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과 지나가고 싶은 것 별빛들 신인선
김민혜 지음 / 별빛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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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내가 사라지고 나면 슬퍼할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잠깐 놀라고 이내 잊어버릴 얼굴들, 이따금 오래도록 슬퍼할 얼굴들. 이윽고 일평생 생지옥을 살아갈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의 슬픈 얼굴은 잠시나마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끔 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는 것이 어려웠다. 오매불망 나를 걱정하는 남겨진 가족들과 나 자신의 삶을 향해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슬픔만으로도 벅찰 지경인데 죄책감까지 보태어진 것이다. (-11-)

어제는 잠들기 전 따뜻한 국물을 끓여놓았다. 영하 6도의 추위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날이니 4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따뜻한 국물 마시고 출근할 생각들 하니 좋았다. 기다려지는 일 하나 만들어 놓아야 무거운 눈이 겨우 떠진다. 삶이 이렇게나 사사롭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어제의 시간을 마신다. 몸을 녹이면서 퇴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근도 전에 외근이 하고 싶다. 월요일이 되기 무섭게 다가올 주말을 기다린다. 늘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지금 당장은 언제 살아보지? 하고 생각한다. (-32-)

글, 그림, 그리고 그리움은 어원이 모두 '긁다' 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그것들 모두 날카로운 기구 다위로 대상을 긁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무심코 떠오르는 것들을 구태여 붙잡는다. 뭉툭했던 생각들을 활자라는 방식을 통해 날카로이 다듬어 지면 위에 긁어 새긴다. 그리고 보니 날카로운 것들이 오래 남는다. (-66-)

'사람들은 대게 분열적이라 자신과 에고가 딱 밀착이 안돼 있어요. 지금의 내가 실존적으로 나를 만나고 있어야 해요. 내가 누구이고 누구의 누구이고 무엇의 무엇이고 이런 식으로 거쳐서 다가가는 게 아니라 , 지금의 내가 나인 거예요.' (-102-)

지나간 것과

지나가고 싶은 것

사이에서

오랫동안 몸부림

춤이었다.

김민혜의 글을 읽고 적은 구절이다. (-130-)

20년을 살아온 사람이나, 40년을 살아온 이들이나, 60년을 살아온 이들이나,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오래 살았으니,지혜로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지혜와 무관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해가 되기 전, 지인의 황망한 죽음을 듣고 말았다.장례식 앞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르 펼쳐내고 있었으며, 살아있었다면, 결코 말하기 힘든 혐오스러운 말들이 난무하게 된다.

나의 경험과 저자의 경험이 교차되고 있는 그 시점이 찾아왔다. 1990년생, MZ세대를 대표하는 저자 김민혜는 현재의 삶 속 깊숙한 곳에 슬픔과 우울, 죄책감이 숨어 있다고 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상처를 주고, 긁어 버리는 상태에 대해서,나름 정당하지만, 심리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지나간 것과 지나고 싶은 것 사이에, 현재의 나 자신이 있다. 그것을 자아라 하고 있으며,자아와 에고는 서로 붙었다가 스쳐 지나가면서, 분열을 반복하게 된다. 그 사람의 죽음 앞에서,내가 헛헛하게 느껴진 것은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품고 살면 안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내가 갑자기 죽는다 하더라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장례식이라 하더라도,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체념 속에 희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게 된다. 비로소 축복스러운 시간이 찾아온다. 자연이라는 것은 오로지 홀로 태어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고,나를 찾아오길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것이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구심점이 될 수 있지만 , 결국 그것이 내 삶을 쉽게 무너트릴 수 있으며, 살아가야 할 에너지 조차도 상실되고 만다. 지나간 것에 대해서, 지나가고 싶은 것에 대해서, 연연해 하면서 살아가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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