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 - 오늘날의 미술, 아이디어가 문제다
전영백 지음 / 열림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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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작품은 이렇듯 사랑하는 연인 사이의 보편적 관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여기에 동성애라는 큰 이슈를 더한다.에이즈와 연관돼 동성애가 특히 민감했던 시기에 활동했던 곤잘레스 토레스에게 <무제>의 침대는 그의 '전쟁터'였을지 모른다.이 점에서는 전쟁을 버리고 개인의 안식을 찾은 브레히트의 혁명가와 대비되는 역설을 보여준다. 곤잘레스 토레스는 침대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사회 편견과 문화 관습에 대항하는 공적 전쟁을 치른 셈이다.따라서 이 사전은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가장 민감한 공적 문제에 대항한 것이다. (-20-)


<태양 원반의 통치>를 구성하는 다섯 개의 스크린 통들 사이에는 LED 조명이 설치돼 있어 컴퓨터로 조작되었다.물론 아래서 올려다보는 이들의 눈에 보일리 없으니, 관람자들은 경이감에 휩싸여 침묵의 명상에 빠진다. (-81-)


허스트의 설치작업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며 거부감을 느끼는 이도 많다.특히 영국인들이 그를 노골적으로 비판한다.'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자문할 정도로 잔인한 그의 작업은 다른 어느 곳보다 자국에서 가장 많은 안티를 두고 있다.이러한 영국문화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자기 비판'은 서구가 가진 최상의 덕목이지에 다른 건 몰라도 우리가 수용해야 할 속성이라 하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스트의 작품이 갖는 솔직함과 대담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일상에 젖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허스트는 평범한 삶 깊숙이 포진돼 있는 폭력을 표면으로 끄집어 올려 직접적으로 대면시한다. (-101-)


차이궈창은 화약을 재료로 쓰는 것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그의 작품 <우리가 없는 와이탄>은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 1층 로비에서 길이 27m,높이 4m 의 특수제작 종이에 화약을 터트려 만든 작품이다.
폭발당시 차이궈창과 지원자들이 그 종이 위에 하드보드지를 올리자,장갑을 낀 작가가 강약을 조절하며 화약을 배치하고 촉매를 덮었다.여기에 다시 하드보드지를 덮은 후 그 위를 돌로 눌러 압력을 높였다.드디어 작가가 불을 붙이자 '팍팍' 한느 거대한 소리와 함께 작품은 순식간에 연무에 휩싸였다.곧이어 화약 회화의 전모가 드러났다.(-194-)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뉴욕의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주인 없는 땅>을 전시했다.이 작품은 3,000개의 과자깡통으로 벽을 만들고,40만 명의 헌 옷을 모아 늘어놓은 대형 설치작업이다. 무려 30t의 헌 옷더미가 이룬 거대한 '산'을 중심으로 높은 기둥을 바둑판처럼 구획해놓고는 가지각색의 옷들을 그 안에 배치했다,
'산'꼭대기 위에 위치한 집게발의 크레인은 한 줌 옷가지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리기를 반복한다.무작위로 잡혔다 떨어지는 옷가지는 임의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는 인간의 가련한 모습을 연상시킨다.크레인이 움직이며 내는 기계음과 더불어 각 구획의 기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수천 명의 심장박동 소리가 전시공간으로 울려 퍼진다.박동 소리는 그 사람들의 부재를 더욱 상기시킨다. (-284-)


이 책에는 현대 예술에 대해서 32점의 예술작품의 예를 들어서 예술이란 무엇이며,우리에게 예술의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상징과 은유,그리고 의미였다.저자 전영백 씨는 예술을 하자면 발상의 전환, 즉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그런데 나는 여기에 동감하지 않는다.우리 앞에 놓여진 수많은 예술가들의 '발상의 전환'은 충분히 가지고 있으며,예술적인 씨앗이나 잠재력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예술적인 열매가 아니라 토양에 있다.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도,우리 사회는 그 틀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소설 즐거운 사라를 쓴 마광수가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것만 보아도,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삶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의 견고한 틀 마저도 깨야 할 정도이다.유희적으로 예술작품을 구현하면, 그로인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틀을 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우리 스스로,예술가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틀과 고정관념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먹혀들었던 것도 틀에서 벗어나 나만의 예술을 구현했기 때문이다.도전하고 실험적이며,시대적인 트렌드와 흐름에 맥을 갖이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자각과 인식의 주요 매개체는 예술에 있다.그건 우리 스스로 깊이 되새길 여지가 있다.예술이 인간을 향하고 있으면서,인간적인 예술작품을 구현하는 과정들, 불편하고,혐오감 스럽고, 때로는 자극적인 요소에 사회가 안고 있는 제도나 법의 틀에서 자유로워질 때,예술은 새로운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때로는 법적인 요건에 위배되더라도, 자신만의 예술작품을 구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실험을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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