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3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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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꽃분님이 발작을 일으켰어요. 주사를 놔서 진정시켜놨는데 아무래도 내일 보호자가 와보셔야겠어요."
전화를 끊고 다시 수저를 들었다.식욕은 사라졌지만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일했던 터라 뭐든 먹어야 했다.(-9-)


"깡깡깡깡깡깡깡깡....!"
깡깡이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바람 방향에 따라 몰려왔다 몰려갔다.아침부터 저녁까지. 숨 쉬고 있지만 공기를 생각하며 살지 않는 것처럼 대평동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 오히려 느끼지 못하는 깡깡이 소리였다. (-43-)


엄마는 다시 혼곤한 잠으로 빠져들었다. 틀니가 빠진 채 다물어지지 않은 입은 바닥에 닿을 수 없는 깊은 등골처럼 보였다.나는 가만히 엄마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물기라곤 없는 까칠함,손,발, 입술까지, 엄마의 몸은 바싹 마른 북어처럼 건조하고 까칠했다. (-86-)


골목에는 공동으로 쓰는 상수도가 하나뿐이었다.물이 나오는 시간도 정해져 있어 오후 세 시에 물이 나왔다.수도는 성만이네 집 앞에 있었다.수돗가에는 아침이면 골목 안 사람들이 나와서 세수도 하고 깡깡이 일을 나가지 않는 알에는 엄마들이 빨래를 했다. (-127-)


잠든 엄마의 얼굴에 아버지의 실종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울부짖던 얼굴이 겹쳐진다. 남편을 잃고 몇 년 뒤 막내아들까지 잃은 엄마는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사람 같았다.엄마 뿐이었을까? 동생들은 말수가 줄어들었고 잘 웃지도 않았다.슬픔과 한숨이 오랜 시간 우리 집을 맴돌았다. (-166-)


어떤 장소에는 시간이라는 여운이 남겨져 있다.각자 사람들마다 간직하고 있느 여운들은 그 사람의 인생의 희노애락과 엮이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삶과 죽음 그 연속적인 인생 스펙트럼 속에서 때로는 나타났다가,소멸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살아가고, 살아지는 것,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고되지 않은 인간의 군상과 겹쳐지게 된다.


소설 <깡깡이>는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2가 143번지를 가리키고 있었다.공간을 터전을 살아가는 정꽃분 여사는 조선소에서 망치를 두들기는 깡까이 하나로 버텨온 인생이다.남편을 여의고, 다섯 남매와 함께 해 왔던 그 삶은 배우지 못한 한을 기억하고 있었다.남편의 부재, 슬퍼할 겨를 조차 없었던 그 안에는 감춰진 한이 서려 있었으며, 그 기록을 첫째 딸 저은의 시선으로 기록해 나가고 있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이 소설은 상당히 이질적이다.한 자녀를 낳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삶에서, 다섯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하지만 1960년대~1970년대에는 다자녀를 낳아야 했고, 아들은 무조건 낳아야 미덕으로 치부된다.첫째 딸 정은은 그것이 불만족스러웠다.집안의 가장으로서 모든 것을 도맡아 다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혜택은 자신의 남동생 몫으로 남게 된다. 살아가면서,불합리하고,불공편하지만,그 어디에 하소연할 수 없는 상황에 내볼리게 된다.자신의 삶과 어머니 정꽃분 여사, 거친 손에는 깡깡이의 삶이 녹여 있었다.조선소에서 깡깡이를 내려 놓고 요양원으로 가야 하는 삶,깡깡이의 삶이 깜깜이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고, 정신마저 스스로 놓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소설 깡깡이는 한 여성의 초로의 모습과 그 초로의 노인을 바라보는 딸의 모습이 교차된다. 첫째가 막내를 거느리고,그 막내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방편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바로 그런 것이 그 당시의 정서였고, 이제 우리에게 잊혀진 과거의 골목길 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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