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신경장애 환자들의 임상사례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책 제목을 읽으며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책이었다. 실제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다니, 풍자소설인가?' 정도로 생각하며 첫 장을 열었으니 이후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경장애를 떠올리면 '치매'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여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이가 들어 제발 '치매'만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누구나 소원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환자들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신경장애를 앓고 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필자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줘도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고 되뇌인다. 활자가 주어진대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신경장애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며 읽어야 하고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 따위는 필요없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몸이 기울어져 걷게 되거나 나의 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음에도 인식을 할 수 없어 몸이 없다고 느끼거나('고유감각'의 문제라고 한다.) 오른쪽에 있는 것만 인지를 하고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신경장애 환자들의 글들 중 완치되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글은 보기 힘들다. 지금의 상황을 좀 더 나아지게 하거나 사라진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채워 상황이 좀 더 나아지거나 할 뿐이다. 과거는 기억하면서 현재까지의 몇 십년 동안의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 사람의 증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기억이 없다면, 과거이든 현재이든 기억이 사라지고 없다면 그 자신의 존재 이유조차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 오롯이 나라는 존재가 있기는 한 것일까.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인데 어제 일은 물론 지금 당장의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다면 영혼에 대해, 아니 거창한 영혼까지 말하지 않아도 존재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시간이 고통이 되는 사람들, 과거는 물론 현재의 기억까지 사라짐으로써 오히려 고통까지 잃어버린 사람들, 이들 중 누가 더 불행할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P 선생은 사람의 얼굴과 사물의 형태를 분간할 수 없었지만 음악이 자신의 삶의 부분이 아닌 모든 것이 되면서 극복해 나간다. 두 손을 60년간 쓰지 않은 매들린은 손을 써야만 하는 동기부여 즉 충동을 느낌으로써 손을 사용하게 되고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예술을 밖으러 드러내게 된다. 삶의 기적, 그래 이것이 바로 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환자를 하나의 '질병'으로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신경학과는 환자를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중시하는 것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말이지만 환자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알게 되는 것은 때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몇 십년간의 기억이 사라진 것인지 알지 못할 때, 가족들조차 과거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것을 볼 때 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환자를 '질병'이 아닌 영혼을 가진 한 명의 인격으로 대하지만 신경학적 증세를 보이는 환자 당사자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들의 삶이 잔인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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