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사람들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옛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또래 친구들과 인형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종이위에 그려진 것들을 가위로 잘라 종이인형에게 옷도 입히고 구두도 신기고 가방까지 들려주며 친구들과 내가 인형의 화자가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었던 기억. 그땐 그게 최고의 놀이였다. 뒤에 나온 마루인형이니 바비인형 같은건 비싸서 아무나 갖고 놀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첫 대면했을때 그런 아련한 추억속에 파묻혀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종이에 손을 베일까 두려워지고 나와 같이 따뜻한 피가 흐르는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책장을 넘기는 것이 힘든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종이로 내장기관이 만들어지고 혈관까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정말 가능한 이야기였음 좋겠다. 그러면 장기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하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종이인간을 만든 창조주에게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래 창조주. 분명 이 책에서는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비록 내가 있는 세계에선 이런일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면 다분히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받겠지만 책속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도 가능한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구멍이 뚫린 곳에서 손을 대보게 되고 시커멓게 칠해진 곳에서는 나름대로 유추를 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슬며시 일어나는 짜증. 파본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대로 인쇄가 되었다고 하지만 독자의 인내심을 무한히 시험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때까지 접해보지 못한 내용에 인쇄상태까지 대체 날 어디까지 몰고갈 셈일까? 여기에 등장하는 '토성'은 또 뭘까? 내가 학창시절 배운 그 '토성'이 맞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따라가자니 전혀 생소한 세계에 던져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따라다니고 감시하는 존재인 '토성'에 대항하는 사람들 어쩌면 반전일 수도 있는 '토성'의 존재가 작가인 살바도르 플라센시아란 것을 너무 쉽게 밝혀주면서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하는데 '나 또한 이들을 위에서 압박하며 감시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실소를 하게 된다. "자신을 만들어준 작가에게 대항한다?" 정말 삼차원 메타판타지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이 책속에 등장하는 여러 세계들 중 나도 그 속에 존재하는 세계, 작가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하는 기분까지 들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야기를 즐겨보긴 하지만 많은 전쟁중에 종이와 싸우는 건 왠지 약자를 건드리게 되는 것 같아 싸움을 보는 것초차 피하고 싶다. 그런데 이것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가 될까? SF? 전쟁물? 갑자기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을 만들었지만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작가의 태도는 군중에 파묻혀 버리는 현대의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마음에 찬바람이 휘감는 것 같다. 종이의 날카로운 면을 늘 조심해야 하지만 베였을때야 아픔을 느껴 그 경고를 떠올리게 되니 어쩌면 종이로 만든 사람들의 존재는 무시무시할 수도 있지만 쉽게 바스라지기 쉬운 존재여서 오히려 대면하면 피하게 될 듯 하다. 물에도 쉽게 젖어드는 그들이 쉴 곳이 있을까. 그들도 나와 똑같다는 인정부터 하기가 힘들어지니 이런 존재가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래야 할까.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한 존재들이지만 아직 나의 머릿속에 남아 활개를 치고 있는 그들이기에 생명력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이제는 종이를 보면 종이인형보다는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또 하나의 기억이 더해짐을 감사히 여기며 책을 덮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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