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헌책방엔 우리의 과거가 감추어져 있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우리 삶의 한페이지는 책이다. 책에 대한 그리움, 책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갔던 지난날의 기록, 헌책에는 우리의 과거의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을 운영하는 윤성근씨는 헌책방 속에 남아있는 글귀를 수집하고 있었다. 한권의 책이 주는 의미는 책을 선물하는 사람과 책을 받는 사람 사이에 감추어진 마음이 숨어있다. 서점에서 내가 좋아하느 사람, 내가 존경하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줄까 고외하고, 그 사람이 이 책을 주면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이 담겨진다. 그리고는 선물받는 이가 이 책을 읽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살기를 염원한다.


그랬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다. 1970년대, 1980년대 검열이 존재했던 그 시절, 책에 대한 갈구는 더 심해졌다. 공산주의 책에 대해 금지하였고, 막스의 사상을 아는 건 사회적 배반이었던 그 시절이 있다.고등학교 때 교련 수업이 있었고, 수업시간에 군사훈련을 받았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교련 수업은 1989년 이전까지 존재했던 걸 알게 된다. 인문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으며, 지적인 허세가 존재하던 그 시절이 우리에게 있다. 어쩌면 철학을 열심히 탐구했던 건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열망이 숨어있었고, 누군가에게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문학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도서관에서 빌린 책 뒤에 있는 도서 대출증은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 주고 있으며 그 시절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책에 남겨진 손글씨 하나 하나를 읽어보면 사실 오글거린다. 그리고 1980년대 초에 쓰여진 손글씨와 1990년대 쓰여진 손글씨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바로 한자의 사용이며,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시가 담겨져 있었다. 자기계발서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내가 사랑하는 이가 이 책을 읽고 더 행복해지길 바랬던 것이다. 1990년대 쓰여진 손글씨는 조금더 세련되어 가며, 글씨는 부드러워졌다. 조악한 책 폰트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 간다. 세로로 된 글씨체에서 가로로 된 글씨체로 바뀌어 갔으며, 자신이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책에 적혀 있다. 한권의 책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그 안에 책임감이 숨어 있었다.


작가는 책에 쓰여진 손글씨에서 그 걸 쓴 주인공이 누군지 찾아가고 있다. 이름 하나, 주소 하나 , 날짜 하나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책이 어떤 서점에서 나온 책인지 알고 싶었다. 헌책 주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호기심, 과거에 존재했던 서점들은 시간이 흘러 사라진 곳이 많았고 때로는 다른 이름으로 바뀐 곳도 많았다. 대한민국에서 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이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쌓인 너의 많은 아픔, 고민들이 팔일년,스물한 해가 되는 해에 모두 알알이 맺길 빌며, 이 책이 그 열매를 살찌우는 데 조그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980.12.31 21회 생일을 축하하면서.(p107)


1983년에 읽었던 책을 2006.12.12 오늘 헌책방에서 발견하여 다시 읽는다. 한스 소피 숄은 나치 시대를 불꽃처럼 살다.22살에 오빠와 함께 처형된다. 자유와 양심과 정의를 위해.. (p149)


83.5.3 화. 고향을 다녀온 친구의 궁금증은 이러했다. 키 작은 보리가 왜 꽃을 피웠는가?다 어렸을 적 술래잡기를 할 때는 보리밭에 숨으면 자기 키를 훨씬 넘었는데 왜 이리 작은 보리가 꽃을 피우게 되었는가가 궁금하더란다.얼마나 우습고 재미있는 현상인가. 자기가 자람은 생각지도 않고, 어릴 적 보리 키나 지금의 보리 키는 여전하다. 자기 자신의 키는 컸다는 사실은 왜 잊었는지. 아름다운 잊음. 좋다. 시계꽃,피고 있는 토끼풀, 질경이,비....산은 아름답더란다. 고향의 바다는 항상 다시금 어른이 된 이름을 어린애로 만들어 버리고, 그 속에서 상념이 젖어온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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