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944년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 스기야마가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한 줄의 시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한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처음 시작되는 이야기는 스기야마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악마라 불린 간수 스기야마와 윤동주가 어떻게 연결 되어 있는 것일까. 조선인 죄수들을 잔혹하게 다루어 온 스기야마의 죽음에 대해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있을까. 미스터리처럼 하나씩 진실들이 밝혀질 때마다 스기야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윤동주의 죽음이 어떠했는지 알고 있음에도 그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전쟁 중에 형무소 안에서 간수 한 명 죽은 일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파헤치다니 소장이 직접 지시해서 스기야마의 죽음을 파헤치라고 한 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기는 하지만 스기야마를 알지 못하면 윤동주 가까이에 닿을 수 없기에 작가가 유이치를 통해 보여주는 진실을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
스기야마가 끔찍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과 죽음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몸짓 하나, 눈빛 하나까지 그것이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윤동주에게 영혼과 같은 시를 소각하고 조선인 죄수들을 고문하고 폭행하는 그를 보면서 대체 어떤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지, 진실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정도로 스기야마의 삶은 그렇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동정심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의 고통을 위로 받기 위해 타인에게 고통을 준 스기야마의 삶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자신의 죄책감과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가리기 위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도 영혼이 상처 입은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스기야마의 죽음을 파헤치는 유이치는 스기야마의 주머니에서 나온 한 편의 시를 따라가며 조금씩 진실에 다가선다. 스기야마처럼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나지만 유이치는 여기에서 결코 멈출 수가 없다. 유이치는 스기야마를 죽인 범인으로 최치수를 지목한다. 최치수 또한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진술한다. 왜 그랬을까. 왜 최치수는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한 것일까. 유이치는 드러난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고 생각하여 좀 더 깊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스기야마와 윤동주는 '시'를 통해 마음을 나눈다. '시'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고 스기야마는 윤동주가 그의 세상 안에서는 오롯이 자유롭기를 원한다.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고통을 치유 받아야 할 것이고 윤동주의 시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스기야마 자신이 치유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꼭 살아서 형기를 마치고 나가겠다고 말하는 윤동주, 그러나 그를 덮쳐오는 거대한 음모의 세력은 스기야마조차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유이치는 간수가 아닌 죄수로 갇히게 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가 있다며 자책한다. 형무소에 관련된 서류들을 모두 소각한 후 기록이 불태워지고 감추어졌다 해도 진실은 여전히 그곳에 있기에 유이치는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허구이지만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한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기록해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