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라부가 돌아왔다. 여전히 물욕없는 어린애같은 모습 그대로다. 그동안 나는 욕심이 더 많아져서 머릿속이 복잡한데 이라부는 더 어려진 것 같으니 여전히 순수하다고 해야하나? 단새우를 좋아하고 먹을때는 돼지와 동급으로 무지막지하게 드시는 이라부는 신경정신과 의사다. 딱딱한 표정의 권위를 내세운 의사들의 모습만 보신 분이라면 아마도 모든 환자들이 처음 대면할때의 당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아마 나도 환자로 갔다면 다시 오고 싶지 않았을텐데 예의 그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면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털어놓기 위해 다시 방문하게 될 것 같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는 이라부는 존경심을 가지게 되는 의사는 아니지만 편안해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중그네'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내 주위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면 '면장선거'에는 좀 범접하기 힘든 대단하신 분들이 이라부를 찾아오게 된다. '공중그네'책을 읽을때는 몰랐는데 이라부의 아버지가 도쿄에서 아주 유명한가 보다. '나베맨'이라 불리우는 미쓰오는 <대일본신문>의 대표이사 회장이다.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죽음에 대한 공포다. 엘리베이터는 '관'에 들어가는 느낌때문에 타는것이 힘들고 어둠에 대한 공포심도 함께 가지고 있어 보는 것이 다 측은할 정도이다. 돈, 명예, 권력 어느 것하나 갖추지 않은 것이 없건만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지금 죽기 싫다는 강박관념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신분이 높든 낮든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밀어붙이는 소신있는 행동은 사람들에게 신화적인 존재로 생각되어지고 있다. 물론 본인만 모를뿐이지만 자기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이 않으니 퇴직하여 한가롭게 사는 것이 두려운 미쓰오가 이라부를 찾아 진료를 받게 된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라부가 고치지 못한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왕진오라는 미쓰오의 말에 "싫단 말~야"라며 어린애가 말하듯 거절하는 이라부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마음을 털어놓아야 하는 신경정신과 특성에 제대로 부합되는 성격인것 같아 보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엄마, 아빠"라고 이야기 하는 어른을 보면 어이가 없긴 하지만 왠지 이런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니 어쩌랴.

 

현대에는 신종병이 많은 것 같다. IT 산업에서 잘나가는 '안퐁맨' 다카아키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버려 쓸데없는 시간은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논리적이지 않은 것에 수긍도 하지 않기에 히라가나도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이것도 신종병이 아니겠는가. 너무 앞서가는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아간다. 늘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제자리 뜀이라고 했건만 그것이 다 부질없다고 느껴질때라면 아마 내 몸이 지쳐버렸을때가 아닐까. "여유를 가지고 싶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타인과의 경쟁상태에서 잠시 놓여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떠나고 싶은 나도 이라부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인 것 같다.

 

유치원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이라부의 모습은 잊었던 나의 순수한 모습을 찾아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저 갖게 한다. 늘 살찌는 것을 두려워하고 늙어가는 것을 겁내하는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 "살 찌워보는 건 어때?"라고 물어보는 신경정신과 의사라면 아마 살쪘을때 발병할 수 있는 성인병에 대해 주절주절 열거해도 이라부에겐 당하지 못하리라. 늘 스스로를 잡아채 가둬두고 살아왔기에 먹는것조차 편하게 먹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정말 한번 실컷 먹어볼까?" 나이든다는 것은 참 슬프고 쓸쓸한 일이긴 하다.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해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이 필요하니 먹기만 하면 칼로리를 소모해야하는 강박증이 있는 가오루의 모습은 현대에 빈번하게 볼 수 있는 병이니 가오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덩달아 가라앉는다.

 

누가 "이라부는 순수한 사람이다"이라고 말해준것도 아닌데 나 혼자 지레 짐작하여 생각했기에 센주시마 섬에 간 이라부가 오쿠라파와 야기파가 면장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리는 중간에서 뇌물 받은 것을 어찌 처리할까 궁금했었다. 아무 생각없이 넙죽 받아든 뇌물을 어찌 처리할까 정말 궁금하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하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질수도 있었기에 신경이 쓰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역시 나만의 기우였으니 어린애다운 감정으로 양쪽에서 주는 돈을 받고 금액이 커짐에 따라 도망치고 싶어하는 모습이라니.

 

섬에서야 면장자리를 놓고 공략을 걸고 싸우는 것이 법을 어기기도 하고 무식해 보여도 이것을 토대로 섬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지만 2개월간 단기간 근무하는 이라부는 이 선거에 휘말려 조금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라부답게 잘 헤쳐나가니 오히려 이 두 파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어줘서 나의 마음도 즐거워진다. 당분간 이라부를 보기 힘들려나. 아마 아직 센주시마에 있지 않을까. 마음 기댈때 없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라부를 만날 필요가 있다. 나 또한 언제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으나 사실 주사를 무척 무서워해서 아직 고민중이다. 뭐 잘생긴 남자가 주사를 놔 준다면 한번 생각해 보고. 솔직히 마유미는 몸매가 이쁘다 보니 남자들은 주사를 맞아도 즐겁지만 나는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없으니 살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이것도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오는 생각이니 역시 이라부를 빨리 만나야겠다. 이라부를 그냥 보고만 있어도 즐거워지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