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의 진앙지 일본 가와치 河內 일본에 남은 문화강국 백제의 발자취 1
양기석.노중국 외 지음 / 주류성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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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그들은 왜 임나일본부설을 말하는 걸까.신라도 아닌,고구려도 아닌 가야와 백제를 자신이 지배했던 나라라고 말하면서 억지 주장을 하는지 말이다. 그건 신라가 백제의 역사와 흔적을 지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천년고도 경주와 신라의 역사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라가 지운 백제의 아픈 역사는 일본이 백제를 지배했다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반면 일본은 오랜 세월 하나의 국가로 존재 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문화와 문화재 그리고 역사를 온전히 간직할 수 있었으며, 그안에 백제의 문화와 역사,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비록 일본은 내전으로 인하여 대화재가 발생했지만 신라에 의한 의도적인 역사지우기는 실체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백제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는 가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제가 남긴 유물 뿐 아니라, 그들이 남겨놓은 문화와 삶들이 가와치 곳곳에 고분과 성씨, 유물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백제 사마왕, 즉 무령왕릉을 발견하였고 그 안에서 많은 문화재를 발견했지만 졸속으로 문화재를 발굴함으로서 백제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알 수 밖에 없다. 

가와치.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오사카부 가와치라 말하면 이제서야 아 그럴 것 같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전 가와치라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였고, 가와치는 일본이 통일 정권이 되기전 가와치국으로 존재했다. 교토가 일본 색채가 짙은 곳이라면, 가와치는 백제의 색채가 잔득 묻어있다. 백제와 가야와 교류가 많았던 가와치국은 고구려와 백제가 전쟁할 시 협력할 수 박에 없었다.또한 백제가 멸망하고 백제의 왕족이 가와치로 옮겨가 그곳에 백제의 문화를 전파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관점에서 본 역사관이고 일본의 입장에선 멸망한 백제왕의 후손을 자신들이 거두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역사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르게 말할 때가 많다. 그건 역사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동일하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우리가 주장하는 백제의 역사와 일본이 주장하는 백제의 역사와 가야의 역사...여기에 항상 등장하는 것이 칠지도이며 칠지경이다. 그것에 대해 우리의 관점과 일본의 관점이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여전히 우리와 일본간의 좁혀지지 않는 역사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가와치 유적에 대해서 백제의 문화와 문화재가 건너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 그건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서술하는 한계이지만 백제의 역사와 가와치 안에 존재하는 역사, 백제의 문화와 가와치 문화를 비교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전파되었고,그들은 어떻게 꽃피웠는지 알수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이 일본에 남아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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