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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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야 왜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인지 알 수 있었다.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소설이다. 하지만 방금 갓 지은 소설처럼 따뜻하고 싱싱하다. 고전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상투적 표현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작품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 근대 문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약한 면이 있다. 왜냐면 이 자가 일본의 천 엔 짜리 지폐에 당당히 등장하는 남자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 이만한 영광을 누린 사람이 전 세계에 몇 명이나 있을지 생각해 보라.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으로 이 남자를 만났다. 돌이켜 보면 그 작품도 상당히 세련됐다. 심지어 <마음>보다 10년 전에 발표된, 그러니까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딱 한 해 전인 1904년에 출간된 작품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이것이 그의 데뷔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도 언뜻 알 수 있지만 소세키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숨은 허영, 고독, 불안, 죄의식 등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느끼는 작가 같다. 그런 능력이 작품에 고스란히 발휘되어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그 어두운 덩어리들을 두 손으로 퍼올려 문장 하나 하나를 빚어낸다. <마음>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마음>에서 가장 감동한 부분은 조곤조곤 쉽게 말하면서도 가슴 깊숙이 훅 찔러들어오는 고독의 날카로움이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뭔가를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의 어쩌고를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간은 ~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유는 우리가~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읽는 이는 그것을 알지 못할 수 있지만 느낄 수는 있다. 제목 그대로 '마음'에 부딪는 소설인 것이다.


에메랄드 파스텔 톤으로 책표지를 꾸몄지만 이렇게 밝은 소설이 아니다. 마음하면 느껴지는 따뜻함과 포근함은 없다. 오히려 축축하고 차가운 감정이 느껴진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무의식(이 소설은 그의 연구가 소개되기도 전에 나온 것이라 한다), 마음 속 깊은 바닥에 고인 검은 물을 그린 소설이다. 읽고 있으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 밖에 없으며 고독은 숙명이라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세상을 등지고 혼자 살아가려는 사람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가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불신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타인을 믿어라. 이 멍청이들이 이토록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둔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대해서. 특히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에고이스트들은 남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축축하고 어두운 죄의 근원들이 고여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은 매일 밤 그 속을 들여다 본다. 자기의 마음 속에 그토록 끔찍한 죄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런 죄의식이 마음 위로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낸다. 행여나 그것이 빠져나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해칠까봐, 행여나 그것이 삐져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질까봐. 둔해서 행복한 사람은, 그래서 긍정적일 수 있는 사람은 그 더러운 죄들이 마음을 벗어나 주렁 주렁 살갗 밖에 달렸는데도 악수를 청하며 미소를 짓는다.


<마음>은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과 내가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는 아직 어리기에 선생님이 감각하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만 선생님께 다가가려 한다. 선생님은 어째서 오늘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걸까? 나는 궁금하지만 선뜻 그 핵심에 다가갈 용기는 없다. 내가 그 핵심을 열어 젖혔을 때 선생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나아가 선생님의 마음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두고 선생님을 지켜보려 한다. 언젠가는 선생님이 직접 말해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던 나에게 어느날 선생님이 보낸 장문의 편지가 도착한다.


<마음>의 뒤에는 <꿈 열흘 밤>이라는 단편 소설이 붙어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한 회한, 욕망, 절망, 가책 등의 감정을 열 개의 꿈 속에 풀어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스타일리쉬하고 몽환적이다. 굳이 우열을 꼽자면, 나는 오히려 이 단편을 손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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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괴짜경제학 - 세상의 이면을 파헤치는 괴짜 천재의 실전경제학
스티븐 레빗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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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얘기는 하나도 없어요.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의 책을 거슬러 읽고 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옛말을 상기 시키기라도 하듯 책이 점점 재밌어진다. 이 책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나의 인식 태도와 거의 비슷하다. 인간은 선한 본성을 지니지 않으며 매우 비이성적이다. 그런 인간들이 바글대는 세상도 마찬가지.


<슈퍼괴짜경제학>은 외환 위기, 경제부흥, 환율, 이자율 따위를 연구하는 거시 경제학 책이 아니다. 인간이 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일명 미시 경제학. 좀 더 트렌디하게 말하면 행동 경제학에 가깝다. 다행히 나도 이 질문에 관심에 많다.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잘 예측하는 정도로 연봉이 결정되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 질문을 테러리스트, 대학생, 매춘부 등에게 던지지만 나는 모바일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행동의 원인을 찾는 게 1차 과제라면 그 행동을 바꿀 방법을 찾는 게 2차 과제다. 대개는 1차 과제만 훌륭히 해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폐 더미를 매트리스 밑에 깔고 자고 싶은 사람이라면 2차 과제를 잘 해내야 한다.


