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온도
이다루 지음 / 북랩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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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품에 꼭 안았다. 그의 팔이 점점 조여왔다. 어떠한 대화도 없이 그가 내 턱을 잡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술도 입에 대지 않고 맨 정신으로 그를 품는 건 처음이었다.마치 처음인 것처럼, 그의 품에서 풍겨나오는 향기에 온몸이 자극했다. 그의 손이 정성스레 다린 분홍빛 셔츠 사이로 칰범하다가 이내 멈췄다. 왜 이런 옷을 입고 왔냐며 그가 미간을 좁히며 짜증을 냈다. (-22-)


"나 마흔이야. 언제든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그래서 우리가 결국 아이를 가졌어? 나 그동안 일하면서 시험관 하느라 너무 지쳤어.이번엔 정말 아기가 찾아온 줄 알았다고, 다 내 잘못 같고, 일만 했던 날들이 너무 후회돼" (-43-)


'그래도 30대에 남자를 만나면, 이 남자랑 키스하면 어떤 기분일까? 품에 안기면 어떤 향기가 날까? 뭐 이런 상상도 여러 번 했더랬지.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생각은 별로 안 들어. 그보다 이 남자와는 무엇이 안 맞을까. 어떤 게 부딪히게 될까.그렇게 되면 내가 얼만큼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을까.정말 재밌는 건 내 삶이 힘들어지면 안 되는데...벌써부터 나부터 걱정하게 돼.그러니 연애를 하겠어?' (-95-)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당장이라도 아버지가 돌아올 것 처럼 방안의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아버지가 휙 내동댕이칠 만한 것들을 골라서 서랍장 안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다음 날, 그 다음 날에도 나는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에 신경을 쏟았다. 부스러진 명태 때문에라도 당장 아버지가 돌아올 줄 알았다.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혼자서 상상하기도 했다. (-160-)


엄마는 성희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따가운 햇살 탓에 눈이 시려서 자주 눈을 껌뻑이는 것 같았고, 그런 엄마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들은 곧장 몸을 돌려 나를 등지고 걸어갔다. 넘마 손에 이끌려 따라가는 성희만 자꾸 돌아보며 내게 손을 흔들어댔다. (-193-)


소설가 이다루의 <마흔의 온도>는 네편의 단편소설로 이어져 있었으며, 각각의 스토리는 40대 여성에게 처한 현실,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떤 상황과 그 상황에 대처하는 전 과정을 함축적으로 응시하고 있다.


마흔을 우리는 불혹(不惑) 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를 의미하고 있지만 ,혀실 속 마흔은 불혹과 동떨어져 있다. 소설 <마흔의 온도>에 등장하는 마흔 여성 주인공 넷은 그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 마치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처럼 ,삶의 전반에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판단이 흐려지고, 그로 인해 잘못된 선택과 결과를 도출하고 있었다.여성에게 마흔이란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는 시기와 일치한다.나의 또다른 불안이라는 자아가 이 소설에 꽉꽉 구겨진 것처럼 채워지고 있었다.


즉 첫번째 소설 (Two Bathroom>에서 여성이 남자를 만나자마자 성을 나누고, 사로 몸을 섞는 이유는 자신이 사십대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흔이지만,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은 순수함은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있었다. 그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것이 사랑이며, 성관계이다. 우리 인생에서 선택과 결정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에 근시안적인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는 이유는 , 눈앞에 붎편함을 먼저 덜어내고 싶은 심리가 도출되고 있어서다.그 나이에 들어서게 되면, 그로인해 조급하였기 때문이다.


즉, 나이는 이유없지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마흔, 그 나이에 어느 위치에 다다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내면에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마흔에 삼십대 연하와 사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마흔이 아이가 없어도 마찬가지다.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지만,우리가 만든 사회적 관행이 그렇다고 규정한다.그로 인해 우리는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마흔 이후 ,각자 마흔의 온도는 다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온도가 시기,질투, 분노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걸,네 편의 단편에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소설이기도 하다. 각각의 소설 스토리보다는 주인공의 선택과 결정,판단에 나이가 하나의 변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흔을 사랑하자는 것은 작가 스스로 만들어낸 의도이자 목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며 ,내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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