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 2 - 제1부 그 별들의 내력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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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문제이겠지요.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게 되고,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찾게 되는 데에 작용하는 건, 결국 욕망이며 의지 아니겠습니까? 사람살이는 그에 따른 결과의 연속이고요, 이미 만난 사람을 피하는 방법은 다시 그를 만나지 않게 상황을 만들고, 아예 그를 잊는 것이겠지요. 그로 하여 화가 나거나 그로 하여 마음이 아프거나, 여하간에, 그와 연결하여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가근불가원할 일이 아니라 아예 싹을 자르십시오, 소인의 예시를 듣고자 오시었고 만만찮은 복채를 내시었으니 소인이 드린 말씀을 유념하시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게 제가 손님들께 받는 닷 냥분의 이야기입니다. 나리께오서 닷 냥이나 더 내주신 그 마음을 감사히 받겠사옵고, 그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더 하문하실 사항이 있으시면 말씀드리겠나이다. "(p270) 


소설 <반야>는 책 제목과 주인공 이름은 같다. 조선 후기 한반도를 둘러싼 외침과 청나라의 간섭 속에 놓여진 시대적인 한계,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신기를 가진 무녀의 힘이 필요했다. 고을 원님이었던 이학주가 무녀 반야를 가까이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우환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고, 이학주에겐 무녀 반야가 무속인이면서 여자였다.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내것이 될 수 없었던 반야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임금이 사라진 세상, 그 세상이 찾아오면 자신이 꿈꾸던 자유와 평등이 도래할 거라 생각하였고, 다른 사람이 못하면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무녀로서 자신이 가진 신기를 이용해, 남들의 고통을 돈의 자양분으로 삼았던 반야는 그렇게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가게 된다.


반야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마골 소경 무녀였던 반야는 갑진년 칠석에 태어났으며, 함채정(유을해)의 여식이기도 했다. 71번째 칠요가 되었던 반야는 사신계, 사신총, 사신경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반야의 역할은  새로운 세상의 하나의 구심점이었고, 자신을 호위하는 호위대장 동마로가 있다. 동마로는 반야를 지켜주는 동시에 사내였으며, 반야가 자신의 몸을 허락한 남자였다, 반야에게 밉보이면 죽임을 면하기 힘들었던 조선 시대의 자화상, 그 대상은 바로 노론과 소론의 시대에 권력의 힘을 얻으려 했던 김학주였다. 천것이었던 반야를 희롱하였던 김학주는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반야에게 내밑기고 말았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무녀가 세상의 중심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 속에서 반야의 이름은 '반야심경'에서 따온 작가의 상상력이 기인한 이름이다. 불교 경정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불경은 조신시대에 금지된 종교였으며, 예치와 유교에 이념을 가진 조선과 배치되는 요소였다. 작가는 그런 서로다른 모순적 가치를 이 소설속에 드러내고 있으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 신화를 소설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왕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권력의 실체에 가장 가까운 곳에 무녀 반야의 삶이 있으며,누군가의 고통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반야의 운명이 대하소설 <반야>에 펼쳐지고 있다.


반야는 안긴 채 까치발을 딛듯 고개를 들고 잠결의 동마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댄다. 거스러미가 느껴진다. 혀끝으로 그의 입술의 거스러미를 가만히 매만진다.입술을 떼어 내곤 눈을 뜨지 않았던 듯, 꿈속인 양 다시 동마로의 품을 파고든다. 잠결의 그가 반야를 당겨 안는다. 눈을 감은 채 반야의 머리를 당겨 입술을 포개온다. 어차피 꿈이다. 꿈에서야 무슨 짓인들 못하랴. 반야는 그의 입술이 원하고 자신의 입술이 원하는 대로 가만가만 혀를 움직여본다. 어느 결에 동마로가 깬 걸 느끼지만 스스로는 잠결인 양 그의 움직임을 모른 체한다. 두어해 전 그가 사신총령을 받아 떠나던 날처럼, 마침내 동마로의 하초가 반야의 음문을 파고들어와 온몸을 채운다. 고요한 합일이다.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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