저자들은 2차 과제의 해결 방법이 대단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사람들은 대개 어마어마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신화적 믿음에 불과하다. 비인륜적인 폭행과 차별을 당하는 인도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해 케이블TV를 보급해야 한다면 몇 사람이나 귀를 기울일까? 매년 10조원 이상의 피해액을 발생시키는 허리케인을 개당 10만원 짜리 고무 튜브 1만개로 막을 수 있다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는 방법이 화력 발전소의 공해 물질을 성층권까지 쏘아 올리는 거라면? 아마 사람들은 <빽투더퓨처>의 괴짜 과학자를 떠올릴 것이다. 머리를 쭈뼛쭈뼛 미친놈처럼 세우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크레이지 사이언티스트.


199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 경제학 교수 게리 바커도 딱 이같은 처지였다. 그는 기존의 경제학이라면 결코 다루지 않았을 주제에만 자신의 관심을 쏟았다. 범죄와 처벌, 약물 중독, 결혼의 비용, 육아, 이혼 같은 것들 말이다. 오늘날에 와서야 베커가 신경제학의 선구자로 칭송 받지만 당시는 어땠을까? 그의 회상을 들어보자. "오랫동안 나의 연구는 주도적인 경제학자 대부분이 무시하고 혐오하는 대상이 되었다. 나는 별종으로 취급되었으며, 경제학자로 볼 수 없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주류 사회에 속한 인간들은 원체 쑥쓰러움이 많다. 그들은 위대한 발견에 몸을 흔들며 춤을 출 용기가 없기에 근엄한 표정으로 비판을 한다. 하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방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근 채 팬티 바람으로 두둠칫 두둠칫 흉한 몸짓을 한다.


괴짜처럼 생각하는 것의 장점은 명확하다. 그 누구도 생각해 낼 수 없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머리 속 가득 갖게 된다. 하지만 괴짜의 삶이 언제나 현생에서 보답을 받을 거란 생각은 버려라. 우리도 충분히 괴짜처럼 생각할 수 있고 심지어 몇몇 위대한 발견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스티븐 래빗과 스티븐 더브너(이 책의 저자들) 처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평생 소외와 멸시 속에서 살아가느니 차라리 바보들 틈에 들어가 바보처럼 생각하라. 행복한 삶과 위대한 삶은 완전히 정반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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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4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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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관심이 많아 작정하고 읽을 생각으로 찾아봤는데 의외로 관련 도서가 없다는 게 희한했다. 심지어 실록 원본마저 제대로 디지털화 된 자료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니 아쉬운대로 가장 나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지.


나는 한 권으로 어쩌고 하는 책은 잘 믿지 않는데 대체로 지식이란 두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권으로 요약했다는 책들이 다루는 주제는 대개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경우가 많다. 그런 걸 한 권으로 묶었으니 차 떼고 포 떼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버려졌을까?


내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이 책을 택한데도 그런 이유가 있다. 그 방대한 실록을 한 권으로 묶었다면 고개가 갸우뚱하지만 세종실록을 한 권으로 묶는 건 그나마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것도 참으로 허무맹랑한 추측이었다. 세종실록은 조선왕조실록 전체의 10분의 1쯤 되는데 당시 책으론 163권 154책이고 현재 번역본으론 권당 400쪽 책으로 약 45권이라고 한다. 와! 1년 동안 읽기에도 벅찬 양이네.


이런 현실이고 보니 한 권으로 읽든 두 권으로 읽든 어쨌든 읽을만한 분량으로 책을 내준 것 자체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은 시리즈로 신라, 고구려, 고려의 실록까지 갖고 있는데, 앞으로 전체를 탐독해 볼 생각이다.


내가 실록에서 찾고자 하는 건 근엄한 역사적 위인들의 현실적 인간의 모습이다. 위인전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추상화 되어 있어 인간이 지닐 수 밖에 없는 입체적 면모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걸 읽고 있으면 잘 만들어진 동상을 보는 것 같다. 실록엔 대화가 나온다. 왕과 왕의 대화, 왕과 신하의 대화, 신하와 신하의 대화들 말이다. 말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묻어 나온다. 성격이 묻어 나온다. 그러나 가장 좋은 건 감정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글에 비해 말은 함부로 뱉을 확률이 훨씬 높다. 신하와의 언쟁 중 감정이 격해진 왕들이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직접 내전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들의 대화에 집중하면 특정 사안을 두고 오가는 가상의 대화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면 600년 전의 역사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처럼 생생한 이야기가 된다. 나에게 역사란 본질적으로 이야기인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한 임금의 실록임에도 분량이 너무 많아 한 권으로 구성하는 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에게 존경을 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구성에 있다.


