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얻은 말과 버린 말
사월날씨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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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 돌아보면 내 나이에 엄마는 이미 아이를 둘 낳아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엿한 엄마였다. 크고 단단하고 곧게 서 있던 어른 . 엄마, 그걸 어떻게 했어? 나는 지금 나를 돌보기도 버거워 죽겠는데. (-14-)


내 삶에 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나였지만, 나를 둘러싼 것들은 내 삶을 가장 잘 아는 것처럼 평가해댔다. 나를 나이라는 틀에 가둔 채 젊은이다운 모습을 요구했고 ,거기에 미달하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21-)


더 나쁜 건 그걸로 나를 괴롭히는것이었다. 나는 왜 기본적인 일조차남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지 못할까? (-32-)


눈을 감고 자연 속에서 달리는 나를 상상해본다. 곧바로 몸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아니어도 스스로 기분을 변화시킬 만한 선택지를 떠올린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운동이라는 점에서 나는 자신에게 놀라버린다. 창을 열고 소리치고 싶다. 동네 사람들,. 내가 운동을 해요! 게다가 좋아해요! (-63-)


여자에게는 허용 기준이 지나치게 좁고 세세하다. 키가 크면 여자치고 너무 크다 하고,작으면 또 작다고 , 가슴이 크면 성희롱에 노골적인 시선에 가슴 축소 수술을 생각하게 만들고, 가슴이 작으면 역시 성희롱에 자기비하에 가슴 확대 수술을 생각하게 만드니까. 거기에 모양은 뭐 물방을이어야 하고 성기는 또 분홍색이어야 하고 조여야 하고....강남의 길거리와 지하철마다 빼곡한 성형외과 광고들을 볼 때마다 속이 갑갑하고 불쾌하다.획이화된 미의 기준이, 쓸데없이 정밀하고 가학적이기까지 한 기준이 누구를 위한 건지 되새겨주는 문구들. (-69-)


나의 애착 형태가 회피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갈등을 피하고 혹여라도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을 원천차단하려고 한다. 혼자 해결하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에너지가 부족해서 주고받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주지 못하니 처음부터 받지 않으려 애쓰는 것일지도 , 무엇보다 건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137-)


충격적인 일은 몇 달쯤 뒤에 벌어졌다. 이별은 내가 먼저 고했는데 애인은 그쪽이 먼저 생긴 것이다. 같은 학교, 같은 동네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사후 소식이었다. 그 애가 새로 사귄 애인과 다정하게 벤치에 앉아있었다거나 애인의 배를 만지고 있었다거나 하는 가십이 오지랖 넓은 친구들을 통해 내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야 실은 아직도 그 애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늦어도 너무 늦게.
조금 이상한 과정이었지만 나는 매신감에 치를 떨었다.내가 헤어지자고 했다는 사실을 아무리 스스로 상기해봐도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나를 영원히 기다린다고 했잖아. (-144-)


이곳에서 나는 영역에 따라 권력자도 되었다가 소수자도 된다. 여성으로서는 소수자지만 한국인으로서 권력자다. 나는 여기에서 가진 것이 꽤 많다. 학력이 있고 양육자가 있고 수도권에 산다. 대중교통을 타고 한 시간이면 본가에 가서 잠을 잘 수 있고 밥을 먹을 수도 있다.어딘가에 이력서를 내면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장에 간다. 기사, 논문, 인터넷 검색 자료를 한국어로 일고 말한다. 길거리를 지나가도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나는 완벽히 이곳에 속해 있다.누구도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지 않고 진짜로 너의 고향이 어딘지 묻지도 않는다. 서울 곳곳을 알고 있고 문화 생활을 즐긴다. 나는 젊고 어디든 간다. 전시를 보고 글을 쓰고 친구들을 만나고 강의를 듣는다. 원하는 것을 하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돈일 뿐이다. 나는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 부탁할 사람이 있고 물어볼 사람이 있다.내가 뭘 모르는지 알고 모르는 걸 해결할 수 있는지 방법도 안다. (-233-)


사람은 인생의 변곡점을 만나게 된다. 그 변곡점은 어디인지에 따라서 달라지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따라서 내 인생은 바뀌게 된다. 나의 삶이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타인의 삶이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그 시기가 나에게 서른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곰곰히 따져 보게 되었고, 나의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즉 나의 과거를 들출 수 있는 따스하고, 은은한 에세이였다. 과거 속에 나 자신이 있었고,나의 후회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서른에 얻은 말과 버린 말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감안하고 읽어 나갔다. 이 책에서 서른이 되면, 내 삶을 스스로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 충고와 조언이 느껴진다. 내가 가진 말을 버리고, 담아낼 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따라서 애 인생의 후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 내 삶은 항상 바뀌고 있으며, 항상 틀려지고 있다. 그리고 나의 삶의 후회의 근원이 어딘지 알게 되었다. 과거에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것을,지금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기억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행복이 내 앞에 있지만,그 행복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와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으며, 결국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서른과 나의 부모님의 서른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다는 말이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 한편으로 저자의 생각과 말 속에서 우리 사회가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전환되는지 어느정도 감안할 수 있다. 내 부모님이 서른일때는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모습이다. 지금은 그 부모라는 책임감에 대한 부담감이나 힘겨움이 나타나고 있었다.그건 결혼에 대한 공포와 학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과거에 비해, 노총각, 노처녀라는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부담감에서 해방되었으며, 우리 사회는 결혼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정도 해방되었으며, 저자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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