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집 -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의 비사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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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마사코, 너도 언젠가는 가게 될 거야. 그 아름다운 물의 도시를. 물위에 세운 도시가 그렇게 단단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어. 그 물길을 따라 곤돌라를 타고 지나가면 어디선가 향긋한 꽃향기도 풍겨온단다. 아마 물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이 키우는 꽃에서 나는 냄새일 거야. 또 곤돌라 악사의 노래는 얼마나 감미로운지...." (-18-)

상처가 깊을 수록 더디 낫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성에서 있었던 일은 마사코의 가슴에 커다란 화인을 찍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마사코는 혈육을 잃었지만 조선에서는 황실의 대를 이을 후손을 잃는 일이었다. (-67-)

1943년 7월 20일, 아버지는 제1항공군 사령관이 되었다. 나라에 충성하는 군인으로서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나 아버지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속마음을 알수 없는 그 표정을 보고 측근들은 나름대로의 상상을 만들어냈으나 아버지는 그러한 일에도 무관심하고 무표정했다. 어머니 마사코로서도 불안한 일일 것이었다. 아버지의 눈빛에는 언제나 쓸쓸함이 가득했다. (-152-)

1947년 5월 2일 공포 시행한 '외국인 등록령'에 의하면 당분간 조선인은 외국인으로 간주한다고 되어 있어 아버지도 외국인 등록을 해야 했다.왕공 족보에서 한국 호적으로 이적했기에 일본 국적 외국인으로 등록했다. (-235-)

타인의 역사는 흑백이다. 피도 흑백이고,눈물도 흑백이고, 가슴을 찢는 고통도 흑백일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다행스럽다. 피가 붉거나 , 눈물이 투명하거나,슬픔이 진한 회색의 범람이라면 사람들의 감정은 오히려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흑백으로 보다. 그러면 단순해진다. 단순해서 단순한 것이 아니라, 무심해서 무심한 것이 아니라, 슬프지 않아서 침묵하는 것이아니라. (-335-)

권비영 자가의 『몽화』, 『덕혜옹주』 에 이어서, 세번 째 역사소설 『잃어버린 집』을 읽게 되었다. 100년전 망국 조선시대를 지나, 일본강점기로 넘어가는 시대적 전환점에서,잊혀진 여성들의 삶,왕족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소설 『잃어버린 집』은 고중 임근과 순종임금을 지나,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면서, 영친왕 이은과 이은의 아내 마사코가 주인공이며,두 사람은 망국 조선시대에서, 1907년 일본 유학으로 만나서 결혼한 사이였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주로 말하는 이방자 여사가 대한제국 황태자 영친왕 이은의 아내 마사코였으며,100년전 고종이 승화후, 3.1 운동이 발생할 당시의 정서로 조선 왕실과 일본의 평범한 여성이 결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설에서, 마사코르 쪽발이 여서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이 소설에는 황태손 이구 (李玖, 1931년 12월 29일 ~ 2005년 7월 16일) 도 낭고 있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줄주리아 멀록과 결혼하였으며,이방자 여사에 이어서, 대한제국 황실의 주번 재 여성이기도 했다. 쥴리아느 건축을 전공하였고, 이구 또한 왕실의 황태손의 틀에서 벗어나 근대 건축가가 된다. 이소설에 등장하는 특별한 존재 한창수가 등장하고 있었는데,그는 망국 조선의 마지막을 기록하기 위해서,권비영 작가가 배치해 옿은 인물로서, 명분으로 살아왔던 대한제국 왕실과 속물과 기회주의자로 묘사되고 있는 한창수가 대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영친왕이 일본에서 평범한 일본인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물론 영친왕 부부를 유럽 베네치아 여행을 돕고 잇으면서, 영친왕 내외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철저히 일본의 계상에 의해 일본으로 유학을 오게 된 영친왕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편하게 살았다. 일본이 미구을 대상으로 전쟁을 수행할 때, 영친왕는 일본의 항공기 조종사가 되어,전쟁에 투입된다.경복궁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아카사카 저택은 그들이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넓은 공간이었으며, 일본이 영친왕과 마사코를 철저하게 이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로 넘어갈 수록 , 국가 제정이 악화됨으로 인해, 영친왕이 머물었던 거처 또한 내놓아야 하는 현실이 놓여지고 있었으며, 1943년 당시 영친왕의 삶과 황태손 이구의 삶을 절묘하게 엮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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