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어야 산다 -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김병효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스님은 찻물이 찻잔을 넘쳐흘러 방바닥을 적시는데도 차 따르기를 멈추지 않았다.이를 본 맹사성이 자리를 옮기며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이 흥건합니다"라고 했다.그러자 스님은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자신을 망치는 것은 왜 모르시오" 라고 일갈했다. (-18-)


전남 광주에 사는 시인은 자신의 아파트 인근 고물상을 지나다가 시를 지었다고 했다.세상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간직하고 어두운 곳을 헤아리는 글을 계속 기대한다는 덕담도 나누었다.이후로도 종종 안부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 것이 큰 기쁨으로 남는다. (-95-)


이윽고 내가 그의 등을 밀어줄 차례였다.그의 등판은 넓고 탄탄했으나 양 어깻죽지 여러 곳에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어깨에 난 검푸른 멍을 보니 마음이 아렸다.감추고 싶은 흔적도 아닌 듯 그는 말없이 등을 맡기고 있었다.어깨의 멍은 분명 힘든 일을 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한 가족의 생계를 감당해온 그의 노고를 위로하는 견장처럼 보였다. (-146-)


어떤 색깔이든, 완장이 채워지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늑대가 된다.
눈에 띄지 않는 완장을 찬 그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도처에서, 킁킁거리며 어슬렁거린다.
시베리아 늑대만큼 재빠르게,
법위에 올라타서, 법을 주무른다.
늑대에게 한번 찍혀서 물리기만 하면
그 누구도 벗어날 재간이 없다.
이미 눅은 시체까지 물어뜯는 늑대들.
완장이 벗겨지면 이빨 빠진 똥개가 된다. (-190-)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안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198-)


오늘은 5일장이다. 오일장 우연히 어떤 할아버지를 보았다. 종이 박스를 한 켠에 밀어 놓고, 장터 마지막 시간에 ,장돌뱅이가 마수를 거의 끝나고 남은 과일을 헐값에 사서 먹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었다. 소위 나는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도촬을 하고 말았다.구부러진 어깨와 허리, 듬성듬성 난 수염, 그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하였다. 우리에게는 삶의 무게가 있다. 그건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매 한가지였다. 살아가면서 , 배우지 못한 이들은 노동을 통해 삶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고 살아간다. 배운 이들도 매한가지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삶의 방식과 수준이었다.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것을 잠시 내려놓고,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내어놓은 그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었다.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책 속의 시와 엮이고 말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여백이며, 삶의 틈새였다.어느 순간 우리는 스스로 순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이용당하면서, 누군가를 이용한다.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삶,지식이 넘처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온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넘처남으로서,우리는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었다.위선적이고,모순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그 무렵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지혜가 넘처나는 것이 가져 오는 것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내가 흘려 놓은 지식이 누군가에게는 물을 흘려 놓은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찰하고 , 고찰해야 하는 문제이다. 오만한 삶을 내려 놓고 나를 응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우리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하면서 ,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시 속에 지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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