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고대 - 아시아연대총서 5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 삼인 / 200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해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러일 전쟁(1904~05년)에서 승리한 일본이 자신들의 만주 침략을 학문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했던 일련의 시도에서 비롯했다. 일본은 발해 문화의 종속성과 비주체성을 강조하여 만주가 특정 국가의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각시켰고, 이후 한국에서는 식민사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해, 신라의 남북조 개념을 정립한다. 즉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한민족 국가이므로, 통일에 대한 환기와 전망을 동시에 제공하는 한반도의 고대사라는 관점이다. 중국 역시 자신들의 입장에 맞추어 발해를 말갈족이 세운 지방 정권으로 간주하면서, 다양한 소수 민족의 자립성을 희석시키고, 하나의 중국 안에 그들을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동아시아 삼국의 고대사는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 추이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190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의 팽창 정책 속에서 '만들어진' 학술 연구와 그 대립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처럼 고대란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事實)이 아니라 현대가 주목하는 토양에서 비로소 자라나는 사실(史實)인 것이다. 현대의 시각을 과거에 투영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과거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착각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만들어진 고대' 자체가 아니라 그 만듦의 의도와 해석의 본류이다. 고대사 발굴이 현재를 과거로 밀어 내는 것인가, 과거를 현재로 당겨 오는 것인가는 그 과정 전체를 또 하나의 역사로서 기록하는 성실함에 달려있다.


대체로 남북한이나 중국의 역사학계에서의 고대 일본상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근대 일본이 `현재`를 투영하여 과거 속에서 읽고 만들어 낸 일본상(자화상)의 구속을 받는다.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일본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할 때 근대 일본의 해석 도식이나 평가 기준이 전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각국에서의 국가 이야기는 근대 일본의 태내에서 자라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3)

광개토왕비문은 적어도 고구려 멸망(668년) 후부터 1200여 년 동안 그와 같은 텍스트(동아시아 삼국 전체에 중요한 역사적 유물)로서 주목받은 적이 결코 없었으며, 그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에 `발견`되자마자 역사 저편에서 홀연히 소생했다는 것이다. 37)

박시형은 발해가 조선사에 편입되지 않으면 안 되는 근거로, 민족적으로도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고, 더욱이 남(쪽)의 신라와 발해가 서로 `동족`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논거로 한 이상 이는 필연적으로 삼국 시대 이전에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동일성이 존재해 있었음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자체의 논리적 요청에 의해 초래된 변화였다. 91-2)

역사적 세계로서의 동아시아 세계란 역사적인 검증 차원 이전에 1960년대의 정치적 현실에 입각한 지역 설정이었던 것이다. 중국•한국•베트남•일본 네 나라가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는 지역으로 명확하게 의식된 것은 그러한 시대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59)

앤더슨에 따르면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국가의 유적 건설자와 당대 식민지 원주민은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유적은 복원되어 주변 시설과 함께 설치됨으로써 원주민에게 자신들이 장기간에 걸친 위업을 이룰 능력도 자치 능력도 결여되어 버렸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223)

(시바 료타로의 논의에는) 법가의 나라 -> 문명 -> 합리적 -> 상품경제 -> 자유•개인 -> 근대 자본주의라는 흐름 속에서 근대 일본의 성공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대해 중국•한국은 유교의 나라 -> 문화 -> 불합리 -> 억상(抑商)정책 -> 가족주의 -> 대정체라는 대칭 항목으로서 묘사, 일본과는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2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