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고생구 낙원동 개미가 말했다 - "휴, 간신히 여기까지 기어왔네."
송개미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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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란 성인이 되는 관문이 아닌가 생각했다.열아홉이 끝날 때까지 모두가 대학 하나만을 최우선으로 삼는 나라니까 영 그른 생각은 아닐 거다.십대들의 꿈이 거의 '수능 대박'한 가지로 꼽히는 현실을 구태여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나 아니어도 많이들 비판한다. 내가 아쉬웠던 건 대학에 가면서부터 어떤 현실을 맞이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거다. 좀 구차하고 찌질한 얘기라도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모두들 대학만 가면 살도 쭉쭉 빠지고 캠퍼스의 수많은 이성 친구들 중 제법 말끔하고 선한 사람이 저절로 내 짝이 될 것처럼 좋은 얘긴만 했다. (-13-)

2010년 3월 13일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시도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검은 망 안에 긴머리를 깔끔히 정리해 넣고 살색 스타킹에 검은 구두를 신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P 호텔에서 서빙을 하려면 커피색도 검은색도 아닌 살색 스타킹에 화려한 장식이 없는 검은 구두를 신고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려야 했다. 당시 시급이 4,500원이었던 것 같은데 검은 구두를 사는 데 2만원, 머리 망을 사는데 3천원을 썼다. (-61-)

집에 보태는 돈을 월 70만원으로 간신히 타협한 후 나는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울었다. 사립대학에서 만난 ,부모님 재력으로 하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은 것도 마음껏 배우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107-)

"개미야, 그건 넷이서 나눠서 정산 완료했어. 그날 네 덕분에 재밌게 잘 쉬고 놀았어. 신경 쓰지 말고 좋은 하루 보내."

내 사정을 아는 이들의 배려는 이후로도 수험기간 내내 이어졌다. (-157-)

그런 법서를 7개 과목(헌법, 민법, 형법,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상법,행정법) 당 3권씩은 구매하려니 허리가 휘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시험이 끝난 선배들이 휴게실에 버리고 가는 책을 주워서 봤다. 고맙게도 위 기수 친구들이 졸업하며 책을 한 무더기씩 안겨 주기도 했다. (-174-)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내가 그토록 긴장했던 게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 ,나 됐어! 밑도 없이 소리를 빼액 질렀다. 가슴 속에서 함성이 튀어나오려고 해서 참기가 힘들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으신 게 분명했던 엄마는 뭐라고? 하고 되물으셨고 나는 "엄마, 나 합격했어, 합격했다고!" 라고 말하며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아유, 그만 울어라,. 주변에 변호사들 지나다니는 데서 창피하게 뭐하니?

그것이 엄마의 첫 마디였다. 나는 그게 야속해서 엄마 들으시한 듯 더 울어 젖혔다. (-181-)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양지가 있고,음지가 있다. 좋은 것이 있고,나쁜 것이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좋은 것만 부각시키거나, 반대로 나쁜 것만 부각시킨다. 말하지 않으려 하고,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무관심하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프리즘은 항상 왜곡돼어 있다. 그 빈틈을 차별과 혐오,선입견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저자의 삶에 반영해 보고 싶어졌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면, 나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삶이 내 삶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저는 현재 변호사이다. 하지만 태어나면서, 변호사를 꿈꾼 건 아니었다. 언론 고시, 혹은 국문학과, 작가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분법적인 논리는 저자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알바 인생, 서른이 되기 전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던 저잔의 삶에 매번 발목 잡았던 건 부모의 삶이다. 항상 요구하고, 채워주기를 기대하였덤 부모님의 삶,그 삶이 인생의 짐이 되고 있었으며, 우리가 말하는 3포세대의 전형이기도 하다. 찌질하고, 옹졸한 삶, 누군가 나를 베풀어 주는 삶이 아니라,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어 주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것이 저자가 로스쿨이 입학하게 된 이유였고, 공부하면서, 옹졸하지만,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는 속담을 철썩같이 믿었던 이유다. 나의 삶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내 삶에 따스한 기운이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나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살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 그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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