뭔가를 한 권으로 묶고 싶을 때 선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짜고짜 사건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만화로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성은 역사를 표면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세종실록을 요략하여 담았다. 내 기준으로는 이게 아주 중요했다. 실록이라 칭했으면 실록에 쓰인 그 문구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다 담을 순 없으니 반복되는 사건과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들은 과감하게 빼버렸다.


요략 다음으로 이어지는 건 중요 인물 소개다. 요략이 세종의 치세를 시간 순으로 나열한 편년체라면 이 부분은 열전이다. 정치, 행정, 문예, 국방, 과학에 이르러 세종 대에 활약한 인물들이 총출동한다. 그 유명한 황희, 김종서, 장영실, 박연 등등! 그저 명 재상으로만 알았던 황희가 사실은 부정부패에 끊임없이 연루됐었다는 사실, 북방의 호랑이라 불리며 변방에서 사심없이 우국충정을 다한 것처럼 보인 리얼 마초 김종서가 끊임없이 한양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을 청한 사실은 역사를 읽는 또 다른 재미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이조니 호조니 하는 조선시대의 정부 기관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고 추가로 '인물 찾기'를 제공한다. 역사책이라 자칭하는 것들 중에 이 '찾기'를 빼먹는 경우가 참 많은데 읽는 사람으로선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나중에 글을 쓰거나 별도의 연구를 진행할 때 그 사람이 했던 말, 연루된 사건을 찾기 위해 얼마나 오래 책을 뒤적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잘 알 것이다.


처음엔 반신반의 했지만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은 아주 훌륭한 책이었다. 익숙한 대왕의 업적과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면모가 균형을 잡고 나아간다. 이를 토대로 조선왕조실록을 점점 더 깊이 파들어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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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여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오후세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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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도처에 그 증거가 흘러넘치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나아가 인간은 지구에 이빨은 꽂은 기생충이요 따라서 박멸해야할 존재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런 생각으로 대규모 테러를 정당화하는 범죄자들이 나오는 소설 또는 영화를 본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엔 다소 회의적이다. 그 내용이 끔찍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악행을 능동적, 자각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유명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악하다는 자각하에 그런 짓을 벌이는 게 아니다. 그들은 모른다. 무지 속에선 선악조차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친애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글에 이렇게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발휘되는 건 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에 한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타인을 비난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발동되곤 합니다.

(p.7)


오해하지 말자. 정의나 양심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발휘되었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된다. 정의나 양심도 악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악들은 모두 이 경우에 등장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나면 그 어떤 살인도, 거짓도, 전쟁도 용서된다.


<소문의 여자>의 주인공 미유키는 대단히 수완이 좋은 여자다. 그리 예쁜 얼굴이 아닌데도 육감적 몸매와 색기를 이용해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거기에 남자들이 넘어가고 넘어온 남자들을 죽여 재산을 차지한다. 돈을 향한 미유키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차지한 재산으로 고급 룸싸롱을 열어 새로운 희생자를 물색하고 평범한 유치원 교사를 유혹해 업소에 취직 시키는가하면 청탁을 받아 잘 나가는 회사의 사장을 추문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미유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악이지만 오쿠다 히데오가 주목하는 건 이 악과 은밀히 공모하고 그 덕을 보려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다. 그들은 미유키를 방패막이 삼아 양심의 가책을 잘라낸다. 그들은 죽었다 깨도 자신이 무슨 악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장편 소설이긴하나 10개의 에피소드가 서로 느슨히 묶인 구성이다. 긴장감 넘치는 소설을 기대해선 안된다. 에피소드가 전개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퍼즐이 맞춰져가는 미스테리도 아니다. <사랑과 전쟁> 또는 MBN의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구성의 치밀함이나 문장의 완성도는 애초에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멍하니 책장을 넘기게 하는 것. 악이 극단적 스포트라이트로 강조되어 입체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깊이는 언제나 무념의 독서에 방해 요소니 거론치 말자. 애초에 방향이 다른 것이다.


