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카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7
김지현 지음 / 호밀밭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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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은 오랜 만에 돌아온 방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뻐득뻐득 마른 오징어 껍데기에서 날 법한 비리고 마른 살냄새. 늘 몸에 배어 있던 자식의 자식을 떠맡은 노인의 냄새. 근원지의 냄새. 구역질이 오른다. 이 방에서 18년을 잤다. 벽에는 이제 네 명의 죽은 얼굴이 붙어 있다. 혜영을 만든 남자와 남자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들의 얼굴은 모두 하나같이 왼쪽으로 피부와 근육이 당겨져 있다. 도망칠 수 없다. (-10-) 『파브리카 』

뜨거운 것이 눈가로 차오르는데 뭔가가 탁 날라왔다. 발치에 떨어진 것은 까만 비닐봉지였다. 아까 아버지가 달랑달랑 들고 가던 그것인 듯했다. 비닐 봉지를 열어 보니 콩떡 두 팩이 들어 있었다. 쉬어 버린, 아버지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 그것과 같은 콩떡이었다."떡무라." 아버지는 내 쪽을 쳐다도 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떡 비닐으 뜯었다. 아이 주먹만 한 콩떡을 한 입 베어 우적우적 씹었다. 텁텁한 콩 잔해가 쫀득한 떡에 비벼져 고소했다. (-40-) 『흰 콩떡 』

둔탁한 무언가가 천장을 툭툭 쳤다. 분명했다.이건 뭔가를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는 소리가 아니라 바닥을, 내 방의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고의로 , 아래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내는 소음. 타인의 삶 따위는 안중에 없고 개의치 않고 쉽게 망가 뜨리는 소리.

인터넷에는 층간 소음에 대한 글이 난무했다.전염병이 회사, 병원, 학교 곳곳을 먹어 치우자 사람들은 각자의 방으로 숨어들었다.(-99-) 『방 』

정부는 거대 지렁이의 출현에 당혹하는 모습을 그대로 국민들 앞에 드러냈다. 돌연변이로 등장한 지렁이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에 성과도 내기 전에 새로이 출현한 거대 지렁이는 그야말로 구갖벅 위기에 맞먹은 조치를 취하게 했다. 긴급 대책은 대대적인 활동 제한이었다. 사람들은 긴장했다.이례적인 국가적 조치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진행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129-) 『구인 蚯人』

『파브리카』, 『흰 콩떡』, 『누수』, 『방』, 『구인』 이 다섯 편의 초단편소설이 한 권의 소설 속에 내재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소설 제목만으로 작가의 의도, 스토리 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단편소설이 연이어 나타나게 되는데, 작가 김지현의 독특함과 상상력이 구체화하고 있었다.

소설 속에는 디스토피아, 염세주의자, 혐오, 차별, 회필와 같는 단어가 생각나게 된다.우리가 혐오하고, 차별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들, 나이들어감, 노인, 더러움, 지저분함, 괴이함과 같은 단여들이 자가의 상상력 속에 내재되어 있는데, 첫번째 단편 『파브리카 』 에 등장하는 주인공 해영은 한 공간에서, 18년간 살게 되는데, 그 공간에 네명의 송장이 동거한다. 사실 이 소설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실제 지인이 이러한 방에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정 사진 내개, 두 부모의 영정 사진을 방 한 칸에 있는 것을 모셔놓았던 기억이 있어서다. 누군가에겐 나를 지켜준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손님,나그네의 입자으로 볼 땐, 죽은 사람의 시신을 모셔 노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탈피하고 싶어도, 벗어나고 싶어도 잘 안되는 이유가 명확해지고 있으며, 주인공 해영의 얼굴이 일그러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놓여지게 된다. 작가 김지현은 이 소설에서 무엇을 담고 싶었던북토크에서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다섯번째 소설은 『구인』이다.이 단어에서 구인 蚯蚓 이 아닌 구인 蚯人이라고 써놓았던 건, 거대한 지렁이가 등장하는 단편 소설이다. 단순히 숲과 밭에서 나타나는 환형동물 지렁이가 아닌, 인간처럼 거대한 지렁이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 초유의 사태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잇었다. 즉 이 소설에서는 작가의 깊은 의도가 숨어 있는데, 우리 삶에서 거의 발행할 가능성이 없는,희박한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해서,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잠시 시간의 간극을 두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살아남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인류에게 닥칠 수 있느 또다른 재앙이 상상되곤 한다. 우리 삶의 곳곳에 숨어 있는 여러 암초들이 인간의 사고를 부정적으로 전환하고 있으며,그 안에서 우리 스스로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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