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에밀리 정민 윤 지음, 한유주 옮김 / 열림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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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하면, 빙의된 자처럼 자신의 목소리에 겹쳐져 울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그 목소리는 '검은 구멍'처럼 '마지막으로 숨을 쉬던 곳'에서 울려 나온다.그 목소리와 함께 쓴 시는 여성 시인의 단말마이면서,기존 언어 체계의 해체이며, 여성 공동체의 비명이 된다. (-7-)


일상의 불움ㄴ.그녀는 자갈.그녀가 잡혔다.그녀가 자갈 한 줌처럼 잡혔다.물에 갈린 자갈.그녀의 마을은 온통 자갈밭이다. 1950년이다.그녀는 소녀, 그녀가 잡혔다.나의 할머니도 소녀이지만, 잡힌 그녀가 할머니는 아니다. 할머니의 아버지가 뭄능 닫는다.미군들에 맞서지만, 그들이 돌담들을 뛰어넘는다.내 할머니가 아닌 소녀를 향해.그 소녀는 잡힌 자갈이다.그녀의 언어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에 자갈이다.소녀 한 줌,땅이 자갈 투성이다. 한국은 자갈이고 무덤이다.소녀는 소녀이고 할머니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녀는 소녀일 것이다.소녀는 자갈이고 역사는 물 위로 던져진 돌멩이처럼 그녀를 건너뛸 것이다. 오 소녀여.오 영광이여,소녀여. (-37-)


두려움

내게서 두려움을 도려내고..
역사의 절벽들로 측면을 두른
피오르드가 되고 싶었다.어떻게 해야
내가 살지 않은
시간들을 쓸 수 있을까.나는 두려움이
비워지고 삶으로 충만한
장소를 원했어.
맥스 데스퍼의
흑백사진들처럼
나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 지 모르겠어
그의 한국전쟁 사진들 앞에서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사진에는 
파괴된 다리를 기어오르는 난민들이 있어
한데 나를 멈추게 한 사진은-
안 쌍의 손

눈을 뚫고 손은 거무스름한 손가락들
그 앞에 구멍이 있었고
내 뒤의 화면에서 데스퍼가 말하길,
남자의 손은 묶여 있었고.그는 저 검은 구멍으로
마지막 숨을 쉬었습니다.
저 검은 구멍, 손가락들의
저 구체, 저 대양의 팔, 나의
저 피오르드.내가 텅 비었다고
믿어왔던 것을 쥐고,목소리,두려운 해류.그 밑에,
물의,
빛의 몸들.(-103-)


시대적인 통찰을 시적으로 아우르고 있었다.이 시집은 이민자의 신분으로 20대에 쓰여진 시로서,위안부 여성들의 아픔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원하지 않았지만, 강요되어야 하는 시대적인 표상을 뛰어넘어서서, 좌절감과 굴욕감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을 바쳐야 했던 그 순간들 속에서 자신의 자좀감은 반드시 무너지고야 말았다.스스로 살아있는 생명체인것이 부끄러웠다.차라리 자갈이었으면, 움켜지더라도 수치심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깍이더라도,깍아내리더라도,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다.살아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아야 했던 그 지난날들이 그에게는 그것이 아픔이었다.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후각조차 내비칠 수 없었던 그 밀폐된 공간안에서 두려움과 공포감 속에서 극환의 시간에 침전하게 된다.살아간다는 것,생과 사의 절벽에서 ,한 걸음만 내디디면 죽음으로 인어지게 된다.분명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올라야 했던 그 순간들,누군가는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 놓게 되었고,후대의 사람들은 그 사진 으로 그시대의 사회적인 맥락과 심경, 악에 바친 삼켜야 했던 목소리를 감지하게 된다.눈은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어디를 보느냐에 따라서, 누군가를 보느냐에 따라서, 많은 의미와 가치들을 들추고 있었다.그것을 저자는 시적인 감각과 시대적인 배경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내고 있었으며, 위안부 소녀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빙의하게 된다.자신의 목소리를 통해서 처젏함을 드러내었고, 시적인 감각 속에서 ,자신이 겪지 못했던 것들을 꺼내고 또 꺼내어야 했다.살아간다는 것, 누추한 삶이 반복되었어도,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 하다는 것을 한편의 시를 읽으면서,시인의 마음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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