뭐 대단한 명작이라 부를 수는 없고 이것을 범죄 스릴러로 홍보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가장 큰 미덕은 미유키라는 거대악을 중심으로 스륵스륵 모습을 드러내는 평범한 악들의 서식지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악은 도처에 있다. 그 악의 침입을 막기 위해 꽁꽁 문을 닫고 총구를 겨눠보지만 이내 해는 지고 캄캄한 창 위에 내 얼굴이 비친다. 그리고는 깨닫지, 바로 나 자신이 악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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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파수꾼
켄 브루언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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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책을 한 권 고르라면 나는 <밤의 파수꾼>을 선택할 것이다. 아일리쉬 하드보일드 누아르로 소개되는 켄 브루언의 대표작. 아이슬란드가 아니라 아일랜드다. 대영제국을 구성하는 4개국 중 하나인 북아일랜드와도 구분해야 한다. 아일랜드는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으로 부터 독립했다. 약소 민족이자(켈트족) 수탈의 대상으로 수백 년을 살아왔지만 불굴의 근성으로 번영을 이뤄낸 국가. 어딘가 한국의 근대화를 소개하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지는 묘한 친밀감. 이런 변방에서 나고 자란 아웃사이더들은 시니컬함과 자기 파괴적 유머에 있어서 신적 능력을 부여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르다(아일랜드 공화국 경찰)에서 잘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정말 잘리고 싶다면 제대로 노력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대망신을 당하지만 않으면 그들은 거의 모든 잘못을 눈감아 준다.

(p.7)


가르다에서 잘리기 위해 잭은 과속하는 벤츠 한 대를 쫓아간다. 관용차였다. 끈질긴 추적 끝에 뒷문을 열고 내린 사람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재무부 소속의 고위 간부였다.


"선생의 기사가 미치광이처럼 차를 몰았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그럼요, 간호사들과 놀아났던 그 얼간이 자식 아니십니까."

"꽉 막힌 친구로구먼. 자넬 당장 잘라버리라고 하겠어. 앞으로 자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안 되지?"

나는 말했다. "앞으로 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곤 그의 입에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

(p.10~11)


아일랜드인은 대부분이 알콜중독자다. 알콜중독자들의 대부분은 가르다가 된다. 아일랜드에는 사설 탐정이 없다. 잭은 알콜중독자 사설탐정이 된다. 꽤 유능하다는 명성을 얻지. 수임료가 쌌기 때문에.


<몰타의 매> 같은 걸 상상하면 안 된다. <밤의 파수꾼>에 비하면 <몰타의 매>는 전형적인 헐리웃 스타일의 클리셰 소설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아일랜드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고 거기에 기대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걸 알기라도 하듯 <밤의 파수꾼>의 사설 탐정은 어처구니 없는 행동들을 거듭한다. 펍에 앉아 술을 마시다 사건을 수임한 뒤 집에 돌아와 술을 마신다. 가르다에 정보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하고 용의자의 집에 무단 침입한다. 냉장고에서 스테이크를 꺼내 구워 먹던 잭은 용의자가 들어오자 실수로 그를 죽여 버린다. 다시 쏟아지는 술폭탄. 쓰러져 정신 병원에 갇히고, 알콜중독자의 나라답게 세심히 짜여진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퇴원해 다시 술을 마신다. 사건의 극적 해결? 무슨 말을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 없이 많은 버스와 기차와 비행기를 놓쳤지만 결국엔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사건은 수 많은 실수와 바보같은 조사를 거치지만 결국 해결된다.


탐정 소설에 어울리는 정교한 플롯 따위를 운운하며 폄하하기엔 이 책이 뿜어대는 매력이 너무나 황홀하다. 잭은 내 독서 인생을 전부 건다 해도 찾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 인물이다. 잭은 수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밤 자신이 복수해야 할 놈을 부두 밖으로 던져버리는 인간이다. 잭은 알콜이 자신을 파괴한다는 걸 정확히 알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그는 인생이라는 공을 몰고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스트라이커다. 진짜 아이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거.


알콜중독자와 독서광, 거기에 아일랜드를 더하면 지독한 유머가 탄생한다. 잭은 사건을 수임한 뒤 옛 끈을 이용해 가르다에 정보를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는 감자튀김을 사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르다로 추정되는 두 남자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다.


"남의 일에 함부로 참견하는 거 아니야."

나는 울고 싶었다. "가즈에 신고해."

그들이 내게서 떨어져나갔다.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감자튀김이 먹고 싶으면 너희 돈으로 사먹어!' 하지만 피로 가득찬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p.54)


영화 <콘스탄틴>에서 콘스탄틴은 극적인 구원 이후에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를 끊고 껌을 씹는다. 어느날 잠에서 깬 잭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독한 숙취에 시달린다. 잭은 콘스탄틴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필요한 게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게는 해장술이 필요했다.


나는 이 책을 감히 코맥 매카시의 소설들 옆에 꽂을 것이다. <밤의 파수꾼>을 읽어라. 종이가 닳을 때까지.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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