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 힘껏 굴러가며 사는 이웃들의 삶, 개정판
최필조 지음 / 알파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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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반복되는 생, 세상 모든 사람들 내 어머니 아니었던 분 없어라. (-8-)

집에 가는 길

저 예쁜 손들

혹시라도 끊어질까 봐

차를 멈추고 기다립니다.

맞아요.

그때는 알았습니다.

먼저 가는 것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이

더 큰 행복이라는 걸. (-39-)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는 나의 부탁에 그는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구두를 닦으러 온 사람이 아니니 손늘 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편하게 생각해 다라고 말씀드렸지만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근처 가게로 가 그가 피우는 담배를 한 갑 샀다. 그는 여전히 손을 씻고 있었다. 마디마디에 깊게 스민 세월을 말없이 닦아내고 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을 방문한 사람인지 뭘하려는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을 방문한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노력할 뿐이었다. 나는 그와 적지 않은 댜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 말이었다.

"가게로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알수 있지. 구두가 자주 망가지는 사람은 걸음걸이가 잘못된 거야. 구두 탓을 해봐야 소용없어." (-88-)

슬며시 뒤로 숨습니다

험한 일, 궂은 일

마다않던 당신의 손

기다리는 마음 앞에서는

뭐가 그리 수줍은지 (-107-)

새색시의 고백

시집와서

처음 해본 작두지에

여물이 아니라

손가락을 자르고

시어머니의 눈초리에

아픈 척은 무슨

그 손으로 밥을 하고

얼음 깨서 빨래도 하고

마음 여린 옥천 댁은

아직도 무섭습니다.

해여나 그런 세상이

또 올까 봐. (-125-)

소원을 풀다

유모차는 땅이 지겨웠다.

말년에 주인이 없어지자

지붕에 올라가 놀았다.

냉장고는 부엌이 지겨웠다.

말년에 주인이 떠나자

길바닥에 나와 놀았다.

연탄재는 차가운 보일러실이 지겨웠다.

말년에 주인이 사라지자

안방에 들어가 놀았다.

가로등은 버티고 서 있기가 지겨웠다.

말년에 걷는 이가 뜸해지자

다소곳이 누워 쉬었다.

안방과 거실에 비가 내렸다.

비맞는 마당을 부러워하더니

소원을 풀었다. (-189-)

마늘밭에서

나는 아흔 두 해를 살았습니다.

내 집은 백살이 넘을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이 밭에 마늘 심을 사람이 없습니다.

내 집과 내 흙과 나는

함께 늙고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263-)

사진작가 최필조님의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은 흑백사진 속의 따스함과 아픔을 그리고 있었다. 코끝이 시큰해진다는 말이 이런 느낌일까,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지독한 시집살이, 어설픈 농삿 일, 결국 손가락을 자르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과 아픔과 서글픔을 말할 수 없었다. 끊어질 것 같은 아픔도 ,시어머니의 등살에 비할 바 아니었다.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 가난과 배고픔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서글픔이 손마디 마디에 켜켜히 상처로 남기고 말았다.

손등이 고목나무 등껍질 마냥 거칠었으며, 허리는 고부랑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유모차에 자신의 몸을 의지하면서도 오로지 사랑만은 내려 놓지 않는다. 엄마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살아온 지난 시간들, 그 시간들이 우리들 아픔 속에 내재되고 있었다. 삶의 힘듦을 말할 수 없어서, 찍어야 했고, 살아온 시간들, 살아온 삶,견뎌온 생,이러한 것을 사진속에 보여줄 수 없어서 쓴 글이었다. 사진 속에 채워지지 않는 슬픔과 고통, 아픔이 그대로 느껴진다. 흙을 터전으로 살아왔으며, 한 가지 기술로 의식주를 해결해 왔던 삶에 대한 긍지, 손과 말에 켜켜히 삶의 때가 묻어나 있었다. 물로 씻어도 씻져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아련하게 그리움으로 남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며,버티는 것이었으며, 주어진 삶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이 사진에 반영되고 있었다. 마치 내 앞에 놓여진 것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 코끝이 자꾸만 시큰 거린다.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할머니, 시골에서 흙에 의존하면서 소네 흙먼지 털어낼 시간이 없었고, 물이 마를 시간이 없이 살아온 외숙모의 삶이 느껴져서다. 삶은 그렇게 사진에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소원을 풀다』 에서 ,주인없는 나의 외갓집, 외할머니 없이 방치된 시골의 빈 집이 자꾸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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