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 요리를 하는 순간 살인이 시작된다
최정원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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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고시텔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빚 문제로 힘들어하는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 수없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또 월세와 생활비로 쓸 돈이 부족해 평일과 주말에도 과외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늘 쓰러질 것 같은 상태로 집에 도착해 새벽까지 시험공부를 했다. (-21-)


연약하고 의존적이기만 했던 엄마는 조금씩 변했다. 일자리를 찾아 매일 이력서를 썼다. 지나치게 많은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내놓았다.
엄마는 새로 이사할 집을 찾아 서울 변두리 아파트를 둘러보러 다녔다. 이모도 도와주고 외삼촌도 외할머니도 도와줬다. (-114-)


선물을 들고 있는 내 손이 떨렸다. 엄마가 임신한 거다. 양부모는 내가 절망하는 표정을 보지 못하고 행복해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엄마는 한 번도 내게 보인 적ㄴ이 없는 이가 드러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겐 늘 양쪽 입꼬리만 살짝 놀린 미소를 보였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엄마를 환하게 웃게 만든 거다. (-211-)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뒤로한 채 우린 결혼했다. 결혼 후 행복하게 살았다. 서로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난 남편의 안정감과 깊은 애정을 좋아했고, 남편은 내 젊음과 조건 없는 사랑에 감동했다.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우린 잘 살았다. 나이와 환경과 차가운 시선은 우리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249-)


방안에서 가스가 빠져나가면 남편은 다시 온순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면 그날 온종일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기침이 심해지면 더 많은 천식약을 복용했다. 천식약의 부작용은 천식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사람은 천식으로 죽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천식약으로 죽어야 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작은 곰팡이나 세균, 바이러스에도 죽을 수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남편이 천식으로 더 강한 천식약을 복용하게 만드는 거였다. (-312-)


최정원의 <레시피>에는 네개의 요리가 등장하고 있다. 그 요리는 <밴딩이 무침>,<가지튀김>,<멸치국수>,<초콜릿 케이크> 다. 이 네가지 요리와 각각의 요리와 맛이 있으며, 하나의 레시피는 하나의 살인과 연결되고 있다. 그 살인의 형태는 보편적인 죽임이 아닌, 사회적 약자가 저지르는 특수한 경우의 살인이며, 우리 사회의 만연한 사회적 고통과 폭력이 만들어낸 살인이었다. 즉 소설 속 이야기 하나 하나 살펴본다면, 살인과 죽음, 각 요리의 특징을 알게 된다. 사회적인 겁박, 가족에 의한 폭력, 주변 인물들의 조롱과 비아냥,예고되지 않은 언어적,물리적 폭력은 살인의 원인이자 구실이 될 수 있다. 소위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상황, 그 과정에서 사회의 법과 제도는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이 소설의 네가지 레시피는 바로 그런 부류의 살인에 해당되고 있다. 여성에게 향하는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점, 노력하고, 성실하여도, 사회적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그걸 해결할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살인이다. 단 그 살인의 형태는 서서히, 누구도 모르게 깜쪽같이 저질러져야 한다. 살인이지만, 지병처럼 보이게끔,사고사처럼 위장하도록 하는 법, 그것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레시피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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