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 - 이제 자존심, 꿈, 사람은 버리고 오직 나를 위해서만! 50의 서재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센시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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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이라도 원한이나 회한 같은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그럴 때는 시간의 치유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 치유력을 최대한 으로 빨리 돌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일정을 촘촘하게 짜는 방법이다. (-48-)


따라서 정체성이란 그 사람의 살아온 역사, 인생 그 자체다,'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확실히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면 50세의 위기가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99-)


'은퇴'라는 말을 주변에서 여러 번 들었다.세상 사람들의 소리도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내 안에 어디서 어떤 식으로 은퇴한다는 그림은 전혀 없다.'가즈'답게 은퇴하라든지 그만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든지 이런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타이밍을 보고 은퇴한다는 것은 더는 내 선택지가 아니다.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도 그저 열심히 한다.내일도 열심히 한다.그뿐이다. (-154-)


자시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기보다 여동생이 무서워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 씀씀이, 끝까지 오빠로서 여동생을 울리지 않겠다는 초마쓰의 책임감과 자상함이 심금을 울린다. (-195-)


죽음이란 자의식의 소멸이다.즉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그 희노애락, 그것을 느끼는 의식이 사라지는 것뿐이다.이렇게 보면 '그렇군, 좀 쓸쓸하기는 해도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도 몰라'라는 생각도 든다. (-197-)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그 죽음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타인이 될 수 있다.백세 시대에 오십이라는 숫자는 인새의 반환점을 도는 순간이며, 살아온 날이 남아있는 예정된 날보다 많아지는 그 순간이 바로 오십이 상징라는 특별한 숫자이다.그러나 세상이 바라보는 기대치와 자신의 현재가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시점이 바로 오십이 될 수 있다. 나의 현재 수준과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기준이 다를 때 인간은 가장 많이 흔들리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에게 맞는 기대치가 있고, 중고등학생도 마찬가지이다.그들에게 때로는 적당한 실수조차도 사회는 관대하게 바라보고, 넘어갈 때가 있다.그러나 오십이 넘어서면 사회적인 기준이 달라지게 된다.앞 숫자가 4에서 5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은 나에 대해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게 되는 거였다.그래서 오십이 되면,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게 되고, 내 몸이 내 몸같지 않은 순간이 나타나게 된다.매사 조심하지만, 조심할 수록 스스로 자괴감과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필요한 약은 '시간'이다.


오십이 되면, 볼 것, 안 봐도 되는 것들을 동시에 보게 된다.특히 죽음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기분이 갑자기 훅 들어올 때가 있다. 누군가의 허망한 죽음과 맞땋뜨리게 될 때 ,장례식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준비되지 않았는데 예고되지 않은 어떤 무언가가 내 앞에 나타날 때, 그 순간 오십은 당황하게 된다.상처를 입고, 인생에게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마음이 아프고, 마음의 상처를 느껴도 스스로 그것을 해결할 수 없고, 내 앞에 문제가 발생해도 참고 넘어가야 하는 것,세상의 엄격함에 이성을 잃고 돌출행동을 할 때면 사회적 지탄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오십인 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다.내 앞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감정적으로 요동 칠 때 필요한 약이 시간이다.나에게 주어진 시간, 내 삶을 일과 스케줄로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면, 그 흔들리는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되고,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된다.시간이 흐르면,아픔 상처도 잊어먹게 되고, 좋은 기억들로 채워 나가려고 애를 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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