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에 어둠이 새겨질 때 - 쓸쓸한 식탁에 빛이 되어 준 추억의 음식들
김미양 지음 / 두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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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우미를 직접 만들었다. 바다에서 건져낸 우뭇가사리를 햇볕 아래 말리고 오랜 시간 끓였다. 굳힌 끝에 만들어지는 연한 노란 빛의 투명한 네모 덩어리가 바로 우미였다. 할머니가 매해 여름마다 몇 번이나 우뭇가사리를 말리고 삶아 왔는지, 어린 날의 내가 우미무침을 몇 그릇이나 해치웠는지, 그 숫자는 도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29-)


제주의 설화 중 또 하나,'자청비'이야기가 있다. 자청비는 사랑과 농경의 신이다. (-51-)


밥솥 하나 가득 밥을 지어 놓는 것도 언제나 선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선희는 그만큼 살림에 익숙했다. 우리보다 키가 훌쩍 큰 오빠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밥솥을 열어보고는 밥이 부족하다 싶으면 선희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한창 성장기에 있었을, 식욕 왕성한 오빠들은 밥을 커다란 대접에다 퍼서 고추장에 썩썩 비벼 별다른 반찬 없이도 아주 맛있게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곤 했다. 그렇게 한두 그릇 먹다 보면 밥은 또 금방 동이 났다. 선희는 묵묵히 다시 부엌으로 가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컴컴한 오밤중이나 되어야 돌아오실 엄마를 위해. (-76-)


이름도 가물가물해 '돌돌이'라 설명해야 했던 그 음식은 할아버지에겐 어린 날의 향수였을 것이다. 제사가 끝나고 난 뒤 남녀노소 누구나 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동록 하는 것이 음복의 원칙이었다고 하니, 소로록 잡ㅁ이 들었다 깬 어린 아이 입에 누군가 미수전 한 점을 물려준 게 아니었을지, 졸린 눈 비비켜 오물오물 받아먹는 미수전의 보들보들한 감촉과 고소한 맛은 그 시절 자주 접할 수 없는 별미였을 테다. (-130-)


할머니를 화장터까지 모실 어른들에게 돼지고기를 썰어 대접한 일이 그나마, 유일하게 ,내가 할머니 가시는 길에 내보인 작은 서으이가 된 셈이다.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두세살이 될 무렵까지 우리 가족은 본가에서 살았다고 한다.그러니까, 엄마 등에 업힌 채로 돼지비계를 손에 꽉지고 물고 빨고 주물러 댔다던 그 시기는 내가 친할머니와 살기 이전이라는 뜻이다. (-150-)


사람은 의식주에서 옷과 집도 중요하지만, 식을 잊지 못한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인간의 본성,어릴 적 내가 즐겨 먹었던 그 음식들, 아기의 입맛이 평생가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어려서 돼지 비계에 꽂혀 있었던 저자는 돼지 살코기보다, 돼지비계에 손이 가게 된다. 먹방의 지존, 독특하고,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먹는 것 하면,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날 것이다. 나의 할머니가 건네준 그 음식은 할머니가 없다면 재현하기가 참 힘들었다. 저자에게 우미무침이 그런 경우다. 맛있고 맛나는 것, , 어린 시절 수제비를 해 먹다가,그대로 다 버린 기억, 완전히 증거 인멸을 시도하게 된다.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다. 나의 경우, 냄비를 태워 먹어서, 음식을 버리고, 냄비를 빡빡 긁은 적이 있다. 대책없이 생각나서,그 음식을 해 먹다가, 큰 대형사고르 친 적이 있을 것이다. 증거인멸을 한다고, 배수구에 가득 채워서, 막혀 버린 기억들, 그러한 것들이 추억이 되고, 내 삶이 될 수 있다. 작가는 그 하나하나 덤덤히 담아내고자 하였다.


우리에게 먹는 것은 그리움이다. 돈으로 모든 것읗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결코 먹는 것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작가에게 어린 시절 동갑내기 친구 선희에 대한 기억들, 오빠들의 시모살이를 했던 그 기억이 뇌리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1987년생 작가에게, 자신의 또래 친구가 밥을 하고, 반찬을 하는 것이 신기하면서, 존경스러웠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항상 비슷한 생각과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맛에 대한 기억, 그것이 층층히 쌓이게 되면, 사람에 대해서 기억하게 되고, 인생의 가치를 검증해 나갈 수 있다.그리고 그것이 문화가 될 수 있고, 내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작가의 맛에 대한 기억, 제주도에서 느꼈던 우뭇가사리, 그것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깊은 의미와 향취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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