 이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 타입이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내고 있을게 뻔합니다. 어쩌면 낡아빠진 백팩을 들고 어딜 가는 걸까, 운동화는 도대체 얼마나 되었길래 저렇게 헐어빠졌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므로, 조용히 책 읽기에 집중합니다.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는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와 같은 장르를 주로 써왔던 작가들이 지하철을 테마로 하여 자신의 상상력을 풀어낸 앤솔러지입니다. 출판사 책 소개에서는 참여한 작가들이 주력해왔던 작가에서 벗어나서 코미디, 무협, 스릴러, 로맨스와 같은 다른 장르로 시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들의 글을 보아왔던 저는 드디어 기다려왔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습니다. 심지어 10년 도 넘게 기다려왔었던 전건우의 지하철 무협 액션을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합니다. '호소풍생'에는 허공답보라거나 일지권 그런 건 쓰지 않지만 지금은 기억에서 멀어진 각종 초식을 사용하는 것만 보아도 즐거웠습니다. 고시원 기담의 등장인물 고시생 '편'의 아버지로, 중편이나 장편으로 다시 만나고 싶을만한 (황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명섭 작가는 최근 역사 소설이나 청소년을 위한 탐정, 역사물을 많이 쓰고 있지만 잘 알려진 좀비 덕후입니다. 좀비와 맞닥뜨리면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의 가이드를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평소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보여주는 좀비물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날 지옥철에서 벌어졌던 아비규환을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이 앤솔러지에는 정명섭의 소설이 두 편 들어있는데 '지옥철'과는 다른 슬픔과 괴로움이 있는 '쇠의 길'도 좋았습니다. 어쩐지 주인공이 자꾸 신화의 에릭과 같은 이미지로 연상되었는데, 팬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연상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지하철에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성장하여 자신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용기를 내는 건 참 멋진 일이었습니다.



조영주의 '버뮤다 응암 지대의 사랑'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소설을 쓸 수도 있는 작가였구나 하는 생각에 놀랐습니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서로를 의식한 남녀가 관심을 주다가 가난한 자들의 사랑을 하는 스토리가 현실적으로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었습니다. 허무함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신원섭의 4호선의 여왕은 지하철 분량이 아주 적어서 조금 섭섭했습니다. 하지만 서운함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즐거운 템포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도대체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제대로 알아내기도 전에 각종 사건에 휘말리는 그! 이 스토리는 드라마나 장편 소설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 괴담으로 조회 수를 올려보려 라이브 방송을 하던 주인공이 그대로 다른 유니버스로 실려간다는 발상이 있는 '농담의 세계'에서는 과연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는 탁월함이 있었습니다. 보통 흔한 이세계물에서는 주인공이 다른 세상으로 끌려들어 가지만, 여기서는 그 반대! 갑자기 도착한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마스크를 쓰고 있네요? 김선민의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스릴러로 한 획을 긋고 있는 정해연 작가는 '인생, 리셋'을 통해서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생망을 외치던 남자가 지하철에 몸을 던졌더니 과거의 중요한 시점으로 돌아가버렸는데요, 그는 새로운 삶을 살고자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행복해졌을까요? 결국 자신의 삶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교훈까지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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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게 하는 것들 - 회복과 충전, 다시 잘 살고 싶을 때 읽는 김창옥의 제안서
김창옥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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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삶을 이야기하는 강사들은 참 많았습니다. 현재도 그러하고요. 그들 중 몇몇은 과연 정말 진심으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창옥은 달랐습니다. 그의 강연을 현장에서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가끔 인터넷에서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그를 볼 때에도 흐름과는 관계없이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동향 사람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그가 살고 있던 지역과 저희 동네는 전혀 접점이 없으니까요.



나이가 비슷하다거나 제주 출신이라거나 그런 것은 전혀 관계없이 그의 강의에는 진심이 담겨있고, 마음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온전히 그리로 끌려들어 간 것 같습니다.



순조롭지 않았던 삶이었지만 성장하고자 하는 욕심 또는 꿈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며 열심히 살고 있었기에 많이 끌렸던 건 아닐까합니다. 김창옥의 삶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정형적인 모습 그뿐만은 아니었으니까요.



관광객들이 아름답다고만 여기는 제주 바다가 실은 생명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또 다른 탄생을 담은 바당인 것처럼 그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책 몇 권을 읽고 강연 몇 개를 들었다고 그에 대해 아는 체하는 건 그른 행동이기에 그저 느낀 대로만을 가슴에 안아봅니다.



코로나로 강연이 줄어들고 유튜브 라방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삶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전과는 또 달라졌습니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제주에 내려와 잠시 살면서는 어릴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제주를 만났습니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갇힌 것 만 같아서 늘 떠나고 싶었던 그곳에, 지금은 자발적으로 내려가 아버지가 하시던 돌담 쌓기를 하고, 농수산물 유통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해남이 되어 물질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전과는 다른 삶을 이어갑니다. 가까이하기에 불편했던 형이나 아버지와도 화해하는 계기를 갖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어 스스로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지 전혀 감을 못 잡았었던 그는 '다행히' 아들들의 아빠가 될 수 있었습니다.



부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롤 모델이 필요하기에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닮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적합한 모델이 없었기에 '아버지'로서의 결심을 굳히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관계'의 소중함과 가족의 예의를 알고 있기에 앞으로도 좋은, 즐거운, 다정한 아버지가 될 거라 믿습니다. 현무암으로 얼기설기 쌓은 돌담과 같은 - 엉성한 것 같지만 실은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돌담과 같은 아빠로 아들을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에세이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읽어내려가며 자신에게 대입해 보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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